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법에 관한 학문적 작업은 기본적인 법 개념을 전제로 
하지만, 2500년의 역사상 일반적으로 승인된 법 개념은 
제시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예 법 개념의 정의를 포기하는 학자도 있었고, 지금까지 거대한 코끼리의 일부분을 만지는 대답만이 나왔을 뿐이다. 

법이 주권자의 명령, 지시, 강제규범, 약속(사회계약의 소산), 제도, 법관 판결의 예측이라는 등의 주장이 나와 있으며, 
법실증주의는 실정법이 법이라는 동어반복을 말하고 있다. - P24

칸트는 순수형식으로 규정되는 선험적 개념으로서 인간의 자의 내지 자유의지의 관계로서의 법을 말한다. 
법은 "한 사람의 자의 내지 자유가 타인의 자의 내지 자유와 외적 자유의 보편적(제한) 법칙에 따라 통합될 수 있게 하는 조건의 총체이다. 이는 형식적 규정만을 담고 있는 선험적인 이성의 요청으로서 법은 자유에 대한 상호 제한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칸트의 법은 형식의 보편성을 중시하는 선험적 
개념으로서 법의 내용은 묻지 않지만, 그 내용의 확정에 
있어서 경험이나 일정한 실정적 윤리의 관여를 불허하는 
것은 아니다. - P24

헤겔에 있어서 법은 자유의지의 제한이 아니라 ‘자유의지의 현존이자 실현‘으로서의 법 개념이 중요하다. 주관적 권리는 객관적 법의 체계 내에서 현실성을 획득한다. 

법은 국가이고 국가는 윤리의 실현형태이다. 법은
자유로운 의지의 현존재로서 그 현존재는 법이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형식이고, 자유에 대한 상호 승인이 필요하지만 
자유의 충돌은 불가피한 계기이고, 그것은 보편적 자유를 실현하는 단계로서 변증법적이다.

결국 칸트와 헤겔 양자는 그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법은 
자유와 보편, 인격성의 기초 위에 서 있다. - P25

반면 실증주의의 다른 방향에서 법사회학이 나타났고
(독일의 막스 베버, 프랑스의 레온 뒤기 등), 
예컨대 법사회학자 에를리히(E. Ehrlich)에 의하면, 법은 
‘관행‘, ‘지배‘, ‘점유‘, ‘의사표시‘라는 시원적 사실과 관계된 
법사실이고 인간관계의 질서이다. 인간사회에 살아있는 법, 실제로 준수되고 적용되는 것이 법이다. 독일의 역사학파도 민족정신의 소산으로서 관습법을 중시하였고, 몽테스키외도 역사와 관습법을 중시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이항녕 선생의 풍토적 법사상은 주체와 환경의 통일체, 사회생활의 유형으로서의 법을 말하고 있다. - P25

한편 영미에서는 법을 경험개념으로 파악하여 법을 
법관의 판결 또는 그에대한 예측으로 파악하는 법사실주의, 법현실주의의 경향이 강하다. 

미국의 법현실주의의 영향으로 독일에서는 구체적 
법이 권한 있는 법관의 판결에서 실현되는 것에 주목하는 
자유법론과 법사회학적인 판결실증주의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 P25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법현실주의는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법을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관념적 표상으로 
파악하는 심리학적 법 개념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구속적인 의무감이라는 심리적 사실에서 법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스웨덴의 알프 로스에 의하면, 사회 체계로서의 법이 적용 준수되고 구속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심리적, 사회적 사실이 바로 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법체계와 관련되었을 때 법으로 
파악된다. 그에 의하면, 법이 적용, 준수될 때 개별 규범이 
아니라 법의 전체계가 움직이는 것이고, 법은 상위규범으로부터의 위임이나 연역되는 것뿐만아니라 하위규범이나 
개별판결에서 귀납되기도 하는 전체 체계 내에 있다고
하였다. - P25

