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을 순례하다 -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지은 달고 따듯한 삶의 체온이 담긴 8개의 집 이야기 집을, 순례하다 2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사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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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세가 있어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 남은 인생의 꿈 가운데 하나도 좋은 터에 자리잡은 집을 한채 짓는 것이다. 아마도 그 꿈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집을 짓는 데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 것이 분명하고, 지금의 내 벌이로 그 돈을 충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종이 위에 끄적거려 보고, 머릿 속으로 그 풍경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어려서 부터 존재하던 공상가적인 기질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자유, 무언가를 꿈꾸어 볼 수 있다는 것은 한편 괴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밋밋한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이 되어줄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건축에 관련된 책들을 자주 보게 된다. 전국의 사찰들을 많이 찾아 다니면서 자연스레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언제가 될 지 모를 건축의 대상 역시 한옥으로 삼았다. 우리 전통 건축에 대한 관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기 위한 첫 단계로 우선은 책을 통해 건축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잘 지은 집이란 무엇일까.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가지의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은 집을 짓는 건축가의 시선이 있을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그 집에서 실제로 거주하고 삶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의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건축가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짓는 경우라면 둘 사이의 간격은 생기지 않거나 아주 미미한 것일 수 있겠다.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 전문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전세계 곳곳에 남긴 8개의 집을 소개한 책은 그래서 흥미롭다. 여덟 채의 집 가운데에는 그 유명한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연립주택도 있고, 대부호였던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도 있다. 각각이 독특한 색채와 건축 철학을 가지고 있는 집들을 한권의 책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들의 재능이 부럽다.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축학적 상상력 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재능 말이다. 사람들 마다 보는 눈이 다르겠지만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순례한 8곳의 주택은 일반인들의 눈에 그저 예쁘고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간혹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평범함을 뛰어 넘는 기괴함도 일견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찰스 무어와 동료들이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춥고 황량한 해안가 언덕 위에 지은 시 랜치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바다의 목장'이란 말에서 유래했듯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잘 조화되는 형태로 건물 왼쪽에 예전부터 있어왔던 낡은 헛간의 느낌과도 닮아 있다. 지은이의 표현대로 이 집은 '몽상을 키우는 집' 답다. 71쪽에 소개되어 있는 그림 속에서처럼 밝은 달빛 아래 유닛 No.2의 선룸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들은 어떤 몽상을 하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 진다. 그 공간 속에 스며드는 따스한 달빛마냥 나 또한 그 속에 스며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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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김종배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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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평론가 김종배는 내게 익숙한 이름이다. 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뉴스 브리핑' 코너로 아침 시간을 열어 주었고, 그가 운영하던 1인 미디어 '미디어토씨'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지적이면서도 다소 야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외모는 이번에 출간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의 표지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됐다.

어릴 적 나는 유난히 뉴스와 신문에 집착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었고 정치인들, 고위 관료들의 이름을 외는데에는 이골이 났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미디어 홍수인 시대는 아니었기에 세상 소식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80년 군부에 의해 자행된 언론 통폐합에서 살아 남은 일부 언론은 그래서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소명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일부였지만 말이다.

요즘은 어떤가. 시민 모두가 기자인 세상이고, 수많은 블로거들이 1인 미디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 났지만 그것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판단은 더욱 어려워졌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참되고, 내게 유익한 정보를 가려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김종배는 책의 여는 글에서 이를 '민주시민으로 살기 위한 올바른 주권 사용법'이라 표현하고 있다. 뉴스를 그 자체로 사실로 여기고, 뉴스 행간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이는 우리 국민의 행태를 그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에 끌려 언론사의 '의도'에 끌려 다니는 쏠림 현상으로 인한 문제는 사실 심각한 수준이다.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소위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우리나라 언론이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들은 진보 진영에 대해 끊임없이 색깔을 덧씌우려 하고 있고, 경향과 한겨레로 대표되는 진보 언론 역시 보수 진영을 수구꼴통으로 국민에게 인식시키려 애쓴다. 상대를 인정하기 보다는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적개심이 기사 구석구석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뉴스를 제대로 읽으라고 충고하고 있다. 뉴스를 제대로 읽으려면 제대로 가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듯 뉴스에 담겨 있는 오류와 왜곡을 추려내며 뉴스를 따져 읽을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언론사에 의해 취사선택되고, 구성되고, 재해석된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또하나, 뉴스를 구성하고 있는 조각들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찾아내기 위한 합리적인 의심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심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의심'이라 하는 것은 뉴스에 담겨진 의도와 목적을 가려내는 것을 말한다. 언론사가 자기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전해 국민들을 어느 일방의 쏠린 방향으로만 몰고 가려는 불순한 의도를 파악해 내야 하는 것이다다.

