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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야___, 저 소리를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가는 방법은 없나.
이 짧은 한마디가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음을 울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편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속 운문사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운문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역 철거가 한창 진행중이던 1992년에 운문사 인근의 한 중학교 교정에서 울려 퍼지던 브라스밴드가 텅 빈 대천리 마을 하늘에 장송곡 가락처럼 길게 퍼지던 그 장면이 그려진다.
내가 운문사 가는 길에 운문댐을 가 봤던 것이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었으니 미처 그보다 몇 해 전에 벌어졌던 가슴 아픈 역사를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저 원래부터 이 자리에 댐이 있었던 것이려니 무심코 보아 넘겼고, 푸르디 푸른 호수의 장관에 그저 시선을 빼앗겼던 그때의 무심함이 많이도 미안해졌다.
유홍준 교수가 좋아하는 절이 있다. 영풍 부석사, 서산 개심사, 강진 무위사, 부안 내소사, 그리고 이곳 청도 운문사가 그 곳이라 한다. 좋은 것은 누구나에게 똑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보다. 나 역시도 앞서 얘기했던 다섯 곳의 절을 모두 가 보았고, 그 절들이 제각기 갖고 있는 독특한 느낌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늘 마음에 두고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운문사는 좀 특별하다. 호거산에 자리잡은 운문사는 절에 들어서는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아주 인상적인 곳이다. 물론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으로 정갈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빼놓을 수 없기도 하다. 산사라고는 하지만 넓디 너른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절을 한바퀴 여유롭게 둘러보는 데에도 호흡이 가빠지지 않고 일정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1994년 5월에 세상에 나온 이 책에는 유홍준 교수가 감히 남도답사일번지로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강진과 해남에 못지 않은 우리땅 '국토박물관'에 대한 사랑이 구석구석에 베어 있다. 종소리가 때리는 자의 힘에 응분하여 울려지는 것처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 땅의 문화재와 우리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제2편의 제목은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우리의 일반 상식에 근거한다면 잘못된 말이다. 산이 강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강이 산을 넘지 못하는 것이 맞다. 유홍준 교수 역시 아우리지강의 회상 - 평창, 정선 편에서 이것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말은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록 산이 있어 물이 흐르고 물이 모여 강을 이루었지만 산은 절대로 강을 넘지 못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강이 있기에 그 산은 여기서 저기로 떨어져 있을 뿐이다. 강이 아니라면 산은 여지없이 연이어 달렸으리라.
나는 여랑땅 아우리지강가에서 낙엽송 군락들이 줄지어 정상을 향해 달리는 저마다 다른 표정의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수수만년을 저렇게 마주보면서 단 한번도 만날 수 없음은 바로 그 자신들로 인하여 이루어진 강을 넘지 못함 때문이라는 무서운 역설(逆說)의 논리를 배우게 되었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각 분야의 어떠한 거봉(巨峰)들도 결국은 역사라는 호름, 민의(民義)라는 대세를 넘지 못하고 어느 자리엔가 멈출 수 밖에 없는 지식인의 한계, 인간의 숙명 같은 것을 보았다."
조금은 늦었지만 아름다운 우리땅에 대한 관심으로 시간날 때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분에 책에 소개되어 있는 곳들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지고 사진이 찍혀진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풍광은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좁은 숲길이 사람과 차의 이동 편의를 위해 넓은 아스팔트 길로 포장이 되기도 하고, 나무와 숲이 파헤쳐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오랜 세월 그 자체로 자연이었던 것들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자연은 상처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연이 상처받으면 결국은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 그것도 아주 작은 일부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