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에서 온 편지
정홍규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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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리 장천 푸른 하늘에 해 뜨고 달 가듯
텅빈 산중에 아무도 없는데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네.

반룡사 주지인 혜해 스님이 정홍규 신부의 칼럼집 - '오산에서 온 편지' 추천사에서 인용한 어느 고승의 싯구가 향기롭다. 사실 신부님을 알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업무와 관련해 스치듯 인사만 드렸을 뿐 속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도 물론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읽게 된 책 한권을 통해서 신부님의 깊은 사랑의 마음과 한발 더 앞서가는 지혜로움에 감동받게 됐다.

솔직히 이 책을 손에 쥐고 나서도 큰 기대는 없었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넘쳐나고 이름난 종교인들의 글들도 홍수를 이룬다. 모두가 판에 박힌 듯 좋은 이야기 일색이지만 정작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기는 쉽지가 않다. 그저 시간날 때 한두페이지 읽어보려던 심산이었는데 어느새 책에 빠져들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나서야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오산에서 온 편지'라는 책은 정홍규 신부님이 2007년 3월부터 2011년 112월까지 지역의 한 신문사에 연재한 칼럼을 묶어낸 것이다. 종교적인 내용에서부터 철학, 교육, 환경 등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관심사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칼럼이라고 하면 딱딱하게 느껴지거나 강압적인 교훈이 담긴 것이 많아 불편하게 느껴지는 일이 많은데 이 책의 글들은 그렇지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신부님 스스로 영천의 한 폐교를 빌려 산자연학교라는 훌륭한 대안학교로 가꾸고 있고 환경운동에도 솔선수범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특히 불교와 천주교 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모습은 참다운 종교인의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편협한 신앙심으로 인해 지역에도 종교간 갈등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믿음과 종교만이 참된 것이고 그것으로 타 종교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삼아  불화와 분쟁을 조장하고 있는 일부 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정홍규 신부는 이를 두고 종교적 자폐증이라 칭하며 사회적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현상이라 지적하고 있다.

신부님은 그 해법을 '공감'에서 찾고 있다. 나 역시도 공감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기에 이 대목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의 남의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으며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배려가 필요한 시대다. 사회는 좀더 다양화 되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의 사고는 오히려 경직되어 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다. 신부님이 서문에 남긴 글이 그래서 마음에 오래 남는다.

타인과 그리고 동식물까지 포함하여 같이 느낄 줄 알며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실천적 공감이야 말로 주요 종교의 전통에서 최고 덕목이며 참된 종교의 시금석이라고 확신합니다. 종교는 말씀도, 교리도, 예수 천국, 믿음도 아닌 '단순한 실천'이 이 행성지구를 구할 수 있는 영적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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