바쁜 세상에 뉴스 제대로 보기도, 신문을 여유롭게 꼼꼼히 읽어 볼 시간도 없는데 기사 속에 담긴 숨어 있는 의도까지 우리가 살펴봐야 하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언론사의 주장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인해 '진실'은 불순한 의도에 묻혀 버리고 조작되고 왜곡된 것이 비일비재하다.

이른바 언론 고시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기자들이지만 그들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설령 그들이 발로 뛰며 취재해 사실을 기사로 만들었다 해도 데스크의 의도된 재단을 거쳐 왜곡되고 조작된 진실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뉴스는 그 속에 수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수많은 만두 제조업체를 파산으로 이끌었고 애꿏은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갔던 '쓰레기 만두' 파동이 그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일부 보수언론들의 악의적인 기사들이 그러했고, 지금도 뉴스를 꼼꼼히 살펴 보면 찾아낼 수 있는 수많은 낮뜨거운 실수들과 나쁜 의도들은 꿈틀거리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있다.

진보언론이나 보수언론이 상대편을 설득하는 논리가 아니라 우리 편의 박수를 받는 논리에만 집중하다보니 사회적 소통은 접촉이 아니라 차단으로 귀결된다. 언론의 정파성이 독자의 편가름을 낳아버린다는 김종배의 진단에 공감한다. 감정적 배척은 속을 시원하게 할지는 몰라도 생산적 토론과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이른바 언론 종사자들이 귀기울여 들었음 좋겠다.

더 이상 속아서는 안될 일이다. 시간이 없다며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선정적인 제목 한줄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오류를 찾아내고, 부적절한 관계를 파악해 낼 수 있는 합리적, 정치적 의심을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뱉어만 내고 자신의 말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 '괴물'로 전락한 무책임한 언론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된 민주시민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에.

"당신은 어떤 뉴스를 '교리'로 삼고, 어떤 뉴스 생산자를 '교주'로 받들고 있는가?" "좌파 언론은 합리적이고 우파 언론은 편파적이라는 틀에 갇혀 뉴스를 읽지는 않는가" "그 뉴스가 전하는 자극적인 이야기만을 쫓아다니며 '행동대원'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김종배가 톡! 까놓고 물어보는 질문들에 우리가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성적으로 의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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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 기다려
심승현 지음 / 홍익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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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 기다려'는 지난 2002년 심승현 작가가 '파페포포 메모리즈'로 국내에 처음으로 카툰 에세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개척한 이후 10년만에 다섯 번째 나온 책이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작가도 독자도 많이 자랐을 것이지만 파페포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추억, 사랑, 격려, 희망이라는 단어들로 귀결되어 진다.

몇해 전 우연히 '파페포포 안단테'를 읽고 심승현과 파페포포의 팬이 되었고 다섯 권의 책을 모두 읽어보게 됐다. 파페와 포포는 나의 이야기일 수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일 수도 있어 쉽게 공감이 되어 좋았다. 결코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 같지 않음에도 세상을 향해 보내는 따뜻한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어찌보면 식상한 주제들일 수도 있다. 추억이라는 것도, 사랑과 격려라는 것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기에 우리는 그의 변함없는 그림과 글 속에서 위안을 얻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책을 읽고 있노라며 마치 누군가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 하다.

"길 모퉁이만 돌아서면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이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더 힘을 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마침내 그토록 간절히 찾고 있던 행복을 손에 쥘 수 있는데도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주저앉는지 알기에, 파페와 포포는 큰 목소리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사랑도 첫사랑이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겠지만 내게는 파페포포 시리즈 역시 어느해 여름밤 스탠드 불빛 아래서 '파파포포 안단테'를 읽으며 맛봤던 마음의 울림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내 삶에 허락된 길이만큼 살고 싶지 않다. 내게 허용된 깊이와 넓이만큼 살기를 바란다는 글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새 익숙해진 탓일까. 이제는 새로운 파페포포 시리즈를 기다리지 않을 것 같다. 추억과 사랑, 격려, 그리고 희망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살아가겠지만 불혹의 나이를 넘긴 작가에게도, 나에게도 이제는 좀더 새로운 파페포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는 곳마다 행복이 내 뒤를 따라다니는 것을 보며,
결국 행복이란
어떤 일정한 틀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고스란히 내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루소

