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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를 저어서 나아갈 때
풍경은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
말들아, 풍경을 건너오는 저 새 떼처럼
내 가슴에 내려앉아다오.
거기서 날개소리 퍼덕거리며
날아올라다오.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한글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우리 에세이'란 문구를 달고 나왔을까. 하긴 작가 김훈의 아름다운 문장과 깊고 넓은 인문학적 지식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긴 하다. 몇권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읽으며 나 역시도 그 광고 문구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스쳐 지날 수 있는 순간을 이토록 멋지게 표현해 낼 수 있다니.
김훈이 그의 자전거 '풍륜'을 타고 떠난 두번째 자전거 여행은 여행의 무대가 좁은 범위에 국한된다. 1권이 깊은 산속에서부터 남도의 땅끝 바닷마을까지 우리땅의 구석구석을 책에 담고 있어서 좋았는데 실제로 가보지 못했던 경기도 일대의 곳들이 대부분인 2권은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보지 못했기에 김훈의 화려한 수사도 가끔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곳들을 모두 돌아볼 수 있겠지만 그 때의 풍경은 김훈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내달렸던 2004년의 그것과는 또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강, 임진강, 한탄강이 모이고, 개성 쪽에서 내려온 예성강이 그 큰 물기에 합쳐지는 늙은 강, 조강(祖江)의 일몰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며, 갯벌은 여전한 생명력을 그 깊은 속에 감추고 있을 것이며, 광릉 숲은 사람들에게 상쾌한 숨을 내어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치욕의 역사가 전해 내려오는 남한산성에 가서는 삶과 죽음이 포개져 있던, 매섭게 추웠던 병자년 겨울의 그 길을 따라 걸어볼 것이며, 꼼꼼함의 힘으로 땅 위에 이루어놓은 거대한 수예작품과도 같은 수원 화성에서는 끝내 이루지 못했던 정조의 꿈을 떠올려 볼 수 있을테지.
마지막에 소개되어 있는 안성 돌미륵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끌린다. 미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그로 인해 현실의 고통을 인내하게 해 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후 다시 억겁의 세월이 지나 미륵 부처가 인간 세계에 내려오면 이 세상은 뺏고 빼앗기거나 밟고 밟히는 일이 없어진다 했다.
안성 돌미륵을 보니 화순 운주사의 와불이 떠오른다. 그 옛날 사람들도 여전한 믿음으로 미륵을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먹고 사는 것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아졌다한들 인간 세상의 고통은 여전할 것이니까. 그 개벽의 때가 언제가 될 지는 기약이 없다. 미륵은 지금도 여전히 도솔천에서 수행중일테고 중생의 간절한 기다림은 끝이 없고 단념이 없다.
몸은 풍경 속으로 퍼지고 풍경은 마음에 스민다.
다른 건 모두 잊고 이 글귀 하나만 가슴에 새겨본다. 곧 봄이 오겠지. 흙의 알맹이들이 녹고 부풀며 내쉬는 숨들이 뿜여져 나와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노란 꽃들도 피어나 세상을 자신들의 빛으로 채색해 줄 것이다. 봄의 기운 속에서 우리는 또 그렇게 풍경 속으로 퍼지고 스며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