다시 선험적 개념으로 돌아와서 독일의 신칸트학파는 
법의 가치 내지 목적,이념과의 관련성을 파악하고, 
법은 문화의 세계에 속한다고 한다. 
신칸트학파의 스탐러(R. Stammler)도 법을 "불가침적이고 자주적으로 통합시키는 의욕"이라는 보편적 정의를 하였다. 그리고 라드부르흐는 법을 "법이념의 실현에지향하는 현실"이라고 정의하였다(라드부르흐 법철학, 62년 이하). 
그는 현실 속에 존재하고 효력을 발휘하는 법은 법이념에 
기여하고 지향하는 것이며, 그 지향이 없는 경우에 법은 
떼강도나 조폭들의 규율과 다를 바 없다고한다. 
헤겔도 그의 법철학 서문에서 ‘철학적 법학의 대상은 법의 
이념, 즉 법의 개념과 그 실현‘이라고 하며, 헤겔을 계승한 
빈더(J. Binder)도 ‘법이념이 기능하는 모든 것이 법‘이라고 한다. - P26

그 후 카우프만(A. Kaufmann)은 존재와 당위의 이원론을 지향, 종합하여 법은 존재질서로서 존재와 당위의 상응이고, 그 상응의 방법은 유추(Analogie)라고 한다. 

이는 존재와 당위의 이원론적 일원론으로서 라드부르흐의 법 개념과 같은 맥락에 서있다고 생각된다. 그에 따르면 
법은 존재하는 당위이다(Seiendes Sollen). - P26

이에 대하여 법실증주의자들은 반박한다. 존재와 당위는 
시원적 범주로서우리 의식 속에 주어져 있지만, 사실을 
기술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라는 언명은 하나의 규범을 
기술하는 ‘어떤 것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언명과 본질적으로 다르고, 존재에서 당위나 당위에서 존재가 추론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부도덕한 법도 법이고 악법도 법이므로, 
그효력을  부인하거나 적용 준수를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법 개념과 법이념의 관련성을 부정한다. 

또 다른 실증주의인 법률실증주의 내지 법전실증주의는 
있어야 할 법, 자연법을 숙청시키고 오로지 존재하는 법, 
실정법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 P26

다른 한편 독일의 법사회학자 루만(N. Luhmann)은 
체계이론에 입각하여 자기생산적인 체계로서의 법을 
말한다. 루만의 거대이론은 어렵고 복잡하지만,체계는
인간이 세계의 복잡성(행위 선택의 다양성)을 의미있는 
체험과 행위로 이행시킬 수 있는 매개이고, 체계는 바로 
이러한 우연성과 복잡성을 감축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한국법철학회 편, 현대법철학의 흐름, 349면 이하 참조). - P27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행위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행위기대가 배반될 경우 사람들의 문제 해결방법에는 
‘인식적 대응‘과 ‘규범적 대응의 두가지가 있다. 인식적 대응은 체념이나 외면 등으로 기대의 배반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규범적 대응이란 일어난 행위기대의 배반, 즉 사회적 분쟁 
자체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즉 반사실적으로 일어난 사실을 부인하는 방법으로(소 제기나 형사 고소 등)행위기대의 배반을 부정하고 자신의 기대를 회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루만은 규범이란 "반사실적으로 안정화되는 
행위기대"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포괄적인규범체계(도덕, 습속 등)에서 법체계가 분화되었고, 행위기대를 반사실적으로
부정하는 방법으로 안정화하는 규범들 중에서 법은 일반화된 행위기대를 구조화한 것이며, 행위기대의 반사실적인 
안정화는 법체계의 강제적 방법에 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27

