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적 권위주의 국가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크라베의 학설은 협동체이론에 가깝다. 권위주의 국가이론 및 
법률이론에 대한 그의 투쟁은 프로이스의 널리 알려진 
논의들을 상기시킨다. 협동체이론의 창시자인 기르케는 
스스로의 국가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즉 "국가나 여타 통치자의 의지는 법의 궁극적인 원천이 
아니라 인민들의 삶으로부터 생겨난 법의식을 표명하기 
위해 마련된 인민들의 기관이다."

- P39

통치자의 인격적 의지는 유기체적 전체로서의 국가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러나 기르케에게 법과 국가는 
‘대등한 권력‘이며, 그 상호관계에 관한 근본적 물음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즉 양자는 인간 
공동생활의 두 가지 독자적 요소이며 한쪽 없이 다른 
한쪽을 생각할 수 없지만, 어느 쪽도 다른 한쪽에 
의존하거나 혹은 다른 한쪽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물론 혁명적인 체제변화를 통해서 법적 단절, 즉 법적
연속성에 단절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윤리적으로 
요청된 것일 수도 있고 역사적으로 정당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법적 단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단절은 "인민들의 법의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정한 조치를통해서" 사후적으로 법적 근거를 부여받아 
메워질 수있다. 예를 들어 헌법협정이나 국민투표나 관습의 치유력 등을 통해서말이다. 그래서 법과 권력은 서로 
합치하는 경향이 있는 것인데, 이러한 합치가 없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긴장상태‘가 이로써 제거된다.

국가는 법을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명령자가 아니라 수호자"인데, 수호자란 "맹목적 하수인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비에트 사상 속에서 협동체적 자치로의 
경향, 국가를 스스로의 ‘순수한‘ 기능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의 표출을 보고 있는 것이다.

볼첸도르프는 국가를 "최종 결정을 내리는 수호자"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협동체적이고 민주적인 국가관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권위주의적 국가이론에 얼마나 
접근해 버렸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크라베나 앞서 지명한 협동체이론의 대표자들에 
대해 도의 최근작은 이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실체적 의미에서의 형식이라는 결정적 개념을 
논의의 장(場)에 제시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질서자체의 
힘을 높게 평가하고, 국가의 보장 기능이란 매우 독자적인 
것이어서 국가가 더 이상 법이념의 확정자라거나 "외적이고 형식적인" 전달자가 아님을 밝혔다. 여기서 법논리적 
필연성에 비춰봐서 모든 확정과결정에 어느 정도까지 
구성적 요소가 포함되느냐, 즉 형식의 고유가치가
인정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볼첸도르프는 형식이란 "사회ㆍ심리적 현상"이며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현실을 움직이는 요소라고 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정치적 동기를 갖는 세력들이 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는 안정적 요소를 
헌법의 사고구조 속에서 파악 가능하게 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국가는 삶의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형식이 된다. 

예측 가능성을 위한 하나의 형태도르프와 헤펠레가 
사용한 것과 같은 미학적 의미에서의 형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 P43

결단에 근거한 법형식의 특성
(기술적 혹은 감성적 형식과 대비하여)

