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 당신과 문장 사이를 여행할 때
최갑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젠 오랜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떠나야 하는, 여행이 위로가 된다고 믿음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지닌 편한 친구 말이다. 그래서 어제 보고 오늘 또 봐도 반갑고, 십수 년만에 봐도 그간의 공백이 전혀 낯설지 않은 좋은 친구 같은 최갑수의 책을 다시 펴보게 됐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참 그다운 책 제목이다. 그래, 최갑수에게 사랑과 여행을 빼면 무엇이 남게 될까. 내가 그를 직접 만난 적도 없을 뿐더러, 이 세상에서 단 한마디의 얘기도 나눈 적이 없는 사이면서도 최갑수의 여러 책들과 사진을 통해 그를 꽤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도 사실은 '오버'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행작가란 직업은 결국 글과 사진으로 기억되게 마련이다. 글과 사진을 통해 그를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니만큼 그의 고난한 작업 속에 결국 '그 사람'도 그 속에 녹아드는 것이다. 만약 글쟁이 최갑수와 실제 최갑수의 간격이 크다면 그가 매우 뛰어난 글쟁이라는 반증이라 치부하면 그만일테고.

 

책을 읽으며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처음 그의 책을 접했을 때 느낌이 지금도 여전하다. 글의 스타일이나 사진의 풍미 또한 그렇다. 그런 이유로 변함없이 최갑수 작가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서 "여전하구나"는 얘길 자주 듣곤 하는 나로서는 굳건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이에게서 느끼는 동질감이 무척이나 반갑다.

 

여행이 일상이라면 어떨까. 여행이 밥벌이라면 또 어떠할까. 궁금하다. 지극히 무거운 밥벌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에게 여행은 일종의 피난이요, 기약없는 기다림이기도 하다. 여행은 그 자체로서 큰 즐거움이다. 그저 일상을 벗어나 권리만을 무한히 향유하면 되는 여행이야말로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속절없이 찾아오는 기회마저 함부로 맞이하기 어려워진다. 왜 완행열차를 탔냐는 질문에 지금 들고 있는 책을 마저 다 읽으려고 탔다는 그녀처럼 나도 느려터진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상상해 본다. 통일이 되어서 부산에서 청진이나 신의주까지 가는 완행열차가 생긴다면 하는 낭만적인 상상을 가끔 해보는 요즘이다. 책을 읽으려고 기차를 타서 새로운 것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보면 어찌 아니 좋으련가.

 

언젠가

당신과 함께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시작하거나 혹은 사랑을 잊기 위해

생을 끌어안고 때로는 견디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펼쳐지는 낯선 풍경이,

낯선 이가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엉망으로 얽힌 우리 생을 위로해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떠날 수 없을 때

생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다독여주는 문장들,

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여행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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