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좌파의 신화

좌파와 우파의 선택은 아직도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곧바로 의심을 받는다. 
알랭 Alain은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의 대립, 좌파에 속한 자들과 우파에 속한 자들의 
분열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질문을 던진 자가 
분명 좌파에 속한 자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런 판단을 수긍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성에 기초한 확신이라기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P17

리트레Litte 사전에 의하면, 좌파는 "프랑스 의회에서의 
반대당, 국회의장의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정당" 이다. 
하지만 좌파라는 단어는 반대파라는 단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당들은 정권을 교대로 잡는다. 
하지만 좌파 정당은 정권을 잡아도 좌파로 남는다. - P17

좌파와 우파라는 단어의 의미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단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즉, 정치 세력의 메커니즘에서 중도파가 계속 침해를 
받기 때문에 이 세력이 두 진영으로 분리되기 쉽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다음 세 가지를 암시한다.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두 유형의 인간 또는 제도와 
용어의 변화를 통해 계속 대화하는 두 유형의 철학,
또는 마지막으로 여러 세기의 연대기를 채우는 투쟁에 
돌입하는 두 진영의 존재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두 종류의 인간과 철학과 진영은 드레퓌스
사건의 경험과 선거 사회학의 분명치 않은 해석에 현혹된 
역사가들의 상상속이 아니라면 다른 어느 곳에 존재하는가? - P18

지금까지 스스로 좌파로 여겨지고자 하는 여러 집단들 
사이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일은 결코 없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서 명령어와 강령이 
계속 변한다. 어제 입헌제도를 위해 싸운 좌파는 
인민민주주의제 안에서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오늘의 
좌파와 아직도 어떤 공통점을 가지는가? - P18

회고적인 신화

프랑스는 좌파와 우파가 대립하는 나라로 여겨진다. 
영국에서는 이용어들이 2차 세계대전까지 정치적 언어로 
사용된 일이 거의 없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그 존재 권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좌파의 
위신이 아주 높아 보수 정당이나 중립 정당까지도 적대 
세력인 좌파의 용어에서 가져온 몇몇 수식어로 꾸미려고 
노력한다. 프랑스의 정당들은 공화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서로 경쟁하고 있다. - P18

최근의 여론에 따르면 두 가지 상황으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좌파와우파의 대립이 예외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구제도의 지지자들이 고수해 온세계관은 기독교 교리에 
의해 고취되어 왔다. 프랑스 대혁명의 폭발을 야기한 
새로운 정신은 절대적 권위의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했는데, 그 권위는 실제로 왕과 교회의 권위였다. 

18세기 말과 19세기의 전반에 걸쳐 진보적 정당은 왕권과 동시에 교권에 맞서 싸웠고, 또 반교권주의로 기울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위계질서가 반동 세력을 지지하거나, 
또는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17세기에 종교의 자유가 혁명 발생의 기회이자 중요한 쟁점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여러 진보적 정당들은 무신론적 합리주의보다는 오히려 독립교회파, 비국교과, 
급진파, 기독교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 P19

프랑스에서는 구제도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이 아주 
끔찍하고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도버 해협 건너편인 
영국에서는 입헌제도가 점차적으로 정립되었으며, 중세의 관습에서 시작된 대의제도가 의회에서 발달했다. 

18세기와 19세기에 민주제적 정통성이 군주제적 
정통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그것을 대체하게 되었다. 
법 앞에서의 시민들의 평등으로 ‘신분‘ 구분도 점차 
일소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전 유럽을 휩쓴 이념들, 예컨대 
인민주권, 규칙에 맞는 권위의 행사, 대의제도, 개인의신분 차이의 철폐 등과 같은 이념들은 프랑스에서보다는 
영국에서 더 빨리 실현되었다. 그런 만큼 영국 국민들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사슬을 끊을필요가 없었다. 영국에서 
‘민주화‘는 대립하는 여러 정당들의 공동 산물이었다. - P19

프랑스 대혁명을 끔찍한 파국으로 보든 아니면 웅장한 
서사시로 보든간에, 이 혁명은 프랑스의 역사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이 혁명을 계기로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프랑스가세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중 하나는 사라지기를 거부하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 대해 가차 없는 도전을 계속 감행하고 있다. - P19

1789년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사는 ‘우파‘나 ‘좌파‘에 
속하는 당파가 통치하기 위해 단결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으며, 그 결과 차례로 정권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특징을 보여 준다. 이렇듯 좌파의 신화는1789년에서 
1848년까지 계속되는 혁명의 실패를 보충하기 위한 
허구적인 보상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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