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이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법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모르지만 그래도 있는 것들이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칸트에게는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은 있다고? 모른다 하면서 어떻게 그것이 있다"라고 말하는가? 그런 경우에 진실된 인간은 우리가 아는 한그것은 없다." 또는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은 이러저러하게 있다."라고 말한다. 모든 발언은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모르는 것에 관해 발언하는 것은 권한 밖의일, 즉 월권이다. 인간이 월권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 감각 지각이 되는것, 인간의 사물 인식이 지금 거기에 있다고 규정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 존재 세계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형식체계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니까 관념이고 현상이다. 그래서 칸트는 ‘사물 자체‘라는 것을 지식 세계에서 퇴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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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북플 추천도서

흥미진진하다.

내가 흥미를 느낀 대목은 그동안 모아서 보내 준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라면 이런 이야깃감을 원할 거라고 예단한 그녀의 상투적인 믿음이었다. 자신의 행동을 무례한 짓이라고 여기지 않는걸까. 정작 나는 굴욕이라고 느끼는데.
결국 작가라는 인종은 이렇게 도량이 작고 타인이 하는 일을삐딱하게 관찰하거나 멸시하기까지 하는 오만한 족속인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 휘말리는 사태만은 극력 피하려고하는 겁쟁이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다나카는 작가라면 이런 잡다한 이야기를 좋아하고작품에 활용하고 싶어 하리라 생각하며 본인이 작가를 돕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파란 봉투를 볼 때마가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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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이타적인 성향도 갖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협력의 능력을 발전시켜 왔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도덕의 영역에 점점 모든 인간을 포함했고, 이타주의적 성향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유 없이 가하는 잔인성과 신체적 학대를배척해 왔다. 이런 도덕적 진화 과정 속에서 동물을 포함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결과이다. 인간은 더 평화로워지고, 덜 잔인하며.
더 관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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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우리에게 같은 경우를 똑같이 대우하라고 요구한다.
또는 시지윅의 표현대로 ‘.…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암묵적으로 동일한 상황에 있는 모든 동일한 사람들이 그 행동을하는 것도 옳다고 판단해야 한다.‘
· 타산은 우리가 ‘자신의 의식적 삶의 모든 부분들에 대해서공평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존재하는 모든 순간을 평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래를 할인할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 그 자체는 현재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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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계, 즉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가 매일 지각하는 세계가존재하는가? 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 데카르트는 꿈을 통해서 논증한다. 우리는 이 순간 꿈을 꾸고 있으며, 외부 세계의 객체는 꿈처럼 오직우리 상상력의 생산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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