형식 개념을 둘러싼 철학에서의 혼란은 사회학이나 
법학에서 특히 해로운 것으로 되살아난다. 
법형식, 기술적 형식, 감성적 형식, 그리고 초월론적 
철학의 형식 개념은 각각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베버(MaxWeber)의 법사회학에서도 세 가지 형식 
개념을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로 그는 법내용을 개념적으로 엄밀화한 것을 
법형식이라 부른다. 바로 그가 말하는 규범적 규제이다. 
물론 그는 그것을 양해행동의 인과적요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두번째로 그는 영역 분류에 관해 말할 때 
형식적이라는 말을 합리화, 전문화 예측 가능성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발달한 법이란 자각적인 판결 원칙을 지닌 
복합체이며, 사회학적으로 보면 훈련된 법률전문가와
사법관료 등을 그 구성요소로 삼는다. 
교섭의 필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전문적 훈련, 
즉(!) 합리적 훈련이 불"가결한 것이 되었고, 
이렇게 됨으로써 법은 특수 법학적인 것으로 
근대화되고 합리화되어 ‘형식적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형식은 우선 법학적 인식의 초월론적 ‘조건‘을, 
그 다음으로는 훈련의 반복과 전문적 연구의 결과에서 
비롯된 합법칙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합법칙성과 
예측가능성으로부터 세번째 ‘합리주의적‘ 형식으로의 
이행이 일어난다. 이는 필연적으로 증대하는 사회적 
교류 및 법률적 소양을 갖춘 관료의 이해관심으로부터 
비롯된 예측가능성에 목적을 두는 기술적 완성으로의 
이행을 뜻하며, 이때 이러한 기술적 완성은 원활한 
기능 발휘라는 이상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신칸트주의자의 형식 개념을 다룰 필요는 없다. 
기술상의 형식 개념은 합목적성의 관점이 지배하는 
엄밀화를 의미한다. 이 의미에서의 형식이라는 말은 
조직화된 국가기구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사법형식‘을 
취하는 것에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엄밀한 군사명령은 기술적으로는 적절한 것이지만 법적 
이상에는 맞지 않다. 그것이 감성적이라고 평가되어 
나아가 의례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 기술성에 아무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숙고‘와 ‘행동‘을 
대립시켰지만, 양자는 두 가지 상이한 형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숙고는 법형식에 적합하고 행동은 기술적 
형식에 적합하다. 

- P44

법형식을 지배하는 것은 법이념이고 법적 사고를 구체적 
사례에 적용해야만 하는 필연성,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실현이다. 법이념은 스스로를 실현시킬 수 없기에 
이를 위해서는 특별히 구체적 모습으로 형식어야 한다. 
이는 일반적 법이념이 실정법으로 형식화되는 데에도, 
일반적 법규범이 사법적이거나 행정적으로 적용되는 
데에도 타당한 일이다. 법형식의 독자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만 한다. - P44

현대 국가론이 신칸트학파의 형식주의를 배척함과 
동시에 전혀 다른 형식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철학사를 더할 나위 없이 따분한 
것으로 만든 끊임없는 말 바꿔치기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현대 국가론의 노력에서 한가지 확실하게 
알수 있는 것은 형식이 주관으로부터 객관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라스크의 범주론에서 형식 개념은 모든 인식론적 입장이 그렇듯이 여전히주관적인 것이었다. 켈젠은 이렇게 비판적으로 획득된 주관적 형식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 
법질서의 통일성을 법학적 인식의 자유로운 행위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가 하나의 세계관을 
표명하는 단계에서는 객관성을 요구하고 헤겔적 집단주의를 국가 주관주의로 비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켈젠이 내세우는 객관성이란 일체의 인격성을 회피하고 
비인격적 규범의 비인격적 효력으로 법질서를 환원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주권 개념에 대한 다양한 이론은 이런 객관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며, 인격적인 것을 모두 국가 개념으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인격성과 명령은 
그들에게 명백히 똑같은 것이다. 

켈젠에 따르면 인격적 명령권이라는 표상이야말로 
국가주권론의 본질적 오류이다. 그는 국내법 우위설이 
객관적으로 유효한 규범을 명령이라는 주관주의로 
대체하기 때문에 ‘주관주의적‘이며법이념의 부정이라고 
단정한다. 한편 크라베는 인격 대 비인격의 대립을
구체 대 보편, 개별 대 일반의 대립과 결부시키고 나아가 
관헌 대 법규,권위 대 내용적 타당성의 대립으로 끌고 
나가 스스로의 일반적인 철학적 정식화 속에서의 
인격 대 이념의 대립에까지 이른다. 

