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 P29

사람들은 저마다 윤리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의 
윤리적 목표가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욕먹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 빠지면 그러한 윤리의 목표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 과장된 매출자료를 
제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답을 통해 그 사람의 윤리의 목표를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리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요? - P30

정의 추구

인간에게는 누구나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법과 도덕을 준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부터 
공정한 경쟁을 위해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의 구조화된 불의를 지적하고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정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지혜, 용기, 절제, 정의는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4주덕입니다. 앞의 세 덕목은 정의라는 덕을 위해 존재하는 덕목일정도로 고대 철학자들은 
정의를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마이클 샌델은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이해하는세 가지 방식을 설명합니다.

첫째, 공리주의의 관점으로 "정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것" 입니다.

둘째, 자유주의의 관점으로 "정의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것"입니다.

셋째, 공동체주의의 관점으로 "정의란 공동체의 미덕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의의 개념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윤리의 목표로인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윤리의 목표로 삼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의 개념이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정의로 생각했던 것이 더이상 정의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에서 철인만이 국가를 통치해야 하고, 
일반 시민계급은 생산자 계급으로 절제된 욕망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것이 정의로운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이 생각한 정의는 현대인의 감각으로 볼 때 
사람을 차별하는 불의입니다.

게다가 정의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를들어, 자신이 일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자유주의)을 정의로 생각하게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은 같지만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평등주의)을 정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의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성경 또한, 정의와 공의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대상 18:14 시 
99:4, 106:3; 잠8:20 21:3; 사 32:16 59:14;렘 33:15: 겔 
18:5; 암 5:7).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경 구절들의 
공통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공통점은 정의를 사랑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사회 안의 경제적 약자에 대한 최우선적인 관심을 
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대표적인 경제적 약자입니다(출 22:22 신10:18,24:17; 즉7:10:
욥 22:9, 24:3; 시 68:5, 94:6, 109:9). 성경은 이러한 약자를 압제하거나 해를 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선지자들은 사회 내의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약자인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착취하는 사람이 왕이라도 그들의 
목숨을 걸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만큼 성경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윤리의 목표로 삼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경제적 약자를 돕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여도, 그것이 
내면적인 동기와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관대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 혹은 성공하기 위해 표면적으로정의를 외칠 수 있습니다.

윤리의 목표는 내면과 표면이 일치해야 합니다. 즉, 표리부동하지 말아야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표리부동에 대해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로 강하게 견책합니다(겔 13:14-15 마 23:27; 행 23:3). 그러므로 정의를 윤리의 목표로 삼는것은 성경의 맥락과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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