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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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할 수도 있다. 저항해본다 해도 개인의 힘으로는 바로 고칠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하준의 경제서들을 읽으면서 미약한 존재인 개인들의 의식이 깨어지고, 그런 깨어있는 개인들의 힘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불합리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이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원래 착한 사마리아인은 신약성서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향하던 한 나그네가 길에서 강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를 목격한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본 척 지나갔지만 유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핍박받고 있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줬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이 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하는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음에도 방관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관념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과 도덕을 동일한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하여 이 법을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쁜 사마리아인인가.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책을 통해 소위 선진국들이라 불리워지는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 경제학을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반론이며, 그들이 진실이라고 주장해왔던 것들이 실상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에만 치중해 왔다는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 준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이제는 그들만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룰을 만들어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의 이기심은 끝이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치졸한 방법을 통해 후진국들에게는 개방과 불공정한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무척 많이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미 선진국들이 철저한 실패를 경험했던 역사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럼에도 강대국들은 그들이 개방과 세계화, 규제 철폐 등을 통해 지금의 번영을 이루었다고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후진국들이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뤄 경쟁자가 되길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어떤 것이든,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득세를 하든 말든 그것이 나의 일상과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세계화'의 폐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형 마트가 골목 상권에까지 진출해 영세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한 지 오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들이 양산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장하준 교수는 에필로그를 통해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 개발도상국들이 좀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대안적인 정책을 허용한다면 좀더 많은 이익을 좀더 빨리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해 그들의 개명된 이기주의에 호소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다수가 그렇게 탐욕스럽지도, 편협하지도 않다는 것에 희망을 품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에 큰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치가와 언론들의 말을 믿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이 '쉬운 일'이 아닌 '올바른 일'을 해 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부디 그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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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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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골랐을 때는 역사를 다룬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역사가 아니라 사관에 대한 심각하고도 투지 넘치는 호전적인 글이 담겨 있었다. 원래 읽고 싶던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될 기회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노론. 그들은 몇차례의 피비린내 나는 사화를 거치고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 치열한 권력 끝에 조선시대 후기를 주도하는 유일무이한 권력 집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300년의 우리 역사는 노론의 역사였고, 불행히도 자존이 결여된 의존의 역사였고 민초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역사가 되었다.

저자 이주한의 주장대로 노론은 주자학을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상으로 받들어 양명학을 이단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서학쟁이로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신분제를 강요해 백성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는 조선후기를 '노론 천국, 백성 지옥'이라는 사뭇 원색적인 표현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물론 노론이라는 정치 권력을 100% 비난할 수는 없다. 저자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역사적 근거도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명에 대한 철저한 사대주의는 이후 병술국치를 맞아서는 일본에 대한 사대로 뒤바뀌었고, 나라를 스스로 내어 준 그들은 새로운 나라에서까지 철저히 주도권을 놓치 않았다.

그로 인해 노론 사관은 일제의 식민 사관으로 그대로 이어졌고 우리는 지금도 그 사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원래부터 중국의 식민지였던 우리는 시시때때로 주변 강대국들의 속국이었고 지금의 강국인 일본에 굴복하여 사는 것은 우리들의 숙명이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들의 역사 인식이었으니 우리 민족의 자존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나도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물론 시험공부의 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대학 들어가자마자 가장 권위적인 우리 역사에 대한  저서라고 샀던 책이 바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이었다. 언제쯤 그 책이 버려졌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금도 그 표지만은 기억이 난다. 그 무렵 증산도 관련 책을 함께 보고 있던 내게 이기백의 역사 인식은 서글픔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이전의 학교 교육에서 배워왔던 틀에서 벗어나진 않는 내용이었지만 그의 스승인 이병도의 역사 인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그들에게 자라나는 세대의 역사 교육을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증주의적 연구에 기반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은 규명이 곤란한 우리의 고대사를 철저히 왜곡하고 훼손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모든 권력은 역사를 통제하고 조작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도 지배한다." 맞는 말이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중요한 사료로 자주 인용하고 있는 모든 사서들이 그러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엄연히 왜곡이 있고 곡학아세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서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식민 사관은 분명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하기에 급급한 사관들도 무턱대고 신봉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밝히고 있듯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지으란 것이요, 역사 이외에 무슨 딴 목적을 위하여 지으라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은 진실만을 얘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믿어 놓고는
나중에 그것이 잘못이라고 밝혀지면 뻔뻔하게도
자신이 옳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지적으로는 이 과정이 한없이 계속될 수도 있다.
이를 제지할 유일한 요소는 잘못된 믿음이 머지않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대개는 전장에서 맞닥뜨리는 것이다.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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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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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은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말들아, 풍경을 건너오는 저 새 떼처럼
내 가슴에 내려앉아다오.
거기서 날개소리 퍼덕거리며
날아올라다오.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한글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우리 에세이'란 문구를 달고 나왔을까. 하긴 작가 김훈의 아름다운 문장과 깊고 넓은 인문학적 지식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긴 하다. 몇권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읽으며 나 역시도 그 광고 문구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스쳐 지날 수 있는 순간을 이토록 멋지게 표현해 낼 수 있다니.

