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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여전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오롯이 담아두는 작업을 하고 싶다.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에 억지로라도 좀더 애정을 가지고자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대구에 정착해서 꽤 오랜 세월을 살아 왔지만, 그래서인지 대구라는 도시 자체에는 솔직히 별로 애착이 가지는 않는 편이다.
서울이나 부산, 인천 등의 대도시에 비해 발전이 뒤쳐진다고 한탄한다 해도 수십년 전의 모습에 비한다면 2012년의 대구 역시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데다 각종 사고로 인해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덧씌워져 있는 도시가 또한 대구다. 그 좋지 않은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가려져 있던 대구의 본모습을 제대로 알리는 것 뿐이다.
사진 찍는 일을 취미로 하고 있다 보니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대구 구석구석의 모습들을 사진과 글로 남겨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보곤 한다. 나의 오래된 이 꿈을 Seoulite 이장희는 자신이 가진 재능들, 이를테면 사진과 스케치, 글을 이용해 서울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제목 자체가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한때는 사진이 현실을 가장 잘 담아내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의 언제가 될 지 모를 작업의 기본 그릇 역시 사진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나의 그 오래된 생각이 한참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의 수많은 스케치 속에 담긴 서울의 풍경은 그 어떤 잘 찍은 사진보다 훨씬 더 서울의 시간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림 속에 더 많은 상상력과 이야기들을 품을 수 있어서 서울의 풍경과 시간들이 더 풍요롭고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과감히 생략되고 주제에 집중된 그림들로 인해 서울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더욱 환한 빛으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뉴욕에서 일러스터를 공부했으며 각종 매체를 통해 일러스트와 사진, 칼럼 활동을 하고 있는 이장희라는 사람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신은 공평하게 사람들에게 재능을 나눠줬다고 하던데 그를 보면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환상적인 그림 솜씨에 못지 않은 글 재주까지 주셨으니 말이다.
일 때문이든, 그냥 놀러가는 것이든 서울을 가끔 가게 된다. 서울이 부러운 것은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엄청난 에너지와 역동성도 있겠지만 수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도 좋지 않고, 너무 복잡한 도시라 서울에 살기는 싫지만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어안고 있는 이런 볼거리들을 다 둘러보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하다.
너무 막막하던 차에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라는 이 책 한권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뿌듯하다. 앞으로의 내 서울 여행에는 항상 이 책이 함께 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을 들고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열 네군데를 차례차례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림을 통해 상상을 해보고 직접 가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그 느낌의 같고 다름을 가늠해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
남이 가진 재주를 부러워하거나 마냥 시기하기 보다는, 보잘 것 없는 나의 재주라도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내겐 여전히 낯설고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지만, 대구라는 도시의 골목 구석구석마다 남아 있는 옛 향취와 빛바랜 추억들을 더 늦기 전에 남겨두는 것도 분명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림 잘 그리는 누군가의 재주를 빌어서라도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