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PC 비판 담론을 활용한 국내의 PC 비판은
‘시기상조인가? 결코 그렇진 않다. PC의 주제와 
관련된 ‘종속 혹은 지배‘의 상태를 비교 평가하면서 
좀더 섬세한 비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것일 뿐, 
‘시기상조‘를 앞세워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반지성주의적 
행태는 경계해야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관련, 나는 복도훈의 다음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P58

"누군가는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에 대한 있을수 
있는 비판을 페미니즘에 대한 비평적 반동과 성급하게 
등치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페미니즘을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의 전술 전략의 평평한 결합으로 
축소하면서 그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허용치 않으려는 
편협함과 옹졸함을 스스로 드러낸 것뿐이다. 대안적인 
사회운동의 봉기에 적절한 때와 장소가 없는 것처럼, 
그에 대한 있을 수 있는 비판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란 
없지 않은가." - P59

서구의 PC 경험을 한국 실정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은 PC 운동가들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PC 운동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서 PC 운동이 전체 사회와 
여론의 지평을 살피는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싶다. 미국처럼 전반적인 여론이 PC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선 운동의 동력을 얻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 P59

이와 관련, ‘정체성 정치‘ 문제로 가장 치열한 고민을 해온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건 주목할 만하다. 차이를 갈등이 아닌 자원으로 삼고자 하는 니라 유발 데이비스의 ‘횡단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 남성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전략적 사고에 기반한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등이 바로 그런 시도다.  - P60

이런 전략적 사고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PC의 전분야에 
걸쳐 활용될 수 있다. 지극히 옳고 정당한 문제 제기가 
방법상의 과잉이나 절제의 결여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격하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전혀 올바르지 않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PC 운동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왕성하게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PC 운동이 일어난 것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는 걸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 P60

사실 나는 PC의 생명은 겸손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하는 말로 ‘지적질‘을 받고 기분이 
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PC에 관한 의견을 표명할 때엔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상대방의 기분을 최대한 배려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사람이 너무 많다. 특정인을 겨냥해 속된말로 
잘난 척하면서 싸가지 없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 P88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지도 모를 이런 그림을 그려보자. 
친구 몇 명이 모여서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대한 가벼운 농담을 하면서 매우 즐거워한다. 

그런데 그때 친구들 중 한 명이 정색을 하고 일어서면서 
"이건 옳지 않아!이런 말을 하려면 그 사람 앞에서 하는 게 
옳지, 이건 비겁하단 말이야"라고 외친다면?


- P96

이 가벼운 농담을 즐겼던 당신은 졸지에 비겁하고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지금까지 즐겨온 농담을 할 자유의
침해인가? 옳지 않다고 외친 친구의 말에 수긍하지 
못할건 없지만, 문제 제기를 꼭 그런 식으로 했어야만 
했을까?

당신을 포함해 농담에 동참했던 친구들은 모두 이의를 
제기한 ‘의인‘의 싸가지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 P97

PC가 정치판으로 들어가면 상대편을 때려 눕히려는
몽둥이가 되고 만다. 이른바 ‘장애우 사건‘을 보자. 
2021년12월 1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이 
선거대책위원회장애인복지지원본부 행사에서 ‘장애우‘ 
표현을 쓴 데 대해 민주당과 정의당이 격한 비판에 나섰다. 민주당은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망언을 했다"고했고, 정의당은 "장애인을 향한 우월의식과 시혜적 시선을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라며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서정말 낯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 P98

‘장애우‘는 오랫동안 진보적 용어였다. ‘장애우‘라고
하지 않으면 욕을 먹을 것 같은 분위기가 강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정치적 올바름‘의 원칙은 
늘 진화한다. 이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들이 
‘장애우‘는 (정의당의 주장처럼) ‘장애인을 향한 
우월의식과 시혜적 시선‘을 드러내는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왜 장애인의 생각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친구 행세를 하려 드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도 2015년부터 개선 운동에 
나선 표현이 되고 말았다. - P99

부탁한다. 아니 읍소하련다. 제발 그러지 말자. 
PC를 남들에게 으스대는 ‘완장‘의 용도로 쓰지 말자. 
그건 PC를죽이는 일이다. PC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PC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높아졌다. 2016년대선에서 ‘막말의 달인‘이었던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를 한 데엔 그의 
노골적인 반反PC 운동이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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