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페포포 레인보우
심승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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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현 파페포포 시리즈 그 네번째 책인 파페포포 레인보우. 책의 제목답게 빨주노초파남보 일곱가지 무지개 색깔로 각각의 테마를 잡았다.Blue Dream, Red Love, Yellow Tears, Green Peace, Orange Harmony, Indigo Passion, Purple The Colors of You가 바로 그것들이다. 사람들마다 색을 보고 연상되는 이미지는 다를 것이다.

누구는 파란색을 보고 젊음과 열정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우울함과 죽음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반면에 붉은 빛에서 지은이 심승현처럼 사랑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열과 상반되는 죽음의 그림자를 연상하는 이도 분명 있을 거다. 무얼 떠올리든 그 각각의 색들이 하나로 합쳐진 일곱빛깔 무지개는 누구나에게 희망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심승현은 이번 작업을 '인생이라는 도화지 위에 그리는 일곱 빛깔 무지개'라는 멋진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어쩌면 한 장의 도화지이겠구나. 밑그림이야 몇번이고 지웠다 새로 그릴 수 있겠지만 한번 색이 칠해지면 다시는 지울 수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잘못 그렸다고 해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도중에 찢고 새로 그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도화지는 한사람에게 단 한장만 주어질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서 잘 그려야 한다. 선이 어긋나지 않도록, 색을 잘못 칠하지 않도록 매 순간 마음이 허트러지지 않게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은 그래서 치열하다.

또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설령 처음 생각했던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대에게 주어진 단 한장의 도화지를 함부로 찢어 버려서는 안된다. 이왕이면 누구나 탐낼 만한 화려하고 멋진 그림이면 좋겠지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그만의 독특한 그림이라면 그것으로도 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흔해 빠진 이쁜 그림 보다는 자신만의 색깔과 감정이 담겨있는 그림이 훨씬 더 값어치 있는 것일 테니까.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 근처 작업실로 향하는 시간,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작가 심승현. 그가 참 부럽다. 눈부시게 파란 10월의 하늘과 먹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오후 4시의 하늘을 동시에 사랑하는 낭만주의자가 나도 될 수는 있겠지만 그의 재능과 감성을 따라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허전해 진다.

비록 그처럼 따뜻한 그림과 글로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는 없겠지만 나 역시도 느리게 걸으며 산책하는 시간과 오래된 타자기 그리고 낡은 축음기를 소중히 여기는 아날로그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리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으며, 바흐의 음악을 좋아하는 평화주의자, 언젠가 <어린왕자> <꽃들에게 희망을>과 같은 동화책을 쓰고 싶은 꿈을 지닌 드리머(dreamer)를 동경해 보는 것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보이는 것을 동경하는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수가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서툴지만 나만의 색깔과 숨결로 채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무지개를 그리고 싶다.

너무 멀리 있어 슬픈 꿈이 아닌,
남이 정해 놓은 높이 위에 매달린 아득한 별이 아닌,
내 마음 가장 가까이 가장 깊은 곳에서 뜨는 일곱 빛깔 무지개.

흐린 날에도 내 안에는 무지개가 뜬다.
나의 무지개가 누군가의 가슴에
또 하나의 희망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잊을 수 없는 너의 그 눈빛.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 01. 고래와 하마

미래에 있어서의 사랑이란 것은 없다.
사랑이란 오직 현재에 있어서의 활동이다.
현재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톨스토이

사랑과 우정은 비둘기와 같다.
손에서 놓는 순간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 04. 친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잊고 있을 뿐.  - 05. 행복한 시간

사랑은 거울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비추기에
거울 앞에 설 때는 일부러라도 웃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우선 내가 행복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면
우선 내가 따뜻해야 한다.  - Chaper 2. 사랑 그대로의 사랑

기억은 사라져도 아련한 느낌은 지울 수 없고,
사람은 떠나도
머문 자리에 그 향기는 오래도록 남는다.  - 06. 러브 미 텐더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 R. 프로스트의 <자작나무> 중에서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 위에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 인디언 속담

지금 그토록 무엇에 집착하는 것은
마음 깊이 숨어 있는 결핍 때문이다.  - 14. 장난감 마니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바람이 오고갈 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 16. 원형

소중한 건 깊이 숨기는 게 아냐.
그 소중한 순간을 같이 나누는 거야.  - 18. 소중한 순간

"앙상블은 비슷한 목소리의 두 사람이 노래하며 어우러지는 것,
하모니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조화로움."