직접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며 환호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방의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 Episode 05 사랑을 음미하다

육체의 다이어트는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일.
정신의 다이어트는 내 마음에 비치는 나를 응시하는 일. - Episode 10 오늘도 가벼워지기 위해

마음이 지어낸 괴물에 무릎 꿇지 않는 것,
정말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겁을 먹으며
지레 주저 앉을 필요는 없다는 것....... - Episode 19 바퀴벌레의 존재 이유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그만이지,
제비꽃이 핌으로써 봄의 들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건 제비꽃으로서 알 바가 아니라네......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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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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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을 가르쳐 주겠다는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으며 여러번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어렵기도 하면서 또 어찌보면 아주 간단해 보이기도 한다. 복잡한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서 6가지 법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로버트 치알디니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심리학과 석좌교수로 그가 사회적 영향력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에는 이탈리안 가정에서 태어났으면서 독일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던 밀워키시의 폴란드인이 많은 동네에서 자랐다는 특이한 배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저자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남에게 잘 속는 어리숙한 사람, 속칭 '봉'으로 살아온 개인적 경험이 설득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임을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어떨까 생각해 봤다. 나 또한 귀가 얇은데다 남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관심사가 아닌 일에 대해서는 오지랖이 넓지 않다는 것이 지은이와 다른 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른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은 생소한 것들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 오면서 이런 법칙에 기대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왔고, 한편 타인에게 설득당하기도 했었다. 거창하게 법칙이라 써 놓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면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상호성의 법칙 : 샘플을 받아 본 상품은 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관성의 법칙 : 내가 선택한 상품과 서비스가 최고라고 믿고 싶어한다.
사회적 증거의 법칙 :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더 많이' 팔릴 것이다.
호감의 법칙 : 잘 생긴 피의자가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권위의 법칙 : 상 받은 상품, 큰 체구, 높은 직책, 우아한 옷차림에 약하다.
희귀성의 법칙 : 한정판매, 백화점 세일 마지막날에 사람이 몰린다.


여러 심리학 실험들과 일상에서의 사례들을 통해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등 6가지 설득의 기술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 영업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바이블이 될 수 있겠지만 이 법칙들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많다.

많이 알려져 있는 실험이긴 하지만 권위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밀그럼 실험의 결과는 사실 충격적이다. 분명 상대방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권위'에 기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성향을 드러냈다는 것은 나도 언젠가는 그런 상황에 처하면 가해자가 될 수도,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오싹함을 안겨 준다.

고도의 합리적 판단을 할 것 같은 인간들이 오히려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매순간 너무나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그래서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속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해 벌어지는 비극들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도 6가지 법칙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우리를 '봉'으로 만들어 버리는 불로소득자의 설득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방어전략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논리적으로 타인을 설득하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기술이지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큰 노력 없이 사적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그들의 현란한 기술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것 같다.

호의와 술책을 잘 구분할 것, 처음에 자신의 의도했던 바를 돌아볼 것, 조작된 사회적 증거에 대해 반격을 가할 것, 설득 전문가와 그의 요청을 분리시킬 것, 전문성과 트릭을 구분할 것, 흥분하지 말고 득실을 따져볼 것 등 책에서 가르쳐 주는대로만 따르면 우리도 설득 심리학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나만 알고 있을 수 있게 이 책이 빨리 절판되었으면 좋겠다"는 한 독자의 바람과는 달리 이 책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노련한 불로 소득자는 이미 새로운 설득의 기술들을 연마하고 있일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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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울 여행산문집 2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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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이병률의 두번째 여행 산문집이 나왔다. 책을 주문하고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손에 쥘 수 있었다. 기다림의 연속 끝에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라는 마음에 드는 제목과, 깔끔하면서도 눈길을 끄는 표지를 가진 책을 만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오랜 기다림의 허기를 채우고 싶었던 것인지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난해했다. 몇 시간만에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첫 느낌은 딱 이랬다. 물론 시인의 글에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 축약이 들어 있어서 긴 호홉으로 여러 번을 들여다 보아야만 지은이의 속마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법이긴 하다. 그의 전작 '끌림'을 통해 시인의 언어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에 깊이 매료되었던 내게 이번 책은 확실히 '공감' 면에선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특이하게도 이 책에는 페이지도 없고,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도 없다. 책에 담겨 있는 58개의 글들은 각각 독립적이다. 스토리의 일관된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딘가를 열어서 읽어도 좋다. 읽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훌쩍 뛰어 넘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다음에 내가 시인의 눈과 가슴으로 바라보고 느낄 때가 온다면 그때 다시 꺼내서 찬찬히 곱씹어봐도 좋겠다.