구조화된 법, 즉 법체계는 정치, 경제체계 등과 같이 사회체계의 부분체계로서 법해석학과 판례 등을 통하여 자기준거적이고 자기생산적으로 외계의변화에 대응한다. 외계와 환경의 변화, 예컨대 정보화시대의 SNS나 전자상거래 등이 나타나면 기존의 법해석학적 개념도구와 고유한 법체계의 코드로 번역하여 자기생산적으로 대처하고, 가능한 경우 입법(예: 전자상거래법,
정보통신망법으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할 수도 있다. 루만에 의하면 입법과사법은 기능적으로 분화되는 것일 뿐이고, 법의 정당성은 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후술: 절차적 정당화의 이론), 오늘날 법체계의 분화는 고도화되어 실정법만이 법으로 구성되어 동어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법은 법체계에 따라 법으로 타당한 것이 법이 된다. 따라서 그는 법은 사회적 분쟁을 규범적으로 해결하는 자기생산적 시스템이라고 한다. 법체계의 자기생산성은 켈젠이 말하는 법의 자기결정성과 대비된다. 루만에 의하면, 법의 실정성은 ‘법체계가 자신과 외계를 스스로 관찰하면서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
이고, 바로 이것은 법의 자기규정성으로서의 실정성을 말하는 것이다.
- P28

오늘날 객관적 법은 일차적으로 ‘상호 관련되어 있는 법규범의 총체‘인데, 법규범이란 무엇인가? 

법규범은 금지나 요구를 명하는 것이고, 그것이 법의 형식적 본질이나 특성에 부합한다. 이것이 바로 영국의 오스틴(J. Austin), 독일의 엥기쉬K. Engisch)의 법명령설이다. 

즉 법은 국가를 대표하는 입법자의 의사표현이다. 오스틴은 협의의 법은 인간에 의하여 부과된 실정법이고, 공동체를 
지배하는 규칙와 원칙의 총체로서 정치적 권위에 의하여 
강제되는 것이라고 한다. - P28

켈젠(H. Kelsen)은 법을 강제규범, 즉 제재를 규정한 주된 
규범, 법관 등 법집행자에 대한 제재의 지시라고 한다. 
강제질서로서의 법은 저항이나 위반의경우에 물리적 
사실력을 통하여 집행된다는 상황을 가리키고, 
이것이 결정적 규준이라는 것이다(켈젠 법이론선집. 37) 

예링(R. Jenning)은 국가의 집행에 의한 강제는 법의 절대적 기준이고, 강제가 없는 법은 타지 않는 불이나 비추지 
않는 빛과 같이 그 자체 모순이라고 하였다.


- P28

켈젠에 의하면, 규범은 타인의 행위를 지향하는 의지행위의 의미이고, 그의미는 당위이며, 당위는 의욕의 상관개념이다. 규범이 의지행위를 통하여 제정될 때 의지행위의 의미인 
당위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거기에 규범의 실증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실증주의의 법 개념이고, 의욕으로서의 법은 법명령실에 상응한다. 그리하여 그는 동어반복적인 
법의 개념규정은 포기하고, 법의 언어관용 분석에 의하여 
법은 ‘인간행위의 질서이고 통일성과내적 질서를 가진 규범체계‘라고 한다. 그는 법의 순수형식으로서 하위법이
상위법에 근거하고 구체화하는 법질서의 단계구조를 
파악하고, 최상위의 근본규범은 전제되고 있는 규범으로서의 가설 내지 의제라고 하였다. 

- P28

컬젠의 근본규범은 말하자면 단지 "헌법에 따라 행위하라‘
는 창설규범으로서 실체적 내용은 없는 것이다. 다만 켈젠은 
하위법의 창설에 있어서 현실적인 입법자나 법관의 법창조적 기능을 인정하여 순수한 법실증주의자는 아니다. 
즉 순수형식으로서 하위규범이나 판결이 상위규범에서 
효력근거를 갖는다는 것뿐이고,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서 
입법 내지 판결 재량이나 법설정 내지 법형성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 P29

