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을 순례하다 -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지은 달고 따듯한 삶의 체온이 담긴 8개의 집 이야기 집을, 순례하다 2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사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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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세가 있어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 남은 인생의 꿈 가운데 하나도 좋은 터에 자리잡은 집을 한채 짓는 것이다. 아마도 그 꿈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집을 짓는 데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 것이 분명하고, 지금의 내 벌이로 그 돈을 충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종이 위에 끄적거려 보고, 머릿 속으로 그 풍경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어려서 부터 존재하던 공상가적인 기질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자유, 무언가를 꿈꾸어 볼 수 있다는 것은 한편 괴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밋밋한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이 되어줄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건축에 관련된 책들을 자주 보게 된다. 전국의 사찰들을 많이 찾아 다니면서 자연스레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언제가 될 지 모를 건축의 대상 역시 한옥으로 삼았다. 우리 전통 건축에 대한 관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기 위한 첫 단계로 우선은 책을 통해 건축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잘 지은 집이란 무엇일까.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가지의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은 집을 짓는 건축가의 시선이 있을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그 집에서 실제로 거주하고 삶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의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건축가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짓는 경우라면 둘 사이의 간격은 생기지 않거나 아주 미미한 것일 수 있겠다.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 전문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전세계 곳곳에 남긴 8개의 집을 소개한 책은 그래서 흥미롭다. 여덟 채의 집 가운데에는 그 유명한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연립주택도 있고, 대부호였던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도 있다. 각각이 독특한 색채와 건축 철학을 가지고 있는 집들을 한권의 책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들의 재능이 부럽다.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축학적 상상력 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재능 말이다. 사람들 마다 보는 눈이 다르겠지만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순례한 8곳의 주택은 일반인들의 눈에 그저 예쁘고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간혹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평범함을 뛰어 넘는 기괴함도 일견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찰스 무어와 동료들이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춥고 황량한 해안가 언덕 위에 지은 시 랜치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바다의 목장'이란 말에서 유래했듯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잘 조화되는 형태로 건물 왼쪽에 예전부터 있어왔던 낡은 헛간의 느낌과도 닮아 있다. 지은이의 표현대로 이 집은 '몽상을 키우는 집' 답다. 71쪽에 소개되어 있는 그림 속에서처럼 밝은 달빛 아래 유닛 No.2의 선룸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들은 어떤 몽상을 하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 진다. 그 공간 속에 스며드는 따스한 달빛마냥 나 또한 그 속에 스며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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