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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 역사비평사 / 2017년 2월
평점 :
우리 사학계에서 풀기 어려운 오래된 숙제 중 하나가 고대사 문제다. 수 천년 전에 있었던 일을 후대 사람들이 '있던 그대로' 기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각자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서술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니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고대사 해석은 어찌보면 불가능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고대사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역사가 덧대어지면서 역사학계 내부에서 치열한 진실 공방이 현재까지도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강단사학자와 재야사학자들은 상대를 사이비(似而非), 식민사관 계승자로 치부하며 경멸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오랫동안 누적된 갈등으로 인해 지금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협력의 통로가 아예 차단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많은 전란을 겪으며 우리의 귀중한 사서들이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이 비극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우리 민족은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높았으며 역대 왕조마다 국사를 편찬하는 일을 게을르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구려는 영양왕 때 이문진이 <유기> 100권을 요약한 역사서인 <신집>을, 백제는 근초고왕때 고흥이 <서기>를, 신라는 진흥왕 때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했으며 고려시대에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해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의 시각으로 기록했던 역사서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오래된 과거사에 대한 기록과 인식이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될터인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나일본부설을 시작으로 역사 왜곡을 밥먹듯이 해 온 일본은 물론, 최근 들어 동북공정에 나서며 전방위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는 중국의 사료에 의존해 우리의 고대사를 추정하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비극이다.
중화주의를 앞세운 춘추필법으로 자신이 천하의 중심이며 주변 나라를 모조리 오랑캐로 인식했던 중국이 고대사의 기록에 있어서 진솔하게 자신과 이웃나라의 역사를 기록했을 거란 믿음은 어리석은 허상이다. 한국 고대사 연구를 위해 불가피한 방법으로 현재 남아 있는 중국과 일본의 사료를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기록들이 사실이라는 기조 아래 한국사를 바라본다면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오래 전에 배웠던 우리의 역사는 반도라는 좁은 영토에 갇혀 자율적인 역사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중국와 일본이라는 이웃 나라에 의해 타율적으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부끄럽기만 한 역사였다. 당파성, 반도적 운명론, 정체성, 타율성, 사대주의 등 온갖 부정적인 인식들이 덧씌워졌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지 나는 한동안 조선시대 이래의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강점기를 통해 고착화 되었던 식민사관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국내 사학자들의 책을 주로 읽어 왔다.
그들의 주장에는 일맥상통하는 흐름이 있다. 우리 민족의 첫 국가였던 고조선이 중국의 역대 왕조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대국이었으며, 영토 또한 서쪽으로는 지금의 북경과 맞닿았고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르는 광대한 땅을 통치했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고조선이 멸망한 후 설치했다는 한사군 또한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서나 요동지역에 잠시 존재했다가 고조선 유민이나 고구려 세력에 의해 소멸되었다는 주장이다. 백제와 신라 또한 지금의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내륙에까지 진출해 있었다가 이후 한반도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이들은 중국의 사료나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지명을 해석하는 데 있어 기존 사학계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현재는 요하가 요동과 요서의 경계로 인식되고 있지만 고대에는 북경과 가까운 난하, 대릉하 등이 요동과 요서를 가르는 강이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영토 해석이 완전이 달라진다. 또한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지명들 역시 현재와 과거 중국에도 존재했던 지명이라는 것을 근거로 백제와 신라가 현재의 중국 본토 깊숙이 위치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편다.
강단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역사 인식을 이유로 재야 사학계를 사이비라고 비난한다. 비판의 범주를 넘어서 상당히 폭력적인 언어로 그들을 매도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해석에 오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광대한 영토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부끄럽고, 광활한 만주대륙과 중원땅은 자랑스러운 것이냐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이 일본의 제국주의나 중국의 천하관과 어떤 차이가 있냐는 지적도 한다.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걱정도 한다.
양쪽 모두의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는 한편, 또 치명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강단사학계는 실증사학이라는 명분으로 현재 남아 있는 중국과 일본 사료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웃나라의 사료와 일치하지 않는 우리 측 사서와 자료에 대해서는 후대의 위작이라거나 오류라고 치부하기까지 한다. 우리의 기록은 불신하면서 역사 왜곡과 허장성세로 일관하고 있는 주변국들의 시각에 동조한다는 것은 위험한 역사 인식이 아닐까 우려된다. 현재 우리 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그들이 자신들의 스승인 이병도, 이기백의 허위와 오류에 대해 얼마나 명확하게 선을 그으며 역사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을까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또한 많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재야사학계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노론 이후의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우리 역사 왜곡에 분노하며 치를 떨다보니 그것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나치게 국수주의적 역사 해석에 치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지적이 있다. 역사는 흐름이다. 지엽적인 기록 하나에 집착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다 보면 치명적 오류를 저지를 수 밖에 없고 대중의 공감과 지지도 잃게 되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신뢰할 수 없는 주장으로 조롱당하는 순간 제대로 된 고대사를 규명하기 위해 사료를 뒤지고 현장의 유적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순수한 재야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까지 훼손할 우려가 있다. 당장 유뷰브를 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학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기본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일부의 비전문가들로 인해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재야 사학자들이 사이비로 폄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역사 문제는 소속과 이념, 정파, 사사로운 인연에 얽매어 네 편 내 편 나뉘어 싸울 일이 결코 아니지 않은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우리 역사학계로 바로 서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