베리 따는 사람들 서사원 영미 소설
아만다 피터스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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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으로 그저 평화롭고 목가적인 소설일 거라 짐작했다.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던 책이었지만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근래에 읽은 소설 중 감히 최고였다. 아만다 피터스라는 작가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려고 여러 번 반복적으로 써 내려갈 정도로 좋았다.

1962년 캐나다 원주민 가족이 블루베리 따는 일을 하려고 미국 메인주에 도착한다. 넷째 조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 두 형 벤과 찰리, 누나 메이, 막내동생 루시까지 가진 것 없이 서로의 존재만으로 행복했던 어느 날, 루시가 사라진다. 당시 6살이었던 조는 루시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자신이라는 죄책감을 한평생 안고 살아간다.

또 다른 이야기는 노마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무언가 숨기는 듯한 부모님, 집밖으로 전혀 나갈 수 없이 감옥처럼 갑갑하게 지낸 어린 시절의 노마. 부모님과 자신의 피부색이 다른 것 이상으로 궁금한 점과 의아한 점이 많았던 노마는 자신의 부모님과 이모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하지만 속시원한 답을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그속에서 무참히 짓밟혔을 자신의 정체성. 유별나고 과한 보호 안에서 트라우마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가는 노마. 노마의 첫 챕터부터 노마가 바로 루시라는 걸 독자는 알 수 있다.

노마가 사랑받지 않고 컸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애초에 시작부터 노마는, 아니 루시는 자신의 모든 걸 빼앗긴 채였다. 더이상 자식의 상실을 마주할 수 없었던 부부의 이기적이고 악랄한 범죄라고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루시를 잃고 계속된 악재만 겹치는 조의 가정에 제발 평온의 빛이 깃들길 읽는 내내 바랐다. 비극적인 가족의 상실로 빚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현실감 넘치게, 하지만 극도로 담담하게 전개되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백인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우리에게서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빼앗아 가려고 했어.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하지만 이제 알았으니까,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느끼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개자식들이 승리하게 둘 순 없어. 빼앗긴 걸 되찾아야 해. 우리 모두 그래야 해." (p.393)

마지막 순간, 메이가 루시에게 하는 말이 뜻깊게 다가온다. 백인들이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빼앗고 짓밟아온 시간들이 어쩌면 그들에게서 루시를 뺏고 노마라는 정체성을 덧씌우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한평생을 속여 살아온 레노어 부부와 겹쳐졌다. 루시는 원주민을 대변하고 레노어 부부는 백인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 가족 상실의 비극과 원주민 차별과 착취, 그속에서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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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녀는 나를 부서지기 쉬운 도자기 인형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대해 준 최초의 어른이었다.

🔖163. 희망은 깨지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멋진 것이다.

🔖241. 일은 항상 일어난 직후가 가장 최악처럼 느껴지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늘 그렇듯이.

🔖354. 분노는 때로 의도치 않은 말을 하게 만든다. 자신이 상처받은 만큼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싶게 만든다. 게다가 완전히 진심도 아니었다.

🔖366. 자연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좋았다. 그건 바로, 놓아 줄 건 놓아 주고 계속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아만다피터스 #베리따는사람들 #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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