김훈이 그의 자전거 '풍륜'을 타고 떠난 두번째 자전거 여행은 여행의 무대가 좁은 범위에 국한된다. 1권이 깊은 산속에서부터 남도의 땅끝 바닷마을까지 우리땅의 구석구석을 책에 담고 있어서 좋았는데 실제로 가보지 못했던 경기도 일대의 곳들이 대부분인 2권은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보지 못했기에 김훈의 화려한 수사도 가끔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곳들을 모두 돌아볼 수 있겠지만 그 때의 풍경은 김훈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내달렸던 2004년의 그것과는 또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강, 임진강, 한탄강이 모이고, 개성 쪽에서 내려온 예성강이 그 큰 물기에 합쳐지는 늙은 강, 조강(祖江)의 일몰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며, 갯벌은 여전한 생명력을 그 깊은 속에 감추고 있을 것이며, 광릉 숲은 사람들에게 상쾌한 숨을 내어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치욕의 역사가 전해 내려오는 남한산성에 가서는 삶과 죽음이 포개져 있던, 매섭게 추웠던 병자년 겨울의 그 길을 따라 걸어볼 것이며, 꼼꼼함의 힘으로 땅 위에 이루어놓은 거대한 수예작품과도 같은 수원 화성에서는 끝내 이루지 못했던 정조의 꿈을 떠올려 볼 수 있을테지.

마지막에 소개되어 있는 안성 돌미륵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끌린다. 미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그로 인해 현실의 고통을 인내하게 해 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후 다시 억겁의 세월이 지나 미륵 부처가 인간 세계에 내려오면 이 세상은 뺏고 빼앗기거나 밟고 밟히는 일이 없어진다 했다.

안성 돌미륵을 보니 화순 운주사의 와불이 떠오른다. 그 옛날 사람들도 여전한 믿음으로 미륵을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먹고 사는 것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아졌다한들 인간 세상의 고통은 여전할 것이니까. 그 개벽의 때가 언제가 될 지는 기약이 없다. 미륵은 지금도 여전히 도솔천에서 수행중일테고 중생의 간절한 기다림은 끝이 없고 단념이 없다.

몸은 풍경 속으로 퍼지고 풍경은 마음에 스민다.

다른 건 모두 잊고 이 글귀 하나만 가슴에 새겨본다. 곧 봄이 오겠지. 흙의 알맹이들이 녹고 부풀며 내쉬는 숨들이 뿜여져 나와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노란 꽃들도 피어나 세상을 자신들의 빛으로 채색해 줄 것이다. 봄의 기운 속에서 우리는 또 그렇게 풍경 속으로 퍼지고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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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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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듣는 지혜의 말은 아니건만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된다. 하버드 대학 재학 중에 출가해서 스님이자 대학 교수라는 특이한 삶을 살고 있는 혜민 스님의 인생 잠언집에는 관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마음과 인생에 대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론 안되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가르침과 위로가 담겨 있다.

세상을 제대로 사는 것은 참 쉽지가 않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제쳐두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름난 종교 지도자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 많은 인생 선배의 충고를 통해 짙은 안개 속을 걸어가는 듯한 불안감을 덜어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 속에도 특별한 것은 없다.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또한 저 멀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내 상각이, 내 아픔이, 내 관계가 멈추면서 그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것들에 휩쓸려 살아야 했던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잘 보인다 했다.

잠시 나에게서 벗어나, 내 속에서 빠져 나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최대한 나를, 나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태초의 고요로 마음 안을 들여다 보며 침묵 속에서 모든 생각이나 상(相)을 다 내려놓는 지혜를 배워야겠다. 그래서 마음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마음의 주인이 되는 그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좋겠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읽기에 참 편하게 쓰여져 있는 책이다. 알듯 말듯 선문답과 같은 어려운 얘기들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 속에 바로 삶의 지혜가 묻어나오는 것이다. 혜민 스님의 조용한 가르침 대로만 살 수 있다면 순간순간 더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책 군데군데에 있는 우창헌 작가의 유화들에서도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밤 하늘에서 총총히 빛나는 별, 호수의 반영, 푸른 초원에 화사하게 피어나 있는 아름다운 꽃들, 따뜻하게 안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 지는 듯 하다. 어딘가로 이어져 있을 그림 속 길을 따라 끝없이 걸어보고 싶어진다.