서로를 다 알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
서로를 다 이해해지 못해도 인정할 수 있다.  - Chapter 5.  너와 내가 부르는 하모니

지금 주위에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보인다면
그건 당신에게 그를 도와줄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 22. 가난한 친구

기쁘다고 너무 기뻐하지 말고
슬프다고 항상 슬픈 건 아냐.

기쁨 옆엔 슬픔이 있고
슬픔 뒤엔 기쁨이 항상 따라오고 있으니까.  - 25. 기쁨과 슬픔

고난와 역경이 아무리 오래 간다 해도
인생이란 시간보다 길 순 없다.  - 27. 시간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무언가 중심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면
이 말을 조용히 되뇌어 본다.

처음 하는 것들은 모두 어설프지만,
마음만은 처음이 가장 아름답다.  - 29. 처음처럼

흐린 날에도, 맑게 갠 날에도
까만 어둠 속에서도, 눈부신 햇살 속에서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너를 닮은 무지개가 뜬다.
너는 언제나 내 안에, 그리고 내 곁에 있다.  - Chapter 7. 그대라는 이름의 무지개

독일의 철학자 엠마뉴엘 칸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을 품을 것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  - 33. 행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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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 메모리즈 - 개정판 우리시대 젊은 작가 1
심승현 글, 그림 / 홍익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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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니스트 심승현의 다섯번째 책이 곧 출간될 모양이다. 한 출판사에서 보내온 신간 예약판매 안내 메일을 보다가 심승현의 예전 그림과 글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해 전에 그의 세번째 책인 파페포포 안단테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의 첫 작품이 세상에 나온 2002년 이후 그의 글들과 그림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개정판 프롤로그에서 그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네 너무나 사소해서 가볍게 지나치는 일상들이 켜켜이 쌓여 비로소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부하게 느껴지기조차 하는 사랑, 추억, 우정, 가족 같은 단어들에 다시 밑줄을 치며 함께 공감하고 싶어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노라고.

공감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나 역시 공감과 위안이라는 두 글자가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 속에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은 어떤 거창한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도 살면서 깨닫게 된다. 말 그래도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함께 느끼고,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공감일 것이다.

아빠의 자전거 에피소드를 보면서 아주 오래전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됐다. 물론 그 에피소드의 내용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아버지가 태워주는 자전거 뒤에 앉아 학교에 가 친구들을 만났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살아 가면서 때때로 불현듯 한없이 넓고 든든하게 느껴지던 아버지의 등이 생각날 때면 마음이 조금은 서글퍼진다.

이제는 그저 '메모리즈'로만 존재하는 기억들은 그래서 더 그리운 법이다. 작가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평생동안 혼자 간직하고픈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추억들을 공감하고, 보이는 상처보다 더 크고 아픈 보이지 않는 서로의 상처들을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또한 생각해 본다. 작가가 에필로그에 남긴 글처럼 지금껏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지를. 우리는 항상 내가 당했던 아픔들만 생각하며 피해의식에 잡혀 살곤 하지만 내가 받은 상처만 기억하려할 뿐, 정작 나로 인해 받았을 그 누군가의 상처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아 왔던 게 아닐까. 지금부터라도 덜 상처받고, 또 덜 상처주며 살아가야 할텐데.

그리움이 쌓이면 병이 된다고,
시인들은 먼 하늘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음 속 그리움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난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면서 아픔을 달랬다.

떠나보낸 사랑을 후회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라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술 한잔에 기대어 그렇게 말했다.
마음 속 후회를 잠재우기 위해
난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고, 그러면서 가끔씩 울곤 했다.

그러면서 난 생각했다.
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용서받기 위해 시작한 이 작은 그림책이
나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이에게 위안이 되기를.....  - Epilogue



널 좋아하는 이유를 묻지 말았으면 한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널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 뿐.....  - 06. 너에게 꽃을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면, 나 자신부터 행복해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은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주어서 기쁜 것임을 알게 되었다.  - 07. 언제부터인가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다.  - 17. 행복

사랑하는 사람을 오직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 했던
어리석은 나를 탓한다.  - 19. 석공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우리 삶은 나눔 속에서 더 풍요로워지는 게 아닐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 20. 파장

어느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에 시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느 때는 목이 타도록 사람이 그립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항상 숙제다.  - 21. 고슴도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마음속에 담아두는 일이다.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저린 것은
그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무 뒤에 숨어서 그 사람을 지켜보는 내 모습에 만족한다.
그리움을 가슴에 묻을 수 있음에 만족한다.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저린 것을 사랑한다.  - 23. 나무 뒤에 숨은 아이

