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독수리와 양

니체는 좋음의 두 가지 다른 기원을 설명한다. 
하나는 독수리에서 유래하며, 다른 하나는 양에서 유래한다. 독수리는 양을 잡아먹는 포식자이며, 양은 자신을 공격하는 독수리를 두려워한다. 양을 잡아먹는 맹금류(독수리)는 
고기 맛이 좋다, 나쁘다로 판단한다. 반면 양은 선(좋음)과 
악함으로 판단한다. 좋음은 한편으로 나쁨의 반대말이자 
악함evil의 반대말이다. 독수리는 양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양고기가 맛있기 때문이다. 반면 양은 자신을 
잡아먹는 독수리가 사악하다고 생각하고, 그와 반대로 
자신은 선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약자인 양이 생각하는 
좋음은 원한에 비롯하며 강한 자들이 강하게 나타나기를 
바라지 않는 공포감에서 비롯된다.
- P38

그러나 약자들이 강한 자들이 강하게 나타나기를 바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니체는 이를 위해 주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모든 작용을 작용하는 자. 즉 ‘주체‘에 의해 
제약된 것으로 이해하고 오해하는 언어의 유혹(언어 속에서 화석화된 이성의 근본 오류) 아래에서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377). 

그 오류는 주체와 작용을 분리하여, 마치 중립적인 기체인 
것으로 간주된 주체가 그 행위를 할 수도, 하지않을 수도 
있다고 책임을 지우는 것을 말한다. - P39

이러한 맥락에서 주체이론은 독수리가 양을 낚아 채어
가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자유와 책임을 근거 짓는다. 
이 내용은 언어철학 비판과도 관련되는데, 번개 치는 
것에서 주체와 활동으로 구분하여, 앞(섬광)을 원인으로 
뒤(번쩍임)를 결과로 보는 것은 활동의 활동, 곧 활동을 
중복시키는 오류다. 주체(원자, 물자체 등)는 환상이며 
오직 활동만이 있다는것이다.
- P39



"마치 사람들이 번개를 섬광에서 분리하여 후자를 번개라 
불리는 어떤 주체의 활동이며 작용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도덕도 마치 강자의 배후에는 강한 것을 나타내거나 나타내지 않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종의 중립적인 기체가 있는 것처럼, 강한 것을 강한 것을 표현하는 것과 분리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활동, 작용, 생성 뒤에는 어떤 존재도 없다. 활동하는 자는 
활동에 덧붙여 단순히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활동이 모든 것이다. 사람들은 번개가 번쩍일 때, 
실제로는 활동을 중복시킨다. 이것이 활동의 활동이다. 
같은 사건을 한 번은 원인이라고 보고 다른 한 번은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378). - P40

자연과학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분석하지만, ‘언어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으며 ‘주체‘라는 
믿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주체 개념을 비판할 때 주체란 
우선 ‘언어‘를 사용하는 ‘이성‘의 오류로 전제되는 것이다. 

그것이 원자나 물자체 등으로 확장되면서 ‘작용을 
작용하는 자‘로 오해된다. 그뿐만 아니라 ‘번개가 친다‘고 
할 때 ‘번개‘와‘친다‘를 구분해 원인과 결과로 둘로 나누는 
것이 오류다.

곧 하나의 현상을 주어와 술어, 원인과 결과의 둘로 
나누는것이 오류다. 활동이 모든 것이며, 활동하는 
자(주체)는 활동에 덧붙여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 P41

다시 말해 ‘중립적인 기체로서의 주체에 대한 믿음을 통해 
마음대로 행위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와 그것에 책임을
지우는 권리가 확보된다. 그 결과 독수리에게 양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과 양을 해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해진다. - P41

주체에 대한 요청으로 "복수와 증오의 감정이 ‘강자가 
약해지는 것도, 맹금류가 어린 양이 되는 것도 마음대로이다‘
는 믿음"(378)을 자유의지로 인식하게 하고 "맹금에게 
맹금이라는 책임을 지우는 권리를 스스로 획득하게 된다"
(378). - P41

니체는 이러한 도덕을 ‘화폐위조‘로 비판한다. 
곧 양은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무력감, 
무능함을 ‘선‘으로 포장한다. 

화폐위조는 영리함을 바탕으로 약함을 미덕과 공적으로, 
공격하지 않음을 자유와 공적으로 뒤바꾸는 속임수다. 
보복하지 않은 무력감은 선이 되고 겸허, 순결, 비겁함이 
덕이 되며 인내, 가련함은 신의 선택이 된다. 곧 자신은 
선하고 정의로운 자가 된다. 약자는 그렇게 해서라도 
언젠가 강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 P42

양들은 복수심에 불타는 간계로 독수리와 같은 악한 존재가 아니라 선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겉과는 달리
마음 속에는 강한 독수리를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과 
복수심‘에 악한 존재와 다른 선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독수리라는 악한 존재와는 반대로 ‘선한 존재‘는 ‘능욕하지 않는자‘, ‘상처 주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는자‘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겸손하고 공정한 자이다. 
따라서 인내, 겸손, 공정은 약자인 선한 자의 덕목이다. - P42

다시 말해 공격하지 않는 행위가 선한 것이 되면서 
자신이 선하고 정의로운 자로 변모한다. 
양과 같은 선한 존재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영리함은 무력감이라는 저 화폐위조와 자기기만‘을 
고안하고, ‘약자의 약함‘을 ‘미덕‘으로 변장한다. 
그것을 "공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379) 이다. 
"이러한 종류의 인간에게는 거짓으로 자기 자신을 
신성시하곤 하는 자기 보존과 자기 긍정의 본능에서 
선택의 자유를 지닌 중립적인 ‘주체‘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379).

따라서 주체, 영혼과 같은 개념을 통해 약자의 ‘약함을 
자유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모습을 공적으로 해석하는 저 숭고한 자기기만을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379). - P43

그러나 이러한 노예도덕의 이상은 어떻게 제조되는가?
바꿔서 그 물음은 누가 이상을 만드느냐의 물음과 같다. 
그 비밀은 마치 화폐를 위조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약한 
것을 공적으로 바꿔 기만하는 것이다. ‘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은 ‘선‘으로 바뀌고, 불안한 천박함은 ‘겸허‘로 
바뀌며, 복종은 명령하는 신에 대한 ‘순종‘으로 바뀐다. 

- P43

뿐만 아니라 약자의비공격성, 비겁함, 기다림이 ‘인내‘라는 
미덕으로 불린다. 또한 복수할 것이 없는 것이 복수하고자 
하지 않는 것으로바뀌면서 심지어 ‘용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렇듯 이상의 제조란 화폐위조를 통한 가치의 전환이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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