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평등권
1. 평등권 서론
가. 평등이념의 발전
평등은 자유와 더불어 인간 사회가 붙들고 씨름해 온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정치적, 법적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을 정의의 본질적 요소로 파악하고 분배적 정의와평균적 정의를 구별하여 설명하였다.
분배적 정의는 공적 재화를 배분함에 있어서 각자의 능력과 공적에 상응(비례)하는 대우를 함으로써 실현되고, 평균적(산술적) 정의는 개인 상호간의 거래ㆍ교섭에서 손익의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실현된다고 하였다. 후자는 동등처우를 요청하지만(각자에게 같은 것을), 전자의 경우 비례적 차등처우의 요청(각자에게 그의 것을) 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평등은 이와같이 동등처우와 차등처우라는 모순적 요소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평등이 자유와 더불어 헌법이념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근대국가의 성립 이후이다. 헌법이념으로서 평등은 법 앞의 평등, 법적 · 정치적 평등에서 출발하였다. 평등은 모든 시민이 신분, 종교, 재산 등에 따른 차별 없이 법의 동등한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법적용상의 평등으로 이해되었고, 여성 등을 배제한 채제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보통선거의 원칙을 통하여 시민의 동등한 정치 참여를 요구하였다. - P320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의 이익에 근거해서만 있을 수 있다." - P320
법적 · 정치적 평등은 꾸준히 진행되어 상당한 정도로 실현되었지만 오늘날 평등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빈부 격차의 확대와 같은 경제적 불공정성의 확산, 사적 권력에 의한 차별의 만연과 같은 사회 문제 또한 평등의 문제이다. 다만 이러한 문제를 자유, 평등, 복지라는 세 헌법이념을 어떻게 구성하여 해결할지에 관하여는 상이한 헌법이론 •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그 기저에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깔려 있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념으로서의 평등과 자유의 관계의 문제이다. 양 이념은 상호보완적이면서 상호 제약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오랜 역사 동안 갈등을 겪으면서 경쟁을 벌여왔다. - P321
나. 헌법의 평등조항
헌법은 일반적 평등조항으로 헌법 제11조를 두고 있다. 개별적 평등조항으로는 헌법 제25조, 헌법 제31조, 제32조 제4항, 제36조 제1항, 제41조 제1항, 제67조 제1항, 제116조 제1항이 있다.
헌법 제25조는 공무담임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능력에 의한 균등한 공직기회의 보장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하며, 헌법 제31조또한 능력에 의한 균등한 교육기회의 보장을 주요 내용의 하나로 삼고 있다.
일반적 평등원칙이 개별 기본권 등의 분야에서 발현된 것이 개별적 평등조항이지만, 개별적 평등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고 하여 일반적 평등조항의 적용이 언제나 배제되어야 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일반적 평등원칙은 개별 평등조항에포함될 수 없는 규범적 내용들을 지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무담임권은 공직에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내용으로 하고 그 요체는 능력주의이지만, 이를 넘어 실질적 평등에 입각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도입이 가능한지, 그 한계는 어디인지가 문제될 때에는 일반적 평등원칙의 해석 · 적용을 통하여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 P321
다. 평등권의 법적 성격과 작용
평등권은 권리이다. 평등권의 주관적 권리성을 부인하고 객관적 법규범으로서의 평등원칙으로만 이해하는 견해가 있지만, 평등권은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개인에게 귀속되는 주관적인 권리이다. 평등권이 독자적인 보호영역이없고 상대적인 관계를 규율한다는 점에서 자유권과 다르다고 하여 그 주관적 권리성을 부인할 것은 아니다.
이유 없는 차별로부터 동등처우를 요구할 수 있는 지위나 이익은 얼마든지 주관적 권리의 내용으로 구성할 수 있다. 주관적 권리이므로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평등권의 권리성을 부인한다면 이것이 허용되지 않고, 특히 기본권적 지위에 관한 차등취급이 아니라 법률상의 지위 상호간에 차등취급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기본권 차원에서의 구제가 불가능하게 된다.
