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집 - 조선 최고 지식인.권력자 11인의 집과 사람 이야기 사람을 향한 인문학
박광희 지음 / 가치창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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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머무는 집, 그리고 그 집이 놓인 땅은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오래된 고택을 통해 집주인의 삶을 살펴 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한 인간의 됨됨이, 인품, 삶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 등이 땅과 집에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가의 사상에 철저했기에 다른 학문을 철저히 배격했던 유학자들의 집들이 한결같이 풍수지리에서 꼽는 최고의 양택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대 최고의 세도를 누렸던 권력자, 후대의 표상이 되는 최고 지식인들이 살았던 집은 어떨까. 현직 기자생활을 거쳐 지금은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광희의 <옛사람의 집> 속에는 이러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풀어줄 11곳의 집이 소개되어 있다. 최고 권력자, 지식인이라 하기에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적이었으며, 선교장의 주인 이내번의 명성이 다른 이들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머물렀던 집과 집터는 충분히 매력적이라 하겠다.

 

시간 날 때마다 발품을 팔았던 덕분에 세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녀온 곳이라 더욱 반가웠다. 여러 번 가서 보아도 지겹지 않으며 매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이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첫번째로 늘 꼽는 소쇄원이 그렇고, 붉은 동백꽃의 마중을 받으며 오르는 다산초당이 또한 그러하며, 따스한 봄볕같이 정겨운 명재고택 역시 좋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걸음을 옮겨 한참을 머물며 옛사람들의 흔적을 음미해 보는 곳들이다.

 

아산 맹씨행단에선 맹사성의 청렴함을, 지리산을 앞마당 삼아 매화향 가득한 산천재에서는 남명 조식의 엄격함을, 정갈한 사대부집 추사고택에서는 시대를 뛰어넘는 예인의 위대한 예술혼을 닮아보려 애쓴다. 자신을 한마리 나무좀벌레로 부르며 스스로에게 추상같았던 일두 정여창의 아름다운 집은 이제는 인기 드라마의 배경으로 소개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일두 고택 현판에 새겨진 문헌세가(文獻世家, 충효절의(忠孝節義)의 글귀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힘차고 기개가 넘친다.

 

아쉽게도 아직 다녀오지 못한 세 곳의 집에 마음이 끌린다.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태어나 일본에서 피폐한 삶을 살다 1962년 1월 고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가 여생을 보냈던 창덕궁의 낙선재. 궁궐 안에 있으면서도 화려한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집처럼 소박하게 지은 이 곳에서 비운의 여인 덕혜옹주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다. 대마도 심주 아들과의 정략결혼, 현해탄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딸의 죽음, 조발성 치매증이라는 병마에 시달렸던 파란만장한 삶의 마지막은 부디 평안했길 바란다.

 

안동김씨 세도가 집안을 기웃거리며 '상갓집 개'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던 흥선군 이하응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운현궁 또한 흥미롭다. 아들 명복이 갑작스럽게 왕위에 오르며 몰락한 왕실 방계 가문에서 일약 임금의 아버지가 된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완성되고, 또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 또한 이 곳 운현궁에서의 일이다. "하늘과 운현궁 지붕과의 거리가 다섯 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그였지만,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외척세력의 발호를 지극히 우려해 중전으로 간택했던 민비와의 갈등으로 결국 실각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나주평야의 한 자락인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광주 광산의 너브실마을에 있는 기대승의 애일당은 또 어떤가. 호남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기대승은 영남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과의 사칠논변(四七論辯)으로 이름을 알렸다. 무려 8년간 서찰을 통해 계속된 사단칠정 논쟁을 학문적으로 성찰할 깜냥은 안되지만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주며 자신의 학문을 완성해 가려했던 대학자들의 넓은 품이 느껴지는 듯 하다. 어느 때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애일당 마당을 느릿느릿 걸어볼 날을 기약해 본다.

 



출처: http://kangks72.tistory.com/1756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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