이런 일련의 사고방식은 법치국가적 전통에 합당한 것이다. 이 전통 속에서 추상적 규범은 실질적으로 유효한 인격적 
명령에 대립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법철학에서 아렌스는 
이 대립을 명쾌하고도 흥미롭게 설명한 바 있다. 

프로이스나 크라베에게 인격이라는 표상은 모두 절대군주제의 역사적 유물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논의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인격이라는 표상과그것이 형식적 권위와 
결합되는 것은 특수한 법학적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관심이란 법적 결정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매우 선명한 의식에 다름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 결정은 법적으로 무언가를 지각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것이다. 모든 법적 사유는 순수한 
형태로는 현실화될 수 없는 법이념을 다른 응집상태로 
변화시키며, 법이념의 내용으로부터도 도출될 수없고 
현실에 적용되어야 할 일반적인 실정적 법규범으로부터도 도출될수 없는 하나의 계기를 덧붙이기에 그렇다. 


모든 구체적인 법적 결정은법의 내용과 무관한 계기를 
포함하는데, 현실의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의 전제로부터 
추론하는 법률적 연역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어떤 결정을 요구하는 상황 그 자체가 결정적 계기로 
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결정의 인과적이고 
심리학적인 발생이 아니라 법적가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추상적인 결정 자체는 중요하지만 
말이다. 사회학적으로는 결정의 명확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상업거래가 활발한 시기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거래에서는 특정 종류의 
물품보다는 예측 가능한 명확성 쪽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나에게는 개개의 열차시간표가 출발 시각이나 
도착 시각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보다도, 오히려 
그것이 믿을 수 있게끔 기능하여 나의 행동을 거기에 
맞출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법적 거래에서는 어음법의 이른바 ‘형식적 어음 엄격성‘이 이러한 관심의 한 예가 될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예측 가능성과 결정 자체에 대한 법적 관심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 법적 관심은 규범적인 것의 특성에 바탕을 둔 것으로, 구체적 사례는 구체적으로 판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판결의 기준으로 하나의 법적 원리가 일반적 보편성으로 주어져 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개별 사례들에 따라서 그 사례만큼의 판결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법이념 자체가 변화할 수 없음은 누가 그것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법이념이 말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이미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모든 변화에는 권위가 개입해 있다
(auctoritatisinterposite). 

그러나 어떤 개인이나 어떤 구체적 기관이 그런 권위를 
자신의 것으로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변별하는 규정은 
법조문의 단순한 법적 성질로부터는 도출될 수 없다. 
크라베가 고집스레 무시한 것은 바로 이 어려움이었던 
셈이다.

결정을 내린 권한기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결정 내용이 
옳았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로부터 결정 자체를 상대적으로, 때에 따라서는 절대적으로까지 독립시켜, 그 이후로는 
이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의를 봉쇄해 버린다. 
결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정이 내려진 논거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잘못된 국가의 행위에 대한 학설은 이 사태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완전하게 드러낸다. 이 학설에 따르면 
그릇되고 잘못된 결정도 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릇된 결정은바로 그 그릇된 덕분에 구성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의 이념은 절대적으로 선언적인 결정은 없다는 사실에 있다. 기초가 되는 규범의 내용에서 보자면 앞에서
 말한 구성적이고 특수한 결정이라는 계기는 새롭고도 
생소한 것이다. 규범적으로 봤을 때 결정이란 무로부터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결단의 법적 효력은 하나의 근거에서 비롯된 결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여기서는 규범의 손을 빌려 무언가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즉 결정이라는 귀속점으로부터 무엇이 규범이며 무엇이 
규범적 타당성인지가 규정되는 것이다. 규범으로부터는 
그 어떠한 귀속점도 생겨날 수 없고, 단순히 규범의 내용이 어떤 성질의 것인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법에 고유한 
의미에서 형식이란 이 내용의 성질과 대립하는 것으로, 
인과관계가 얼마나 담겨 있느냐 하는 양적 내실의 문제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후자의 문제가 법학의 
대상이 아님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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