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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비용 - 다가올 의료 대혁신에 대비하는 통찰
김재홍 지음 / 파지트 / 2022년 10월
평점 :
환자는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는 당당한 소비자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지내온 시간을 다시 깨우치게 한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분자세포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의사이자 과학자이다. 현재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교실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며 국내 의료 시스템의 현황과 의료 혁신 가능성에 대해서 탐구한 내용을 이 책에 풀었다.
1부 '급변하는 의료환경과 환자의 권리'에서는 질환과 의료 혜택 및 바람직한 보건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미래의학, 환자의 권리에 대해 여러 의견을 서술한다. 인간의 수명 연장에 대한 활발한 연구들로 다양한 만성질환이 발생했다. 급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여러 다양한 원인들로 급감하고, 대신 평생 함께 하는,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면서 병원과 환자의 관계도 생각해보게 한다. 60세 이상의 노인의 대부분은 평균 4가지의 만성 질환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병원에 진료 한번 가려면 몇 시간 대기에 중복되는 검사들에 의사와 직접 면담하는 시간은 5분 정도 되려나. 이것은 절대로 환자를 위한 의료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분명 나부터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표현도 못한 채 대형병원에서 진료 한번 받으려면 원래 이런거려니 하고 넘겼던 일이 다반사다.
그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만연한 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원인 및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한다. 지역 별 의료 불균형으로 인한 감당은 환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남쪽 끝 거제도에 사는 내 입장에서만 봐도 어디 불편하기라도 하면 진심으로 갈 만한 병원이 없는 게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큰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다리 건너 창원이든 부산을 나가야 하는 게 그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내 돈 내고 진료 받으러 가면서도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나서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이유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환자의 권리를 되찾고, 그 이야기가 의료진과 병원 앞에서 내가 갑이 되라는 말이 아니고 어떤 진단을 받아 어떤 검사와 치료를 행하게 됨에 앞어 많이 배우고 알며 의료진과 파트너가 되어 당당한 요구를 할 수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 의료진에게만 맡겨 놓지 말고 주체적으로 내 건강과 나의 질병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나오는 의료폐기물 및 건물 자체만의 에너지 과용 등도 언급하며 친환경적인 병원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원격진료 및 스마트 의료기기들의 대중적인 보급, 인공지능의 개입도 더이상 새롭고 낯선 이야기만이 아닌 눈앞의 현실이 된 것에 앞으로의 의료 발전에 대한 희망도 엿보였다.
2부 '의사 역할의 변화와 의료 개혁의 방향'에서는 당당한 소비자인 환자를 위하는 의료 개혁이 되도록 의료진과 환자 모두 깨어있는 인식의 변화를 필요성으로 언급한다. 물론 어느 의료진만의 잘못이 아니고 병원 자체만의 문제도 아닌 정부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판단하지만 개개인들의 역할과 권리를 잘 생각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의료 변혁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밝은 전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줄 그은 부분이 정말 많았다. 긴 문장들에 집중이 안 될 때도 있었지만 10일간 부여잡고 읽었던 이 책으로 인해 나도 의료진으로서의 역할 변화의 필요성과(휴직 중) 환자로서의 권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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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편함이나 소비자 권리의 침해를 마다하고 현 의료 서비스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의료 서비스가 이렇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의료진에게 모든 조치를 위임했기 때문이다. 훈련되지 않은 우리는 최신 고급 승용차, 아니 항공기나 우주선과도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복잡 다양하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인체의 생리, 병리 현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의 세부적 내용을 이해하고 관리할 수 없고, 의사들은 그동안 다분히 일방적인 권위주의로 환자를 대해온 것이 사실이다.
65. 어떻게든 병의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증상의 호전'에 머무는지금의 의학 수준에서 질환은 만성질환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성질환이라는 말은 완치가 되지 않고 오랫동안 환자가 앓게 되는 병이라는 뜻이다. 과거에 생명을 위협하던 여러 중증 급성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확연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 말은 완치되거나 가벼운 경증 질환이 된 것이 아니라 의료기술의 발달로 환자가 여생동안 계속 관리해야만 하는 만성질환이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는 질환들도 완치가 되지 않으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면서 관리에 드는 비용과 수고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
80. 무려 2조 원을 쓰는 국가건강검진에서 다소 당뇨병, 혈압, 이상지질혈증 등 만성질환에 관한 혈액검사 수치에서 이상함을 발견했다 해도, 검진지만 건네주는 것으로는 아무 예방 효과가 없다. 적극적인 사후 관리가 수반되어야 지출에 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건강검진에서는 검진과 후속 관리가 분절화되어 있다.