부러운 사람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여행과 사진에 관심이 많지만, 막상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날 수 없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병률은 그런 존재다. 멀리 떠나서야 겨우 마음이 편하니 이상한 사람. 아무 정한 것도 없으며, 정할 것 또한 없으니 모자란 사람이라 책 표지에선 이병률을 소개하고 있지만 '떠날 수 있고, 마음 속의 새장 속에 뭔가를 담을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자기는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만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 이토록 많이 받아서 영영 받기만 하면서 사는 사람으로 굳어져 버리게 될까 두렵고 어려웠던 사람. 그렇게나마 내 허술한 빈 곳을 가릴 수 있으니 나에게는 축제 같았던 사람. "나이 많은 사람 만나러 나오는데 뭐하러 씻고 나와요?"라고 말해 주는 사람. 작가는 그 사람을 나를 덮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참 멋진 말이다. 때로는 이불이 되어 따뜻한 온기를 품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모자라고 부끄러운 치부를 모른 척 덮어주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 살아가는 것이 한결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누군가 나를 덮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과연 나는 지금 누군가를 덮어주는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그럴 수 있을까.

책이 참 예뻐서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 글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아도, 가슴을 쿵쿵 울리지 않아도 흰 여백을 채우고 있는 까만 글자들을 좇게 된다. 글과 함께 실려 있는 수많은 그의 사진들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봤다. 그동안 내가 찍어왔던 수많은 사진 가운데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것들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 사진 속에 담겨진 수많은 시간과 기억들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호사스런 행운이 내게도 찾아오기는 하는 걸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그런데 말이다. 나는 말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당신이 좋다.


"거기 한쪽에 두고 가. 그냥 내가 바라보게......"
어쩌면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말이 생각나는 걸까.
그 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걸까.
단지 우리가 며칠 머물던 호텔의 건너편 쪽에 앉아 있을 뿐인데. 3# 작은 방을 올려다 보았다

사랑은 사람이 하는 일 같지만 세포가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 사람이 내뿜는 향기와 공기, 그리고 기운들에 불쑥불쑥 반응하는 것이지 않던가. 사랑은 그래서 일방적인 감정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5# 그날의 쓸쓸함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 좋다.
몰래,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시장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좋다. 10#

11월과 12월 사이를 좋아합니다. 그건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삿포르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11#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

나는 너를 반만 신뢰하겠다.
네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너를 절반만 떼어내겠다.
네가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3#

문득 행복하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기울고 있어서가 아니라
넌 지금 어떤지 궁금할 때.

많이 사랑했느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게 누구였는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만큼을 살았는지,
어땠는지 궁금할 때.

나를 지나간
내가 지나간 세상 모든 것들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싶어서
당신을 만난 거겠다. 14# 묻고 싶은 게 많아서

지금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한 가지가 있다면
당신 앞에서 우는 일.
그래도 우리는 이 생에서 한 번은 만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17#

"만약 네가 원한다면 우리 집에서 지내도 좋아."
"우산 가져 왔어요?"
"또 볼 수 있겠죠?"
"나 대신, 다 다녀줄래요?" 27# 황홀한 말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사람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36# 무조건

어차피 마지막은 마지막이었다.
그렇다라도 그 순간이, 그 장면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37# 당신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외롭지 않으면 또 무엇으로 살아요?"
당신은 그 외로움의 힘으로 가장 멀리 가겠다는 말인가. 훨훨, 당신이 가고자 했던 곳들을 당신은 지독히 밟으며 다닐런가. 어쩌면 우리는 그곳에서 외로움의 힘으로 마주쳐 그렇게 술 한잔 나눌런가. 43# 높고 쓸쓸한 당신

사랑은 삶도 전부도 아니다. 사랑은 여행이다.
사랑은 여행일 때만 삶에서 유효하다. 47# 사랑도 여행이다

하루 한 번쯤
처음 영화관에 가본 것처럼 어두워져라.
하루 한 번쯤, 보냈다는데 오지 않은 그 사람의 편지처럼 울어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밖에는 없을 것처럼 좋아해라.
옆에 없는 것처럼 그 한사람을 크게 사랑하라. 48#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바보 같은 사람.
여러 번 당신에게 말했지만 나는 멀리 있는 사람.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
당신에게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한 사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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