누군가 온다는 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떠난다는 것은, 누군가 다시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 27. 떠나간다는 것

그 아이는 좋아했다.
나도 좋아했다.
이젠 내 친구도 좋아한다.  - 29. 손을 닦아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암호가 있다.
살며시 잡은 손에서 전해져 오는 체온만으로도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34. 우유통 안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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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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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아있는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했고, 사료 조차 남아 있지 않는 고대사는 미스테리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그 미지의 시대에까지 확장해서 펼쳐보곤 한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일 뿐이라면 그 무한한 상상력은 존중받아 마땅하겠지만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그 호기심의 순수성은 곧바로 훼손되고 만다.

나 역시도 오래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 읽었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에 대한 반감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증산도로 이끌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을 통해서 웅대했던 우리 민족의 기상과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고대사를 만나 보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알맹이 없는 공허함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식민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역사의 자존과 주체성에 대한 훼손이 심했던 탓에 우리 사회는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가 깊이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수많은 TV 드라마들이 우리의 웅대했던 고대사를 자랑하듯 속속 제작됐고 역사 학계에서도 이와 같은 기조에서 우리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강해지는 듯한 분위기다.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지나치게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이 심화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노력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겠다. 하루이틀 문제가 아닌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에다 얼마 전부터 중국까지도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자국 중심의 역사 왜곡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수천년 전의 일을 21세기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거꾸로 보는 고대사'의 지은이 박노자 교수도 민족과 국가 경계 너머의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과연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단군신화에서 파생된 견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경략했다고 믿고 있는 광활한 만주 땅이 온전히 우리 것이었으며, 우리가 만주를 잃어버린 고토라고 여겨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독자들을 향해 던지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조선학과를 졸업했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재직중인 박노자(러시아 이름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교수는 정복과 확장이 아닌 평화와 교류의 시대로서의 고대사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책의 에필로그를 통해 '고여있는' 민족사 대신 '흘러가는' 고대사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 국사 교과서의 기본 틀인 국가와 민족 이야기는 일제 침략기 시절에 민족주의 사관으로서의 의미는 있었지만 지금은 수천년 전에 그러했듯 '서로 스며듦'으로서의 역사 인식이 요구된다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세웠던 고대 국가들의 위대성이 아닌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물적, 인적, 사상적 흐름과 국가가 아닌 민중을 서술 대상으로 삼은 이 책은 자신의 역사 서술을 일종의 '역사적 상상력의 반란'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래에 이 반란이 성공을 거둬 역사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전쟁 보다 민중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을 주목하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또한, 수천년 전 이땅의 선조들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의식이 지금처럼 정립되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가정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 고대사의 중심을 지나치게 한반도에 국한시켜 보고 있다는 점이나 위서 논란이 있는 일본서기 등 일본 문헌의 내용들에 집착을 보이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또한 그러한 가정은 중원의 지배자로 자임하고 있는 중국 역사를 바라볼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한국에 귀화한 러시아인이며 우리 고대사에 대해 나름 많은 연구를 해왔으며, 외국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우리 고대사를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는 객관적 위치에 있다고 보는 데도 무리가 있다. 어차피 실증적인 검증이 어렵다는 점에서 박노자 교수 개인의 역사 인식이 우리 고대사에 대한 또다른 오해를 확산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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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청춘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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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제목은 내가 바라보는 나를 참 적나라하게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럼 과연 어른이 된다는 건 뭘 의미하냐고 물어온다면 그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히 대답하기 어렵긴 하지만, 어쨌든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난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단지 나이를 먹고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큰 자동차를 굴리고 하는, 어찌보면 평범하게 보이는 인생의 일정을 밟아가고 있는 걸 얘기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인생이 한없이 서글프게 느껴질 테니까.

그렇다면 이런 정의는 어떨까? 더 이상 꿈이라는 것에 현혹되지 않는 것. 나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 것들에 시간과 돈과 마음을 쓰지 않는 것. 더이상 실망, 상처, 실패라는 말을 용납할 수 없는 것. 있는 그대로 좋은 것을 좋다 얘기할 수 없고, 싫은 것을 싫다 얘기할 수 없는 것. 인생에는 공짜가 없음을 알아가는 것. 정처없이 헤매는 청춘의 끝.

