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어떤 것을 이러저러한 
것으로 표시함으로써 표시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종류를 구분하는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이것은 사람이다." 또는"이것은 램프이다."라고 대답하지. "이것은 인격이다." 라고 답하지는않는다. 그것이 인격들인지를 알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그 전에 그것이 사람인지 램프인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인격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으로서의 어떤 것을 확인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러저러하게 정해진 것에 관해 무엇인가를 표현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이 개념은 이미 자신의 종으로 분류된 것에서 특정한 추가적인 속성에 귀속되는 술어와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인격적 존재‘ 라고 불리는 속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이전에
확인했던 특정한 속성들을 근거로 존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이 존재들이 인격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P17

그렇다면 이 속성들은 어떤 것이며, 인격적 존재를 
술어적으로 서술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속성들을 확정하여 추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잠정적이고 비체계적인 
정보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 P17

어떤 선개념이 그러한 출발의 모색에서 우리를 이끌어 
줄 수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우리가 이미 발견한 것, 
즉 그 단어를 사용할때의 특징으로부터 발생한다. 

한편으로 인격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것에 어떤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하며, 
다른 한편으로 인격이라는 용어는 특성들을 구분하는 
것을 무시하고, 단순히 수에 대응하는 것을 표시하는데 
기여한다. 한편으로 이 용어는 우리가 어떤것을 그것이 
속하는 종류의 어떤 것으로 동일화할 수 있도록 하는 
분류적인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용어는 속성도 아니다.

오히려 이 용어는 특정한 속성들의 담지자를 나타낸다. 
이제 우리가 이두 가지 쓰임새를 단순히 이름만 갖고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로 여기지않고 그들의 상관성에 
집중한다면, 우리가 찾아야 하는 방향에서 첫 번째로 
암시하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인격은 다른 사물들이나 
생명체가 무엇인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어떤 분일 것이다. 

- P18

무엇인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어떤 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른 방식은 무엇인가? "마술피리‘의 
한 문장이 아마도 이 물음에 도움을 줄 것이다. 

사라스트로스(Sarastros)의 유명한 아리아 "이 거룩한 
장소에서는 누구도 복수(復)를 알지 못하네."는 
박애주의적인 선언인데, 다소 의아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이해할만한 문장으로 끝을맺는다. 
"그런 교훈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인간일 자격이 없으리라."

여기서 인간됨이란 하나의 특권으로서, 상실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왕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사례가 어떤 것인지는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인간이 될 자격이 있거나 없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여기서 "인간은 소위 분류적인 용어로서, 
이 용어를 통해 무엇보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거나 
자격이 없는 어떤 사람과 동일시 할 수 있다.  - P18

여기서 "인간은 소위 분류적인 용어로서, 이 용어를 통해 무엇보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거나 자격이 없는 어떤 사람과 동일시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 표현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즉 실체는 어떤 것에 의해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바로 그것으로 확정할 수 있게 만들며, 그렇게 확정된 것에 대해 다른 것이 더 서술되는 것이다. - P18

두 표현 간의 차이는 어떤 경우에는 짖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짓지않는 개의 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는 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개이기를 
멈추는 순간, 이때 우리는 개가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수 있다. 
개가 짖기를 멈춘다면, 그 개는 이제 짖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더는 개가 아닐 뿐이다. 개가 개이기를 멈춘다면, 그 개는 무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으로 곧 썩은 짐승의 시체로, 그 후에는 흙으로 변화된다. 
남는 것은 한때 개라고 불렀고, 후에는 흙이라 부르는 
물질적인 기체이다. - P19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러한 사유를 거부했으며, 그는 
두 가지 종류의 ‘변동‘을 올바르게 구분한다. 생성과 소멸이 그 한 종류이고, 변화가 다른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죽는다면, 우리는 그것이 마치 시공간에 있는 
한 조각의 물질처럼 여기서 어떤 것의 상태가 변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람, 곧 한 인간의 실존이 
중단되었다고말한다. 우리가 이것저것이라고 말하는 
어떤 사물을 분별할 때, 그 분류 용어는 그것으로 우리가 
이 사물을 비로소 온전히 분별하게 만드는개념이다. 

어떤 것이 생성된 그것은 우선 이 사물의 유래로서 분별될
수 있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서 진술하는 진짜 주어는 아니다.  - P19

사라스트로스가 "그런 교훈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인간일 
자격이 없으리라."고 말할 때, 그는 시공간적인 한 조각의 
물질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왕자의 
자격을 상실할 수 있듯이, 그것이 인간됨을 상실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어떻게 한 조각의 물질이 어떤 것에 자격을
부여하거나 상실할 수 있겠는가. 

사라스트로스가 말한 것은 그러므로 모순적이다. 
사람만이 사람됨에 자격이 있거나 상실할 수 있다. 
이럴수 있기 위해서 그는 이미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라스트로스의 말을 
어떤 식으로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인간과 그 인간됨의 관계를 개와 개임의 관계와는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을 
한 종(種)의 예시로 파악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게 
하나의 관계, 즉 내적 차이를 생각한다. 인간은 개가 
개인 것과 동일한 방식, 즉 그의 종개념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이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 P20

‘인간적인(menschlich)‘과 ‘인간의 (human)‘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는 예를 살펴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의 특정한 의미에서보자면 ‘인간적인‘ 이라는 말은 
정확히 인간이 행동하는 바이다. 즉 어떤 동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특히 추악한 행동들이 ‘인간적‘ 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적‘ 이라는 용어를 이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훨씬 더 많이 이 용어를 규범적으로 우리가 
동의하는 특정한 행위방식을 우리가 비난하는 행위와 구
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때로는이런 언어 사용이 
이상한 방식으로 전도되기도 한다. 

우리는 살며시 거부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싶을 때 하는 
행동방식을 ‘인간적‘ 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실수는 
인간적이다."와 같은 경우이다. 이 같은 경우에서
인간적이라는 용어는 항상 나약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서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식과 관련된다. 
그러나 나쁜 의도, 곧 악의적인 위반의 경우에, ‘인간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비록 이 나쁜 의도가
인간에게 특징적인 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 P21

특히 역겨운 나쁜 의도와 같은 것을 우리는 ‘비인간적‘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비인간적‘ 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귀속되는 것이 분명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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