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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TV 프로그램 출연 이후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스님이 여럿 계시다. 혜민 스님이
그렇고,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법륜 스님 또한 마찬가지다. 두 분을 책에 빗대 굳이 차이를 얘기하자면, 혜민 스님이 단기간에 선풍적 인기를
구가한 베스트셀러, 법륜 스님은 그 내공이 사뭇 남다르지만 오래도록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속세의 인연이 출가한 스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개인적으로는 까마득한 고등학교
선배님이기도 한 탓에 유독 법륜 스님의 행적에는 자연스레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간 스님이 펴낸 여러 책들이 있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사서
보게 된 것은 이번에 새로이 세상에 나온 <지금 여기 깨어있기>라는 책이 처음이다.
법륜 스님의 깨달음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불가에서 흔히 수행의 목적이라
일컫는 깨달음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결국 해탈과 열반이라는
궁극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끊없는 고통과 필연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불가에서 보자면 법문에 대한 보다 높은 차원의 학문적 접근 또는 속세와 담을 쌓고 산중 암자에
들어가 하는 수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지극히 보편적인 방법이다. 이 책을 통해 법륜 스님 역시 독자들을 향해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의 보수적인 불교 종단과는 조금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배타적이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나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독선과 오만에서도 자유롭다.
내가 보면 동산이요, 당신이 보면 서산이라는 말은 흑백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회색분자로 오해받기 십상일 수도 있다.
'무엇무엇은 당연히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마치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스님은 얘기하고 있다.
책에 실려 있는 모든 글들이 하나같이 교훈적인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깨달음은 찾아온다'라는 글이 특히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법륜 스님은 해골 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대사의 일화를 통해
깨달음에 네가지 단계가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그저 부귀영화만을 쫓는 세속적인 삶을 화엄경에서는 사법계(事法界)라고 하는데 깨달음의 가장
낮은 단계로 보면 된다. 사바세계에서 실재처럼 보이던 것들이 마치 거품처럼 사라지고 드러나는 본질의 세계를 이법계(理法界)라 부르는데 이 두번째
단계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현실세계에는 꽤 높은 수준의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궁긍적인 깨달음에 이르려면 조금 더 가야 한다. 원효 스님이 해골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깨끗하고 더러움, 즉 理와 事가 둘이 아님을 깨치게 되는데 이를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라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현상 속에 걸림이 없는
현상이 그대로 실상임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깨달음의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속세의 더러움에 몸을 내맡기고 있는 것인지, 그저 더러움을 멀리 하려 애쓰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마음 공부를 꾸준히 하다보면 더러움 가운데 있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게 될런지, 걸레가 되어 더러움을
닦아내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 지.
물론 어렵겠지만 미리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 아무런 노력 없이 깨달음이 절로 생겨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좋고 맑으면 맑은대로 좋고 추우면 추운대로 좋고 또 더우면 더운대로 좋다"는 스님처럼 항상
깨어있기를 소망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