128. 더 이상 첨단의료기술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환자에게 중요한 의료기술의 가치는 비용 대비 회복된 건강의 정도로 정의될 수 있다. 병원 간에 무차별적으로 도입된 로봇 수술 시스템이 다시 수술 건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환자를 위한 가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과 치료 방법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되어 왔을 가능성을 모두 시사한다.
131. 환자에게 실익이 있느냐 없느냐는 환자가 결정할 문제이지, 의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데도 우리는 과거에 지나친 병원 편의 위주로 간 것이다. 이러니 환자들은 정말 이 검사가 내게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계속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환자가 의사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진보와 의료전달체계의 개혁을 바탕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더 가깝게 접근하고 환자의 이익 편에서 행동해야 한다.
212.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은 지난 두 세기간의 변화에 불과하다. 40-50세 이내의 수명에 최적화된 인간의 몸이 갑자기 늘어난 수명에 진화적으로 적응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특정 인구집단의 평균 사망 연령을 의미하는 기대수명이 지금처럼 대폭 늘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현격히 좋아진 위생 개선으로 모자 사망률이 먼저 줄고, 백신 접종과 식량 증산으로 영아기와 소아청소년기 사망률이 급감했고, 의학기술의 발달로 심각한 급성질환과 감염증에 의한 사망률이 줄었기 때문이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수명 자체가 덤으로 늘어난 것이 절대 아니다.
224. 빈부격차가 심할 때는 고가의 의료 서비스 혜택이, 그것도 만약에 갑자기 개발된 상황이라면 절대 고루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교육이 개인에게 더 많은 기회의 가능성을 주는데, 가족의 부는 교육의 기회를 분명히 좌우한다.
264. 지금의 의료 정보들은 환자가 의료 서비스 비용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에 귀속되면서 마치 지적재산권처럼 사용이 제한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한 과정과 노하우가 남에게 공유되지 못하는 비전처럼 취급받으면서 의료기관 간의 보이지 않는 정보장벽이 생기고,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는 특정 병원에 더더욱 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더욱 상실하게 하는 이런 귀속은 보다 비싸고 정밀한 검사와 치료를 수행하는 대형 종합병원일수록 더 심하다.
266. 온라인 알고리즘이 분석하도록 내가 접근권을 개방한 의료 정보는 외래나 보건소에 마련된 형식적인 안내책자나 교육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자기 관리를 24시간 가능케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환자와 의사 간의 불평등한 관계인 '정보의 비대칭성'은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환자의 선택권이 지금보다는 크게 확장되면서 환자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어엿하고 대등한 파트너의 지위를 얻게 된다.
313. 정작 문제는 지역발전의 불균형에 의한 여러 인프라 부족으로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의 의사 배치에 실패하고 있는 근원 이유들을 따져야 하는데, 참 편리하게도 의사 수를 늘리기만 하면 지금 의사들이 전공을 기피하는 진료과와 지방 근무만이 아니라 중환자실, 감염관리 및 대학의 연구 분야에서 근무하는 의사들까지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425. 대형 종합병원이 붐비는 이유는 의사의 자질이나 의료장비의 질 같은 의료 신뢰성이 문제인가, 환자의 중환도가 문제일까? 분명 유능한 의사에 의한 제대로 된 진단 기릉성은 환자의 안녕과 비용절감 측면 모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대형 종합병원에서 외래 수익이 그렇게 높은 이유는 진단검사의학과, 병리과 및 영상의학과와 같은 검사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하고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병원에서 전원 시 이미 했던 검사를 다시 중복 시행하는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식으로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은 절대 환자에게 이로운 일이 될 수 없다.
430. 의료비용이 상승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업들은 자동화와 글로벌화를 통해 단가를 낮추면서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기 때문에, 높아진 의료비용은 자국인의 고용률과 실질적인 임금 수준 모두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미국만 해도 백인 프리미엄을 누리던 시기가 끝난 후 백인 저소득층은 사회적 지위 측면에서는 다른 인종에 비해 더욱 좌절하게 되었다. 이들은 운동부족과 저렴한 정크푸드와 같은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과 구할 수 있는 주류나 마약 등에 의존하면서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턱없이 높아진 의료비용 때문에 이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악화된 건강은 사회적 불안요소가 되면서 이들에 대한 복지 부담이 증가하고 자국 노동력을 쓸 수 없게 되면서 경기에 부담이 된다. 이렇듯 복지와 경제 성장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다.
453.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큰 관심 없이 방치하거나 의료진에게 전적으로 일임해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나날이 의료비용이 높아지고 새로운 질환과 만성질환의 위험이 커지는 지금에는 자기 몸의 상태를 이해하면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능동적으로 결정하며,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의사들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국민들에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모든 의무를 자신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야 한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한쪽이 더 이상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다.권위와 권력이 혼동되어온 한국에서 앞으로는 의료부권주의에서 유래한 자세들이 보이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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