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리고 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 찬란한 은둔자 헤르만 헤세, 그가 편애한 문장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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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서법으로 유행하는 필사. 사실 나는 2000년대 중반에 왕성히 필사를 했었다. 그땐 책을 읽고 덮으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좋았던 구절을 그냥 넘기기 아쉬워 독서 노트에 책 사진과 완독 날짜, 책에 대한 간략한 감상과 기록하고 싶은 구절을 매번 쓰고 남겼다. 대략 몇 년 가량 했었고 쌓여 있는 노트도 제법 된다.

'필사'라는 걸 놓게 된 건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독서를 한참 쉬기도 했고 그동안 세상이 스마트해진 덕분에 나는 쉽게 디지털 세상으로 갈아탔다. 간편하고 손쉬운 독서 어플을 이용해 여전히 책의 감상과 잊기 싫은 구절을 계속 기록하고는 있지만 어쩌면 시간이 나질 않는다는 핑계로 필사를 미루기도 했었다. 기기에 기록 하든, 노트에 기록하든 큰 차이가 있으려나 생각하기도 했고.

만듦새부터 완벽하게 멋진 이번 책을 계기로 조용히 앉아 적어 내려가는 시간을 만들어 봤다. 헤르만 헤세의 인생관과 예술관, 그의 철학적 시선까지 바라볼 수 있는 11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헤세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까지는 몰랐는데 중간중간 삽입된 그의 그림과 지혜로운 문장들이 어우러져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었다.

필사를 다시 하겠다, 마음을 먹어도 왠지 거창해야 할 것 같고 자꾸만 무게감에 눌려 선뜻 시작하기 쉽지 않았는데 헤세의 책을 펼쳐 놓고 앉아 그의 글을 따라 써가는 것뿐인 그 시간들이 조용하면서도 아늑하게 다가왔다. 여백이 많고 길지 않은 문장들이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생각할 거리도 던져 주고, 시간에 속박되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적당한 때, 적당한 만큼 쓰고 느낄 수 있어 부담도 없었다. 적으면서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은 두말 할 것도 없었고! 왜 진작 이런 시간을 만들지 못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바빠서 시간이 없는 중에도 5-10분이면 충분할 나만의 시간은 내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헤세의 어록으로 만들어 보는 짧지만 단단한 시간들! 필사에 목표가 있지만 중압감에 매번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에게 필사를 시작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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