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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아쉽군요.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은 막을 내리는 건가요?
"아뇨.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거죠."
아침이 오면 당신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법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책을 펴자마자 만나게 되는 글들이다. 읽고 또 읽다보면 긴 여운이 남는 글이기도 하다. 어차피 인생 자체가 긴 여정이다. 굳이 어딘가를 향해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매일 인생이라는 이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갑수의 말처럼 좀더 열심히, 맹렬히 살기 보다는 나를 좀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여행이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장소, 그리고 내가 심히 공감하는 글이 있어서 좋다. '가을로'라는 영화는 내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개해 주었고, 그 곳들을 직접 찾아봐야 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일깨워 주었다. 지금도 가끔씩 영화 속 현우, 민주, 세원의 발길을 쫓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소쇄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진이나 영화 속 배경을 실제 가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은데 소쇄원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서 느껴지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마치 민주가 저만치에서 대나무 홈통에 단풍잎을 띄워 보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도 된다. 소쇄원에 가게 되면 '가을로'를 떠올리게 되고, '가을로'를 보게 되면 난 항상 소쇄원을 그리워하게 된다.
"새로 포장한 길인가 보죠? 전에 있었던 길들의 추억이 다 이 밑에 있을텐데....... 사람들은 그 길을 잊고 이 길을 또 달리겠죠? 좋은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가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했던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현우는 세진과 함께 이 길을 걷는다. 궁금했었다. 그들은 결국 손을 잡게 될 것인가. 영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도 둘은 손을 마주잡지 않지만 우리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결국 손을 잡게 될 것이라는 것을..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일거 같은가. 지독한 '외로움'이란 대답은 식상하다. 그것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끼니의 곤란함이다. 혼자 다니다 보면 그럴듯한 식사에 대한 준비가 소홀해지가 마련이고 혼자 맘편히 먹을 수 있는 밥집을 찾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예 1인분을 팔지 않는 곳도 많다.
정말 처음에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 먹는 게 고역이라 간단하게 인스턴트 음식으로 떼우거나 시간이 맞지 않으면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또 이런 혼자 떠나는 여행에도 익숙해지다 보니 혼자 밥을 먹는 것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게 됐다. 작가의 얘기를 빌려 보자면 혼자 먹는 밥이 나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혼자 밥 먹을 때 떠오르는 얼굴은 아마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일 거라고. 사는 게 힘겹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 혼자서 밥을 먹어 보시라.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입 안으로 넣어 보시라. 당신을 밥을 먹고 있는 동안 떠오르는 그 얼굴과 따뜻한 밥 한끼 나눠 보시라.
정말 그렇더라. 겪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 다음날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혼자서 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고 있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더라. 그리고 그 얼굴은 내가 몹시도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하는 고마운 얼굴이더라.
당신은 당신 생에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가지고 있는 지.
만약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내 인생은 잘 지내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하진 못하겠다. 일상의 구질구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맴돌아야만 하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이다. 내 생에서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하루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잘 살아왔다는 위안을 나에게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