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 -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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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문화재 답사기가 서울의 이야기를 담아 새로 나왔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편에서 경복궁을 소개하긴 했지만, 온전히 서울에 있는 문화유산을 담은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홍준 교수는 서울편을 네 권으로 담아 낼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 첫 편은 종묘와 서울의 궁궐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일본의 교토가 사찰의 도시, 중국의 소주가 정원의 도시라고 한다면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 부를만 하다고 그는 얘기한다. 역사도시로서의 서울의 품위와 권위는 조선왕조 5대 궁궐에서 나온다고 단언한다. 1997년에 종묘와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일본이나 중국의 사례에서처럼 5대 궁궐을 모두 묶어 한꺼번에 등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편 제1권의 제목은 '만천명월 주인옹을 말한다' 이다. 이는 창덕궁 존덕정에 걸려 있는 정조의 글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존덕정은 인조때 세워졌는데 이후 숙종, 영조, 정조, 순종까지 많은 임금이 이 정자에 와서 시와 문장을 남겼다. 유홍준 교수는 그중에서도 정조가 남긴 '만천명월주인옹 자서'라는 글이 이 정자의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 글은 정조가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47세때 쓴 것이라고 하는데 임금인 자신이 만천명월의 주인인 근거와 임금으로서 할 일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피력하고 있다고 한다. 대문장가로 꼽히는 정조가 남긴 글 중에서도 명문으로 꼽힌다고 하니 존덕정에 가게되면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려 한다. 정조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 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 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이 만천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과연 위대한 통치자다운 통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창덕궁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소요하며 옛 사람들의 깊은 사유를 되새겨보고 싶어진다. 엄격한 유교적 가치에 따라 지어진 경복궁에 비해 창덕궁은 원래 있던 땅의 형태를 따라 보다 자연적으로 지어졌다 한다. 그래서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지 않을까 새삼 기대가 되는 것이다.

 

100미터가 넘는 맞배지붕이 9개의 둥근 기둥에 의지해 있는 종묘도 가보고 싶다. 정전의 지붕과 마당이 온통 눈으로 하얗게 덮힌 모습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거대한 수묵 진경산수화 같다는 유홍준 교수의 표현 그대로다. 그 풍경을 마주하노라면 절로 압도되고 말 것 같다. 삶을 영위하는 공간인 궁궐과, 죽음의 공간이자 영혼을 위한 공간인 종묘는 사뭇 다른 느낌이리라.

 

유홍준 교수는 종묘를 제대로 보려면 늦가을 토요일 오후나 눈 내린 겨울 아침이 좋다고 권한다. 종묘 건축의 참된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도를 따라 정전으로 곧장 들어가야 종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종묘의 길들은 그 자체가 건축적 질서이자 의례이고 행위가 된다고 하니 깊어가는 가을날에 느린 걸음으로 한번 걸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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