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감정들 - 나를 살아내는 일
쑥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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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다는 것은 채울 수 있다는 것. 비워져 있음에 시선을 두기 보다 채울 수 있는 가능성에 무게를 둘 것. 아직 제대로 가진 이름이 없다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무명'이는 숨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 되겠다.

어느 날 문득 갑작스럽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숨을 좀 쉬고 싶었던 저자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쓰고, 그리기를 시작한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는 걸 알게 된 저자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반에는 왠지 어둡고 무거웠다. 나도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이 묵직해서 속도를 빨리 하지 못했다.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이 마음에 깊이 담겼다. 그래서 나도 책장을 빠르게 넘기지 못했다. 꾹꾹 눌러 읽고 싶은 책이었다. 이런 감정, 나도 분명 느낀 적이 있는데, 맞아, 이런 단어로, 이런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하고 여러 번 곱씹기도 했다.

어지러운 마음은 회피하기 바빴던 나에게, 감정 하나하나를 오래 관찰하고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하면 어느새 뾰족하게 나를 상처내던 그 감정들도 옅어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책으로 나는 또 한 번 훈련할 수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에, 성공하기 위해서 읽어야 한다는 책들을 잔뜩 쌓고는 다시 엎어버리며 책을 읽는 행위는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한 피드를 스치듯 봤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때의 불편했던 감정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공하기 위한 책 읽기는 비록 성공을 가져다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게 어디 성공만을 위한 행위겠냐고. 이렇게 어디에도 터놓기 힘들었던 내 묵은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고, 혼자가 아님을 "누군가로도 어딘가로도" 실은 끈끈히 이어져 있음을 느끼기도 하며, 버틸 수 있는 용기 한 움큼, 그리고 작지만 밝은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미지근하더라도 무해한, '다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정'하게 온기가 있는 이런 책들은 언제나 힘이 된다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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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인간은 평생 낙인을 찍으며 사는 존재다. 단편적인 모습 몇 개로 압축하는 존재. 그러나 무언가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짧게 듣고, 좁게 본다. 지레짐작하지 말자. 신중하지 않은 결론은 세계를 너무 좁게 만든다.

🔖53. 내가 먼저 밝히지 않는 감정을 구태여 들추는 것은 진정한 다정이 아니다. 어릴 적에는 들키고 싶은 일기장이 있었다. 누구든 알아줬으면 하는 가녀린 감정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아니다. 드러내는 것만 믿어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나를 구성하고 싶은 것들이니까. 파고들지 않는 고요한 다정에는 나를 쉬게 하는 힘이 있다. 웃음이 아닌 다른 감정을 끝끝내 터놓게 만드는 기운이 있고.

🔖247.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도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강요하고 있다. 애쓸 거면, 그럴 거면 너 기분 좋아지는 거에 힘써. 근데 그마저도 힘들면 그냥 있어. 뭘 그렇게 하려고 해. 힘들면 힘 내려놔야지. 당연히 그렇지. 도대체 언제부터 턱끝까지 숨차게 달리는 게 아주 당연한 것이 되었는지. 그 반대가 게으름이 절대 아닌데 말이야.

🔖306. 괜찮지 않은 구석을 품고 살아도 괜찮은 마음을 가지길 바라며.

#쑥 #무명의감정들 #딥앤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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