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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절이 지나가면
주얼 지음 / 이스트엔드 / 2024년 5월
평점 :
흘러가는 계절을 붙잡아 밤의 빛으로 엮어놓은 듯한 12편의 단편 소설집. 낯설었던 작가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소설 속 12명의 주인공과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은 조금 느리고 조금은 더디게 일상을 보낸다. 어찌보면 너무도 평범해서 누구 하나 주의깊게 바라보지 않을 사람들의 이야기. 사실은 그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묘하게 힘이 난다. 이야기 속에서 나를 만나고, 내 과거를 만나게 되는 공감의 힘. 주얼의 이야기엔 그런 힘이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 여름밤의 풍경이 머리에 떠다녔다. 지금의 계절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내겐 책이 주는 이미지가 그러했다. 아침과 낮의 풍경은 아닌, 게다가 한겨울 시린 날의 밤도 아닌 여름밤의 이미지. 12편 중 2편의 제목에도 "여름"이 들어간다. 나에게 제일 인상깊었던 작품 역시 [여름이 지나가고]였고.
작가가 된 첫사랑을 마주하게 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며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사소하게 행복했던 시간들, 고백을 했던 순간, 사실 그녀는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를 짝사랑했다는 걸 알게 된 상황, 이도저도 못하고 흘러버린 시간 속에서 첫사랑이자 짝사랑으로 끝난 그녀와의 예기치 못한 마주침, 게다가 끝내는 자신의 꿈을 이룬 그녀의 모습 앞에서 느끼는 초라함. 그 모든 상황들이 마음에 콕콕 박혔다. 아름답게 빛나던 한때의 기억은 누구나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 이루어지지 못해 가슴 아파하던 추억 역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질투하고 분노했지만 반짝이던 시간들에 대한 감정으로 멀찍이 바라보지만 결국은 돌아서야 했던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조금은 텁텁하고 숨막히는 듯한 찌는 공기에도 오히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선선한 바람에 숨통이 트이기도 하는 여름밤에 어울리는 단편들이었다. 조용하고 나른하지만 결코 어둡지 않은, 일상에 잔잔히 스며드는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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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당시 우리가 이곳에서 얘기하고 나누었던 그 수많은 계획과 미래의 목표들, 그리고 꿈꾸었던 모습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70. 아직도 모르는 게 산더미인데 나이 좀 먹었다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은 점점 늘어나기만 하고. 그런 기분 알아요? 중요한 프로젝트는 맡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겠고, 그렇다고 못하겠습니다, 라고는 말할 수 없을 때의 기분. 정말 그럴 땐 울고 싶어져요.
🔖116. 많은 사람은 마음속 어딘가에 조금씩의 어긋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그 어긋남은 바로 잡고 고쳐야 하는 게 아니라고도 했죠. 단지 어긋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까지도요. 그래야 모두가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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