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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1 - 역사평설 ㅣ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평점 :
애시당초 역사에 가정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돌이켜 보면 수없이 많은 치욕의 기억이 존재할테지만 나는 양란의 시대인 선조와 인조 재위 때를 포맷하고 싶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지금의 우리 형편을 보고 '헬조선'이라 비하하지만, 전쟁터보다 더한 지옥은 아마 현실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국된 후 200년이 흐른 1592년, 조선은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섬나라 오랑캐라 얕보았던
일본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며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물렸다. 일본의 도발 징후가 뚜렸하게 감지되었음에도 조선 조정은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아니,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보자면 그들은 엄연히 눈앞에 닥쳐오고 있는 고단한 미래에 애써 눈감고 싶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통한의 역사를 겪은 조선에게 하늘은 더욱 가혹했다. 유성룡은 징비록을
통해 참혹한 전란을 미래의 교훈으로 반면교사로 삼고자 했지만 현실 정치는 그의 뜻을 따라가지 못했다. 무능했던 군주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권좌에 올랐지만 머지 않아 큰 격변이 또 한번 휘몰아 친다.
최근 들어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는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왜곡된
군주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도 그를 것이 연산군과 더불어 반정으로 쫓겨남으로 인해 조종의 시호를 받지 못한 군주였으므로 정사에서 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던 탓이다. 쫓겨난 군주 였기에 그는 반정세력에 의해 어리석은 군주로 역사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광해군 시대에 있어 여러 국정의 난맥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국제 정세를 보는 밝은
눈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임진왜란 이후 명은 급격하게 쇠락하고 있었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만주의 여진족이 발호하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근거리 중립 외교를 펼침으로써 국가의 안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조선으로선 안타까운 정변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은
기울어져가는 중원의 명 왕조에 사대를 강화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신흥강호 후금의 심기를 건드리고 만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교조주의와 어설픈 소중화 사상의 사대주의에 빠져 파국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역사에서 재확인하면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바로 그 아픔의 역사를 재인식하기 위해 쓰여졌다.
그는 "병자호란은 과거아 아닌 현재다. 오래된 미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반추해야 할 G2 시대의 비망록"이라고 새삼 이 시대에 병자호란을 다시
꺼내 이야기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수백년 전 우리 조상이 그랬듯 주변 정세를 제대로 살피고 준비하고자 하는 뜻이다. 떠오르는 거대
중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또다시 피곤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제국'이 쇠퇴하고 '새로운 제국'이 떠오르는
전환기마다 한반도는 늘 위기를 맞았고, 지혜롭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세력이 주도하는 G2시대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모두 지당한 지적이다. 임진왜란이 그랬듯 병자호란 역시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절한 패배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불과 수십년 전에 그토록 처참한 전란을 경험하고서도 과오를 고쳐나가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비하한다 해도 도무지 변명할 수 없는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로서, 김훈의 <남한산성>을 통해 병자호란을 겪었던 수백년 전
조상들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현재의 우리 삶이 아무리 팍팍하다 한들 그때 그 사람들의 삶에 비할 수 있을까. 어려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늙으막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까지 겪어야 했던 억세게 운 나쁜 사람들 앞에서 감히 '헬조선'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참극을 다시 겪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다시금
곱씹어 봐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그저 듣기 좋은 구호로 끝나서는 안된다. 역사는 현재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고,
반복되는 측면도 있다. 병자호란이 지금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일 수 있다는 한명기 교수의 지적에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