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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소요 - 천리포수목원의 사계
이동협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정원 소요>는 충남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의 사계를 멋진 사진과 함께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풀어낸 책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내게도 한번쯤은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었고, 또 연이 닿았더라면 이미 몇해 전에 다녀올 기회가 있기도
했던 곳이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천리포수목원을 소요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천리포수목원은 이채롭게도 외국인이 설립한 곳이다. 1979년 귀화해 민병갈이라는 우리 이름을
가진 칼 밀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으로,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첫번째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지은이 이동협이 천리포수목원을 알게 된 것은 1992년 어느 일간지의 기사를 접하고서였지만,
그가 이 곳에 처음으로 오게 된 것은 무려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2004년이었다고 한다. 그 세월 동안 수목원 설립자인 민병갈 원장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이동협은 인생의 엇박자에 낙담하지 않고 벽안의 한국인이 남긴 유산을 오롯이 사진에 담아내고 글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했다.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이력 덕분인지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천리포수목원의 구석구석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 하다. 수목원의 부분부분들이 어떤 의미로 구성되어 있고, 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수목원을 제대로 소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뿐만 아니라 사진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그의 사진에서는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강렬하지
않되, 담백하며 기품이 있다. 마치 이른 봄날을 가득 채워주는 목련처럼 부지런한 심성을 지녔으리라 짐작해 본다. 봄처럼 화사하지만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지나침은 자제하려는 마음 또한 천리포수목원의 아름다움을 꼭 빼닮지 않았을까.
책 속에는 천리포수목원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열두달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흔히들
수목원은 봄꽃들이 만개하거나 단풍이 화려하게 물드는 계절에 주로 찾게 되는데, 이 책의 저자 이동협은 모든 것이 녹음으로 우거지는 여름이나 꽃은
물론 이파리들도 모두 떨어져 휴식에 들어가는 겨울에도 수목원을 제대로 소요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독자들에게 일러주려고 애쓴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 책에 끌렸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 역시도 이런 종류의 책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다. 내가 사는 대구에서 그나마 가까운 기청산식물원의 사계를 사진과 글로 담아내 보려는 욕심에 한때는 열심히 식물원을
찾았던 적도 있었지만 끈기가 부족했던 탓인지 아직까지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하긴 천리포수목원을 제대로 알기 위해 101번이나 수목원을 찾았던 이의 노력과 정성을
생각한다면, 나의 욕심에 비해 성취의지는 무척이나 모자랐음을 반성하게 된다. 또하나, 지금껏 화려한 꽃에만 이끌려 식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지에서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동협의 사진 속에 담겨진 이파리들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은 꽃의 화려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책에서 지은이는 정원의 의미와 가치는 정원의 주인과 함께 하며 정원을 보살핀 수많은 손길을
기억하고 있는 나무와 초화들, 그들이 보여주는 정원의 '현재'에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민병갈 원장이 남긴 땅과 흙과 나무와 풀 바람을 음미하며
보낸 6년의 세월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천리포수목원을 걷는 모든 이들이 성찰과 위안, 깨달음과 어울림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은 벌써 수백킬로 떨어진 천리포수목원을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다. 차로도
족히 네시간은 걸리는 먼 곳이지만 조만간 떠나야 할 것 같다. 방 구석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는 카메라도 꺼내고 식물 공부도 다시 시작해 볼
요량이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로운 활력소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 책이 주는 귀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