- P321
"하지만 주민투표권이 헌법상 기본권이 아닌 법률상의 권리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비교집단 상호간에 차별이 존재할 경우에 헌법상의 평등권 심사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2007. 6. 28. 2004헌마643).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 재판청구권으로서 보호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이 사건 법률조항들이 청구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고, 다만 국민참여재판의 대상 사진과 시기를 규정한 재판참여법률 제5조 제1항, 부칙 제2항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만 문제된다고 할 것이다." (현재 2009. 11. 26. 2008헌바12) - P322
주관적 권리로서 평등권은 1차적으로 대국가적 권리이다. 평등권은 국가로부터의 방어나 국가에 대한 적극적 요구의 상대적 관계를 문제삼는 기본권이다.
따라서 국가가 차별적으로 자유를 제약할 때에는 이에 대한 방어권으로 작용하고, 국가가 차별적으로 급부나 혜택의 제공에서 배제할 때에는 국가에 대한 적극적 요구권으로 작용한다. - P322
모든 국가기관은 평등권의 구속을 받는다. 먼저,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은 법의 집행에 있어 평등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행정권은 행정작용을 할 때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한 행정객체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확립된 행정관례가 있으면 이에 구속되며 함부로 이로부터 이탈하여 특정인을 다르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를 ‘행정의 자기구속의 법리‘라고 하는데, 이는 평등권(평등원칙)이 행정법에서 발현된 것이다. 그러나 ‘불법의 평등‘은 원칙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위법하게 주어진 혜택을 평등에 기초하여 청구할 수 없다. 그리고 불법을 저지른 자는 법 집행의 불평등 항변으로 면책될 수 없다.
행정기관의로서는 부분적 집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인만 골라서 표적 단속하는 것은 법 집행상의 평등 위반이 될 수 있다. - P322
다음으로, 입법자는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 법률의 내용이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법앞의 평등‘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법의 평등‘ (법에서의 평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 P322
"헌법 제11조 제1항에 정한 법앞에서의 평등의 원칙은.... 사리에 맞는 합리적인 근거없이 법을 차별하여 적용하여서는 아니됨은 물론 그러한 내용의 입법을 하여서도 아니된다는것이다." (헌재 1989. 5. 24. 89헌가37). - P323
평등권은 나아가 객관적 법규범이다. 평등권(평등원칙)은 헌법의 최고원리의하나이고, 국가작용의 지도원리이다. - P323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평등권에도 대사인적 효력이 인정되고, 평등권에관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도 인정된다. - P323
평등은 이와 같이 규범적 효력을 갖지만, 평등은 규범의 적용이나 재구성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평등을 가로막는 현실의 사회구조와 사회문화의 공고한 뿌리가 있다. 평등규범이 적용되고 효력을 발휘하는 영역에서도 간접적, 사실적 형태로, 은폐된 채 때로는 적나라하게 불평등이 발생할 것이다. 구체적 현실의 문제를 평등에 맞게 잘 구성된 규범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해결하려는 노력, 그리고 이를 현실에서 수용하고 관철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 P323
라. 평등권의 주체
평등권은 인간의 권리이다.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평등권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인정되지 않는 기본권(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권)에 관하여는 평등권의 주체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와 달리, 입법자가 법률 차원에서 외국인의 권리나 법적 지위를 규율할 때 행해진 차등에 대해서는 평등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예: 미국거주 외국국적동포와 중국거주 외국국적동포를 출입국의 조건에서 차등취급).
법인(권리능력 없는 사단·재단 포함)도 평등권의 주체이다. 다만, 자연인에게만 존재하는 표지를 기초로 하는 차별, 예를 들어 성별, 국적, 인종 등에 기초한 차별로부터의 보호에 있어서는 법인의 평등권 주체성은 부인된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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