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부탁해 - 권석천의 시각
권석천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흥미로운 대목이다. 종편인 JTBC에서 '송곳'이란 드라마를 편성하여 방영한다거나, 대표적인 보수언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보수정권에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이 드라마나 칼럼의 화두는 다름 아닌 '정의'. 다소 거창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 또한 바로 이 정의가 아닐까.

 

<정의를 부탁해>라는 책은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의 칼럼집이다.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추천사를 통해 "나는 이 책을 지금 처음 손에 쥔 사람들에게 그냥 서문만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서문에서 어떤 뭉클함을 느낀 독자라면 그 다음 본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가 권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해도 글은 그 본질을 추구하며 권석천은 어떤 허장성세도 없이 그 본질로 들어간 글쟁이다."며 일독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물론 내가 손석희 앵커의 추천사 때문에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나, 그의 얘기처럼 이 책의 서문을 통해 지은이 권석천의 사람됨과 글쓰기의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논설위원의 역할이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의 글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책만 보면 우리 사회가 온통 비리와 부조리로 가득찬 것 같아 암울하다. 정의가 필요한 세상이지만,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것이 정의'라는 지랄같은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정의를 논하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어야 할 정도로 우리는 찌질하다.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삶의 고단함을 핑계삼아 우리들은 그 찌질함을 포장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기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이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찌질함으로 인해 정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면죄부가 주어질 수도 없다. 정의로운 세상은 물론 위대한 리더와 같은 슈퍼 히어로의 등장으로 가속도를 붙일 수 있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은 사회 구성원 전반의 의식이 제자리를 찾아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언제나 남탓으로 돌려서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정의를 구현할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한편, 이렇게 엉망인 세상인데도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질 정도다. 젊은이들이 얘기하는 '헬조선'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불과 수십년전에 비해 국민소득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 속시원한 해결책을 주는 이도 없다. 총체적인 절망 상태에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할 것인가. 물론 여건이 허락한다면 지옥같은 한국을 떠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마저도 엄두를 낼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라면 내가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보다 거창한 것은 거창한 일을 하는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보다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은 내 안에서 정의를 정립하는 것이고, 그것을 주변과 함께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현재의 삶이 팍팍하지 않은 이는 드물다. 각자 모두의 사정이 있다. 나의 사정에만 매몰되면 옆사람의 힘듦에 눈돌릴 수가 없다. 권석천은 정의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보다 앞서 배려를 부탁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필요한 것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정의로움은 빈 자리를 양보하고, 마주친 골목에서 옆으로 비켜주는 작은 배려 속에서 비로소 그 싹을 튀우고, 넓은 품을 가진 나무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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