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고학력 좌파가 주도하는 PC

그런데 이런 비판은 트럼프가 극단으로 밀어붙인 것일 뿐 
민주당 내부에도 이른바 ‘리무진 리버럴‘에 대한 비판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주당이 
끊임없이 저지른 죄악은 속물근성이었다"거나, 민주당
정치인들의 전형적 이미지를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비싼 커피를 홀짝이고, 고급 포도주를 마시고, 동북부에 살고, 하버드나 예일대를 나온 리버럴"로 규정하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런 ‘리무진 리버럴‘이 PC의 강력한 지지자라고 하는 사실은 PC에 위선의 굴레를 씌우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앞서 거론한 예일대학 조사에서 PC 이슈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전체 미국 인구의 8퍼센트로 고소득·고학력에 
좌파 행동주의 성향을 지닌 백인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원들은 "이들이 주도하는 PC 논쟁은 월세를 걱정하면서 사는 80%의 ‘탈진한 다수exhausted majority‘에겐 멀고도 불편할 얘기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 P45

한국은 어떤가? 있는 그대로의 한국 사회는 사실상
돈과 학벌이 지배하는 신분사회다. 하지만 그 신분 위계의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도 감히 공식적으론 그걸 긍정할 수
없다. 그 위계를 공고히 하려는 시도를 공개적으로 할 수도 없다. 속마음을 숨기는 위선을 저질러야만 한다. 속어로
널리 쓰이는 ‘강남 좌파‘는 그런 신분사회를 전제로 한 
이념·당파성 투쟁을 냉소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 P46

사이버세계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널리 쓰이는 용어가 
바로 ‘입진보‘와 ‘선비질‘인데, 이는 실천 없이 말로만
떠드는 것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이런 표현이 옳건 
그르건, 행동 없는 위선에 대한 반감과 PC에 대한 반감은 
무관하지 않다. PC 운동가들의 계급 학력 수준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PC는 그들이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려는 
‘인정투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결코 우연이 아니다." PC를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부자병‘으로 보기도 한다. 
위선은 적을수록 좋으며, 따라서 위선에 대한 비판은 
왕성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 P46

계급 :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의 갈등

PC는 계급적 관점에서도 도전을 받고 있다. PC는 
이념적으로 진보좌파적 운동으로 간주되어 왔기에 
보수우파보다는 진보좌파 쪽의 비판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많은 진보좌파 이론가가 PC의
 ‘도덕적 독선‘의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이런 비판은 
조심스럽거나 우회적으로 이루어져왔다.  - P48

하지만 계급의 문제를 앞세워 PC를 비판하는 대표적
이론가인 슬라보예 지젝은 PC를 경제적인 계급 불평등을
은폐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방패‘로 간주할 정도로 도발적이다.

그의 PC 비판은 문화비평에서부터 성폭력 기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의 최종 
문제의식은 경제적 계급투쟁이다. 지적은 PC는 "자본주의
세계 체계의 기본적동질성은 손대지 않은채 문화적 
차이를 위한 싸움에서 대리 분출구를 발견한 것"이며, 
"PC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자본주의는 승리의 행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P48

PC를 포함한 정체성 정치 전반에 대한 진보좌파적
비판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은 인종, 성, 종교 등 
여러 기준으로 분화되어 각 집단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체성정치가 경제적 정의의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타협이나 협상엔 관심이 없고 ‘전부 아니면 전무‘를 
원하기 때문에 분열적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공통 미래에 관한비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 P50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에 수긍하긴 어렵지 않지만,
경제에 집중하는 계급 정치와 인정에 집중하는 문화 
정치라고 하는 상호 배제적 이분법이 올바른 문제 
설정인지는의문이다. 계급과 인정, 경제와 문화는 상호 
보완 관계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설령 둘의 관계가 
양자택일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정체성 정치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온 빈부격차 문제에 전혀 대처하지 
못한 계급 정치의 실패와 그런 실패에도 이론적 수준에서 
여전히 계급 이외의 이슈 제기를 적대시하는 계급 정치의 
독선과 오만으로 인해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P51

이는 한국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좌파 운동권에 ‘페미니즘‘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운동권 내부에서 저질러진 
성폭력마저 "‘진보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위‘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이 
조직 밖으로 알려져선 안 된다"는 이른바 ‘조직보위론‘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었다. 2002년 대선 기간 중 개혁당 
수련회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이 "해일이 일고 있는데 
겨우 조개나 줍고 있냐"는 논리에 밀려 은폐되었듯이, 
‘조직보위론‘은 2000년대에도 건재했다. - P51

그렇게 보위했던 조직이 빈부격차 해소에 기여하기는커녕 기존 보수 제도권 정치에 흡수되어 사라졌는데도
여성은 조직보위론의 연장선상에서 계급 정치에만 
몰두해야 할까? 정체성 정치에 대한 계급 정치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선 그간의 무능과 과오에 대한 성찰이 선행 
또는 병행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 P52

PC를 통제하는 브레이크는 여론이다

정체성 정치는 계급 정치를 대체하는 거대 이론이 아니다. 
일부 이론가들이 거대 이론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한다 해도 그런 시도를 곧장 PC 비판의 논거로 삼는 것은 우도할계일 수 있다. 

정체성 정치가 계급 정치를 대일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fallacyof slippery slope‘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오류는 일단 우리가 사람들의 
언행을 사소하게나마 제한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런 
제한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고,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더욱더 침해하는 다음 단계의 준비가 되는 토대를 쌓는 
것이 된다는 논리 구조에 근거한다. - P52

하지만 로버트 프랭크가 잘 지적했듯이, 사람들은 혼잡한 
극장에서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의 필요성은 인정하겠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그 이상의 시도에 대해서는 
저항한다. 끝까지 쭉 미끄러져 내려가는 게 아니라 중도에 
브레이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 P53

PC에서 그 브레이크는 바로 여론이다. 미국 인구의다수가 PC를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에서 PC의 영향력은쇠퇴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의 PC가 미국의 PC를 일정부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이며, 또한 PC의 과잉과일탈이 아무리 심하게 저질러진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경제적인 계급 불평등‘이 은폐되거나 ‘살균된 문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없는 이유다. - P53

지적은 PC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현실 세계에 대한 개입을 
강조하지만, 이는 그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글과 말이 아닌 실제 행동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자들이 
보기엔 지적 역시 여전히 ‘문화‘의 영역에만 머무르고 
있을뿐 ‘정치‘에 뛰어든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혁명에직접 뛰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은 
처지라면 PC를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가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아니 이는 어떤 세상을 꿈꾸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일말의 주저함도없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지젝은 공산주의의 재구성을 시도하면서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큰위협‘으로 간주한다. - P54

지젝은 사회주의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투기와 
인도주의적 활동을 병행하는 조지 소로스와 같은 
인물들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시장 폭리자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훨씬 더 위험하다"며
 "우리가 레닌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한때 일부 좌파가 진보적 자유주의자 공격에 
더 열을 올렸던 것은 바로 그런 레닌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는데, 좌파의 PC 비판에 대한 논의는 이 레닌주의 
원칙에 대한 검증을 선행해야하지 않을까? 

이는 PC 비판의 이념적 층위를 따져보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걸 시사해준다. 또한 모든 사회운동은 하나의 
이념적 노선으로 통일되어야 하며 그 노선에서 이탈한 
운동은 비판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운동관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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