다른 한편 하트는 그의 ‘법의 개념(The Concept of Law)‘에서 명령 등으로 일원화하는 전통적인 법이나 권리의 정의 방식은 무용하고, 법이라는 일상언어 관용에 따라 그 용어가 사용되는 조건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트 법 개념의 핵심은 규칙명제로서의 법을 
행위규칙들의 체계라고 하며, 행위규범인 1차적 규칙
(rule of obligation)과 수권규범인 2차적 규칙
(rule of adjudication, change, recognition)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취약성 때문에 의무적 규칙이 필요하고, 법의 규칙은 인간이 빠질 수 있지만 서로 가까이 공존하기 위하여 억압되어야 하는 폭력이나 절도, 사기 등을 금지한다.이것이 1차적 규칙이고, 초기 사회는 의무를 부과하는 
1차적 규칙에 한정되었다. - P29

사회가 복잡해지고 분화되면서 1차적 규칙을 제정하고 
변경하며, 그 위반에 대하여 재판하는 규칙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1차적 규칙인 행위규범 이외에 2차적 
규칙이 필요하게 되며, 2차적 규칙은 법관료(공무원)에게 
행위규범을 설정하고 변경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근본규칙이다. 2차적 규칙 중 설정률 내지 재판률에는 행위규범을 
실정하는 입법뿐만 아니라 이를 판단하는 재판규칙도 
포함된다. 그리고 2차적 규칙 중에서 변경룰은 행위규범 
등을 변경하는 규칙이다. 2차적 규칙 중에는 법이 시민에게 계약을 체결하거나 유언을 하는 등으로 법적 지위를 변경시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규칙도 포함한다. 

무엇보다도 하트의 2차적 규칙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인률(rule of recognition)이고, 승인률은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공무원이 어느 규칙이 진정한 규칙인지를 
확증하는 타당성의조건이나 기준을 정하는 것이고, 
이는 법체계의 근본적인 구성적 규칙이다. - P29

그에 따르면 법체계의 존속은 다음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유효한 1차적 규칙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준수해야 하고, 2) 법을 적용하는 공무원들이 2차적 
규칙을 승인해야 한다. 

"법체계가 존속한다는 주장은 일반 시민들에 의하여 
준수되는 것과 공무원이 공적 행동의 비판적이고
공통적인 기준으로 내적 관점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 
양자 모두 필요한 두 얼굴을 가진 진술이다." 

그는 규칙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태도나 인식의방식, 
즉 규칙의 사회적 차원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내적 관점인비판적, 반성적 태도가 규칙을 단순한 
습관이나 강요와 구분하게 한다. 강도가 총을 들이대고 
돈 내라고 하면 이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승인률을 내적 관점으로부터도 
승인해야 하고, 승인률은 법체계의 모든 규칙의 유효성을 
결정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2차 규칙과 
달리 승인률은 이 규칙을 따르는 공적 권한을가진 자
(특히 법관에게 부분적으로 의무를 부과하는 측면이 있다. 하트는규칙이 승인률에 정해진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그 규칙이 법체계의 유효한 일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왁스, 법철학, 38면 이하). - P30

법관 등 공무원이 사악한 법체계에서 적용이 요구되는 
규칙에 대하여 저항할 수는 있지만, 이를 승인함으로써 
그러한 법체계가 존속한다는 하트의 조건이 충족된다. 
물론 하트도 법체계가 일반적 승인을 얻지 못하고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반대를 당할 경우가 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도덕이나 정치적 기준이 법체계 
개념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법체계의 타당성은 실효성과 구분되고 
비실효적인 규칙도 승인률에서 나오는 한 타당하다고 
하면서도, 타당한 규칙이 되려면 그 규칙이 포함되어 있는
법체계 자체가 대체로 실효적이어야 한다. 이는 뒤에서 
보는 켈젠의 관점(3장 제5의 1항 참조)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 P30

결국 하트는 법의 언어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그의 
승인률은 공무원들의내적 관점을 중시하는 법심리학적 
법이론으로 전화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법의 실효성을 
중시하는 사회학적 법이론과도 연결된다고 생각된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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