모든 것은 결국 내 마음 탓이다. 다른 사람 때문에, 세상 때문에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세상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일테니. 책을 읽고 또 읽어본다. 잠시라도 잡다한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을 쉬고 그저 좋은 이야기, 따뜻한 그림에만 마음을 집중해 본다. 그렇게 마음을 멈추면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이 비로소 보이게 되리라.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이 참 바쁘게 돌아간다고 느낄 때
한 번씩 멈추고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이 바쁜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바쁜 것인가?"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대해야 합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그를 용서하세요, 나를 위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나 혼자만 따로 행복해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 달라이 라마

누구처럼 되기 위해 살지 마세요.
하나밖에 없는 오직 내가 되세요!

아무리 소박한 꿈이라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해 보세요.
열 명 정도에게 말을 했을 때 쯤에는 꿈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사람을 뽑을 때 딱 하나만 본다.
"나는 틀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좋다.
그러면 다른 사항은 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 안철수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단순히 얼마나 늦게까지 일하고
휴가를 낼 수 있는데도 내지 않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하고
회사에 어떤 구체적인 이익을 가져왔는가에서 찾아야 합니다.

죽기 전에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들,
경험해 보고 싶은 일들,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을 쭉 적어 보세요.
그리고 그냥 그것들을 꾸준히 하세요.
하나씩 하나씩.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이것저것 너무 고민하지 말고,
우리, 그렇게 살아요.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알면 알수록 모른다 여기고,
모르면 모를수록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옮은 말보다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사랑,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문득
손님처럼 찾아오는 생의 귀중한 선물입니다."

사랑은
같이 있어주는 것.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를 믿어주는 것.
사랑하는 그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없는 것.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
그를 지켜봐 주는 것.

사랑을 하면, 배려를 합니다.
배려는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참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보이는 사랑은 작습니다.
그것 뒤에 있는
거대한 사랑에 견준다면......

사랑이 그대들을 손짓해 부르거든 그를 따르십시오.
비록 그의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 안으면 그에게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그 날개 속에 숨겨진 칼이 그대들에게 상처를 입힐지라도.

당신이 저를 순수하고 선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당신이 순수하고 선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드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삶의 열정이 식는 것은 두렵다."

내가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같이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대상에게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로 시작해서
'감사합니다.'로 전개하다,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로 승화되어서
결국에는 언어를 넘어선 온전한 있음 그 자체가 됩니다.

기도하세요.
나와 그가 행복해지길
나와 그가 건강해지길
나와 그가 평화로워지길
계속 기도하다 보면
진짜로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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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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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머나먼 나라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현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나처럼 그저 신화의 단편들만 드문드문 알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구석구석에서 많은 사진들과 그림이 신화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도움을 준다. 신화에 걸맞는 상상력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마냥 허황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는 수많은 신들과, 신이 되고 싶었던 영웅들이 그림 속에서, 조각 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는 것을 보면 깊고 풍성한 유럽 문화의 마르지 않는 샘이 바로 신화였던 것이다.

 

비단 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럽에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의 간다라 지방에 진출해 그리스와 인도 문화가 융화되어 탄생한 그 유명한 '간다라 양식'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의 불교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간다라 불상 속의 부처님 모습이 서양 사람의 느낌을 풍기는 것은 다 여기서 연유된 바가 크다 하겠다.

애시당초 초기 불교는 불상 제작이 활발하지 못하였는데 조각이 발달했던 그리스 문화가 인도에 전해지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 남아 찬란한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는 수많은 불상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다음에 절을 찾게 되면 사자 가죽을 쓴 금강 역사의 모습을 찬찬히 지켜볼 일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수많은 신들의 이름은 마냥 헷갈리기만 하다. 신들의 가계도 역시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도 벌써 나이가 많이 들어 버린 탓인가 보다. 저자의 설명처럼 어른이 되면서 인류의 어린 시절을 기억에 찍어버리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현대 문명과 문화의 뿌리인 신화의 세계에 한발짝 다가서게 됐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온전히 다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른이 되면서 내던져버린 '어렸을 때의 것들'을 다시 되살리는 노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여전히 설렐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설렌다.
나 어렸을 때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가득 차기를.  - 어즈워스의 시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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