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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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오래 전에도 중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군생활하던 1993년쯤이었을 것이다. 마침 5분 대기조라서 짬짬이 책을 볼 시간이 있었던 덕분에 눈에 띄는 책들은 가리지 않고 섭렵했었다. 덕분에 동양의 고전이자, 쉽게 읽기 힘든 중용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다시 중용을 만났다. 이번에는 도올 김용옥의 해석으로 중용 전편을 원문과 함께 읽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책을 펴고, 또 덮고를 반복한 것이 1, 2년은 족히 지난 느낌이다. EBS에서 방송되었던 <중용, 인간의 맛>을 차근차근 보았더라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 난 <중용>을 어렵사리 읽었지만 한편 읽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정자(程子)가 논어의 독서법을 이야기 하면서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 사람, 이 책을 읽은 후에도 그 사람이면, 그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도올 김용옥 선생도 <중용>을 읽고 "일상적 삶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중용>을 읽지 않은 것이라 단언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중용을 읽었으되, 결코 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도올 김용옥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중용>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쏙쏙 머리에 잘 들어오고 이해가 되었지만, 정작 나의 현실적 삶은 <중용>을 읽기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좋은 책을 읽었으되 시간만 헛되이 보낸 셈이다.

 

지은이 김용옥은 이 책의 서문에서 미국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종속을 한결같이 비판하고 있다. 당연한 지적이다. 막강한 군사력의 우위와 첨단산업과 높은 학문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소한 3, 40년 동안은 미국이 세계 패권주의의 리더십을 확고하게 장악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하지만, 김용옥의 관점에서 미국은 세계 3등국가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미국 문명의 도덕성 상실 탓이다. 이제는 지는 해인 미국 대신, 그는 중국에 새로운 기대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오늘날 한국의 지성인들은 지금껏 보여준 미국사랑의 10분의 1만큼만

중국사랑'을 가지고 있어도 그 10배 이상의 세계사적 공능을 달성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중국의 고전을 연구하며 그 속에 담겨진 높은 경지를 접한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조선시대 노론 세도가들의 '소중화'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김용옥 선생의 이야기가 마땅찮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우리에게 도움될만한 것들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중국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품는 것은, 새로운 종속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드는 대목이다.

 

중용은 중용 그 자체로 연구되고, 또 실생활에서 스스로를 가다듬는 가르침 정도로 이해되었음 좋겠다. 그 속에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빼어난 사상적 성취가 담겨있다고 해도, 중용을 중국의 것으로만 편협하게 바라보고, 또한 그것이 중국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로 받아들여지닌 것은 중용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뜻을 오히려 거스르는 것이 아닐 지 경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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