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너머, 여름
한윤서 지음 / 메이킹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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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여자들의 다섯 가지 여름을 담았다. 찌는 듯한 여름 너머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소설 속 다섯 여자들은 서로 '관계' 속에서 '각자'인 듯 '우리'인 듯 묶여 있다. 가슴 속에 상처와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 불행과 고통 없는 삶이 과연 존재할까? 밝아 보이는 겉모습 안에는 어떤 상처들을 안고 사는지 타인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구질구질하지 않은 이유는 각자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어느 누구도 남탓을 하지 않고 불행을 불행 그대로 받아들었지만 지쳐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그대로 내버려두기도 하고 뭔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음에도 불행 앞에 나 스스로 당당할 것.

나 혼자서라면 쉽지 않았을 불행의 무게도 나를 온전하게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각자의 무게로 힘든 한 사람이 서로의 신뢰와 관계의 에너지로 모두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도 한다.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에게는 또다른 큰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지영은 수아에게, 유비는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손녀에게, 아니면 기억 속 덕선이에게, 힘을 받고 살아갈 용기를 얻어온 게 아닐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찌는 듯한 더위도 함께 하면 곧 지나갈 것이고 또다시 찬란한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겨내는 힘,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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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할머니는 드러나는 면만 본다면 조용한 분이셨다. 말을 할 수 없으셨으니 당연했다.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마냥 조용한 분은 아니셨다. 할머니는 언뜻 달괁닉으로도 보이는 겉과 달리 깊은 활기를 지니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의 그 조용한 대범함이 좋았다.

🔖83. 나랑 보민이는 친구인 걸까? 갑자기 들어온 의문은 황당했다. 간단한 의문임에도 오래간 고민했다. 그 끝에 나온 답은 아니다였다. 그때가 되어서야 다른 행동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보민이 챙겨준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괴로웠다는 것. 그리고 보민은 늘 처음 만난 그날처럼 환히 웃었지만 단 한순간도 그 웃음을 보며 자신은 편한 순간이 없었다는 것. 친구를 사귀어본 적 없어도 알 것 같았다. 이런 건 친구가 아니다. 이 세상 내가 제일 소중하고 불쌍하다고 되뇌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모순되는 일들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나는 보민의 그림자였구나. 빛이 더 밝게 빛나도록 빛 옆에 존재해야 하는 그림자. 그 그림자가 나였다. 내 인생은 불행 요소를 다 때려넣은 잡탕이라 하더라도 그 인생에서 내가 제일 소중하고 빛나게 하겠다 다짐하였는데 자신은 자신과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였다.

🔖133. 더 이상 불행이 나를 피해가길 바라지 않는다. 불행을 마주쳐도 그 불행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한윤서 #여름너머여름 #메이킹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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