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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책에 끌렸던 건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존재. 듣다보면 하찮고 별 것 아닌 사람이라는 것 같아 왠지 탐탁치 않지만, 특별하기는 커녕 보통보다도 못한 내 자신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샛노란 표지에 그려진 세 개의 의자와 세로로 씌어진 제목. 표지만은 내게 보통이 아닌 아주 특별한 존재였던 책이다.
이 책을 쓴 이석원이란 사람에 대해선 전혀 무지했다.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주워 들었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도 그의 생김새나 경력에 대해선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나 역시 그와 같이 '보통의 존재'임을 자각하고 살아가고 있을테니 각자의 여행이 길어진다면 세상 끝 어디쯤에서 스쳐 지나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가 살아온 인생은 평범하지 않지만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어려서 뭔가 간절히 해 보고 싶거나 이루고 싶었던 꿈이 없었던 그는 서른 여덟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그이지만 누구나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될 필요는 없다고 결론 지었다.
그의 생각은 이러하다. 누구나 배우나 감독이 되고싶어 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러한 자질을 갖고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안온한 관객의 자리에 만족하며 사는 것도 삶의 한 방편일 수 있음을 얘기한다. 꿈이 없다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향해 "관객이 되면 그뿐"이라며 고민하지 마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그. 이런 면에서 그는 분명 특별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보통의 존재들이 그러하듯 이석원 역시 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듯 하다. 그래서 그는 친구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남겼다.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나에 대해 어떤 반대로 하지 않는다면 나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러 갈 때 신이 나지? 그 사람이 바로 친구다. 친구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보다 기쁨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친구를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보단 내가 먼저 다가서는 것. 여러분은 어떠할 지 궁금하다. 충분히 공감이 되는가.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한가롭다. - 사생활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를 말한다. - 결속
활짝 핀 꽃 앞에 놓인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엔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 - 그대
책을 덮고서도 한참이나 가슴 속에 남는 글귀다. 아름다운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순식간에 시들 인생이지만 희끗희끗 머리엔 서리가 내리고 주름 질 황혼이 두려워 젊음을 마다할 수야 없지 않은가. 꽃은 피면 시들게 마련이다.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맞서기 보다는 시들어가는 삶 속에서도 존귀함을 잃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이것이 남은 여로의 관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