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책만 봐야 하는 인생. 지은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이렇게 정의했다. '별 다섯 인생' 이라는 이름의 책은 한 평생을 책만 보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살다 간 사람이 세상에 남긴 따뜻하면서도, 한편 가슴 저리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녀가 살았을 공간, 서로 부대끼며 사랑하며 살았을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스라히 떠오르는 듯한 착각을 수없이 하면서 책을 읽었다.
알라딘에 나도 서재를 하나 가지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나름 책을 읽는다고 읽었지만 물만두 홍윤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들어보질 못했었다. 책에서는 10년간 무려 1,838편의 리뷰를 올린 전설적인 서평 블로거로 지은이를 소개하고 있다. 매달 수백권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나 역시도 잘 안다.
물론 스물 다섯이라는 한창 나이에 근육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일상의 생활이 어려워졌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의 힘으로 일어설 수도, 걸어다닐 수도 없기에 그녀는 책읽기를 통해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의 통로를 만들었던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절망감,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쉼없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라면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인지라 함부로 남의 불행을 동정하거나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아서도 아니될 일이다. 언젠가 그런 불행이 내게도 닥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차피 똑같은 무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니 누가 누구를 동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동정받아야 할 존재이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인 것이다. 물만두님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가 남긴 수천편의 서평과 엄청난 독서량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힘든 상황임에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이 책에 담겨진 글들은 그녀가 인터넷 공간에 꼬박꼬박 남긴 일상의 기억들이다. 전문적인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은 이의 소박한 기록이다 보니 이름난 문인들의 에세이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글들 속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증과 울증을 수없이 넘나드는 속에서도 삶의 소중함을 놓지 않은 한 사람의 소박하지만 진실된 마음을 읽었다.
지난해 12월 13일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1년만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을 통해 물만두 홍윤은 자신의 생전 소망대로 영원히 사람들 속에 오래 남을 수 있게 됐다. 그녀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주인이 떠난 공간은 이제 그녀의 여동생 만순이가 대신 자리를 지키며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이 세상에 존재하진 않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있는 물만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별다섯 인생이란 제목은 알라딘 서평 쓰기를 일생의 업으로 삼았던 지은이 물만두님의 삶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그 제목의 연원을 책에서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아마도 추측컨대 알라딘 서평의 최고 평점이 별 다섯개인 까닭이 아닐까 싶다. 나는 여기에 더해 비록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최고의 삶을 살았다는 칭찬의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별 다섯 인생', 이것은 지금도 터벅터벅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떠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태어날 때 조물주가 아홉 개의 건강한 공과 한 개의 병든 공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셨는데, 나는 그중 병든 공 한개를 골랐을 뿐이다.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행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니 님들도 그런 걱정일랑 마시길.... 사람은 저마다 제멋에 겨워 사는 거니까. - 프롤로그에서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가끔 누구나 마녀가 되고 싶을 때가 있지. 나도 그래.
누군가의 마음이 알고 싶을 때,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누군가가 마냥 그리울 때
수정구슬이 있었으면 해.
아침에......가만히 맘속으로 외쳐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외침은 지금 누구에게로 가고 있을까...
아프고 나서 한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언젠가'라는 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나도 무수히 많은 '언젠가'를 외쳤다.
언젠가는 해야지.
언젠가는 되겠지.
언젠가는 가봐야지.
언젠가는, 언젠가는....하지만 그런 언젠가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언젠가를 외치지 않는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한다.
할 수 없는 건 "언젠가 해야지." 하면서
묻어두지 않고 미련없이 버린다.
만약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롬다면
아 아
아직까지 내가 살아 있구나 느끼라
그 느낌에 감사하라 - 이정하, 살아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