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선과 악:적극적인 것과 반동적인 것

원한을 지닌 노예는 적에 대한 사랑이 없고, 적을 악으로
증오하며 자신을 선한 자로 생각한다. 우선 원한으로 
적으로서 악한 사람을 생각해 낸 다음 나중에 
그 대립물로서 자신을 선한 인간으로 생각해 낸다. 
그 반대로 귀족은 스스로자신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자신의 적을 요구한다. 존경할만한 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노예는 ‘적에 대한 사랑‘을 결핍하고 있다.


- P35

고귀한 인간은 이미 자신의 적에게 얼마나 큰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경외심은 이미 사랑에 
이르는 다리이다. ・・・ 그는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적을 요구한다. 그는 경멸할 것이 전혀 없고, 아주 크게 존경할 만한 적이 아니면 참을 수 없다! 

이에 반해 원한을 지닌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적‘을 
상상해보자 -바로여기에 그의 행위가 있고 그의 창조가 있다:
그는 ‘나쁜 적‘을, ‘악한 사람‘ 을 생각해내고, 사실 그것을 
근본 개념으로 거기에서 그것의 잔상 또는 대립물로 
다시 한 번 ‘선한 인간을 생각해 낸다- 그것이 자기 자신인 것이다!" (371). - P36

요약하면 고귀한 인간은 자기의 좋음에서 나쁨을 
만들어내지만, 노예는 증오에서 타자의 악함bose 을 
만들어 내고 자신을 선한 자gut로 규정한다. 
나쁨은 귀족적인 기원을 갖는 반면, 악함은 노예적인 
기원을 갖는다.  - P36

귀족적 가치에서 나쁨은 병렬적으로 나중에 보색
(2차)으로 나타나지만, 악함은 원형이자 시원이자 
노예 도덕이라는 구상에서 나온 본래의 행위다(1차), 
좋음 개념에 대치된 나쁨과 악함은 기원이 다르다. 
좋음과 나쁨 좋음(선)과 악에서 좋음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나쁨은 2차적인 것이며, 악함은 1차적인 것이다.  - P36

여기서 누가 악한 자인지 물음을 제기해야 된다. 
왜 강한 지배자가 악한 자로 해석이 뒤바뀌었는가? 
좋은 사람, 고귀한 자, 강한 자, 지배자가 본래 악한 
사람이라는 가치평가는 변색되고 뒤바뀐 해석이다. 
그 원인은 독기 어린 눈으로 보는 노예 도덕이다. - P36

7. 문화는 야수를 길들이기 위한 것

문화는 금발의 야수를 길들이기 위한 잔인한 과정이다.
길들이기는 원한본능, 반응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금발의야수에 대한 공포에서 생겨났다. 그 결과는 왜소화, 쇠약화
등 허무주의이다. - P37

"인간‘이라는 맹수를 온순하고 개화된 동물, 즉 가축으로 
길들이는 데 모든 문화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 어찌 되었든 
오늘날 진리로 믿어지고 있는데,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고귀한 종족과 그들의 이상을 결국 모욕하고 제압하게 된 
저반응본능과 원한본능은 모두 의심할 여지없이 본래의 
문화의 도구라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374). - P37

근대의 유럽문화는 야수를 길들이기 위한 억압적이고 
보복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인류의 퇴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류의 문화는 왜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게 되었는가? 니체의 문화 일반에 대한 회의와 
반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고귀한 종족인 
금발의 야수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왜소한 자, 쇠약한 자들이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인류는 문화를 통해진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허무주의라는 문명의 비극적 퇴락으로 귀결되고 만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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