더 서글퍼질까? 그렇다라도 해도 어쩔 수 없다. 부정한다고 해도 결국 그런 것들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어른스러움인 것이다. 이 나이가 되면 이 정도는 이뤄야 하고, 또 이 나이가 되면 정해진 틀에 잘 적응하며, 혹은 자신보다 더 어린 사람들을 정해진 틀에 잘 구겨넣으면서 살라고 강요 당하는 것이 우리가 하루하루 터벅터벅 걸어가는 인생 아닌가.

내 나이도 불혹을 넘었다. 불혹(不惑)이란 게 무언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갈 길을 간다는 말이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지니는 의미는 사뭇 큰 것 같다. 남자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중년(中年)이 아닌 중년(重年)으로, 좀더 무거워지고 깊어져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언제나 청춘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다만 열아홉에도 스물아홉에도 서른아홉에도 마흔아홉에도
아제 내 청춘도 끝나는구나 생각하며
나의 청춘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은 김동률의 뮤직아일랜드, 테이의 뮤직아일랜드, 이적의 텐텐클럽, 스윗소로우의 텐텐클럽 등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작가를 맡았던 강세형의 방송 원고들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A4 2장 분량으로 씌어진 글들의 구성은 독특하면서도 읽기에 편하다. 마치 깊은 밤 라디오 DJ의 목소리를 통해서 누군가의, 혹은 내 자신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좀처럼 어른이 되지 못하는 나는 위안을 얻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어른인 척 살고 있지만 여전히 청춘의 뜨거운 피가 식지 않았음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격려하는 목소리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공감하고 위안을 얻었으니 이젠 또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이 책의 표지에는 '여러 번의 실망, 여러 번의 상처, 여러 번의 실패, 그 사이 어느덧 겁쟁이로 변해버린 청춘에게 보내는 설렘, 두근거림, 위안의 이야기'라는 말이 씌어져 있다. 이미 육체적인 나이의 청춘은 잃어버린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한편 언제까지나 청춘이고 싶다. 그래서 "청춘, 내게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늘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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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삶에 홀리다 - 손철주 에세이, 개정신판
손철주 지음 / 오픈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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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났다.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며 그림 이야기를 해왔던 손철주의 에세이 '꽃 피는 삶에 홀리다'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처럼 마치 책 속에 담긴 글에, 그림에, 시에 홀린 기분이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다, 그림이다> 등 이전에 나온 그의 책을 미처 읽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그래서 더 커진다.

 

이 책은 크게 세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은 책의 제목과 같은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제2장은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봄날의 상사를 누가 말리랴'는 이름을 제각기 달고 있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는 첫 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일상의 담백한 이야기와 느낌이 담겨있는 것이 좋다.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가련하다, 한 해의 봄날이여

오고감이 비바람에 달렸구나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선조 때의 문장가 송한필의 오언시에 담긴 정서는 다분히 보편적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봄날의 정취에 대한 아쉬움은 감정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금새 지고 나는 꽃을 보면서 사람들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될 것 같다.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하네

피고 짐이 모두 시름겨우니

꽃 심는 즐거움 알지 못해라

種花愁未發 花發又愁落 開落摠愁人 未識種花樂

 

가는 봄을 아쉬워 하는 마음보단 바람에 피고 지는 꽃에 연연하지 말고, 비바람을 탓하지 않는 성숙함을 배워야 하겠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의 시에서 그 깊은 뜻을 배워볼까. 꽃은 피고 지는 것이 제 태어난 숙명이요, 우리는 그저 자연의 섭리 속에 피고 지는 꽃을 심고 가꾸고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리면 그만일 것이다. 어차피 좋은 것 두고 떠나는 게 인생이니까.

 

그의 박학다식함이 부럽다. 그의 물 흐르듯 유려한 문체와 짐짓 젠 체 하지않는 편안함을 닮았으면 좋겠다. 미술 담당 기자라는 그의 출신답게 그의 책 속에는 아는 만큼 보이는, 보는 만큼 보이는 그림들이 있다. 어차피 우리 사는 세상이 다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림에 좀더 집중할 필요가 있겠지만 아직은 보는 눈이, 느끼는 마음이 부족한 가 보다.

 

내게는 오히려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는 시들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원하는 옛사람들의 한시를 한자리에 모아 놓았는 지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은 그래서 꽃 피는 봄에 더 잘 어울릴만할 것 같다. 지은이의 표현처럼 소생하는 봄날의 상사를 감히 누가 말릴까 싶다. 두고두고 시간 날 때마다 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아뿔싸, 문 열자 봄이 가고 버들개지가 진다. 구름 가도 구름 와도 산은 다투지 않는데,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삶은 이운다. 짧아서 황홀하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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