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자연법 이론은 사회계약 체결의 필연성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 상태를 묘사하거나 이 상태 내의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장치로 쓰이게 된다. 이로 인해 근대에 이르러 자연법 이론은 사회계약 이론과 거의 완전히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자연 상태의 허구성이나 사회계약의 불충분한 필연성 등 많은 이론적 결점을 지니기도 한다. 가장 큰 결점은 무엇보다 자연 상태라는 표현에서의 무질서한 자연 개념과 본성의 법을 합의하는 자연법이라는 표현에서의 법칙적 자연 개념이 서로 혼동되어 쓰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더 일관된 자연과 법의 개념이 필요해진다.
일찍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자연 개념의 두 의미를 주의 깊게 구별해 사용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질료적 관점에서 본 자연"(natura materialiter spectata)은 "모든 현상들의 총괄이며 "형식적 관점에서 본 자연 (natura formaliter spectata)은 "시공 내 현상들의 합법칙"으로서의 자연 일반"이다(KrV, B163, 165). 전자가 전통적인 자연 상태 개념에 들어맞는다면 후자는 자연의 법 개념에 잘 어울린다. 따라서 이러한구별을 지키려는 칸트에게 좀더 세련된 자연법 이론을 기대할 수 있다.
칸트의 자연법 이론은 [도덕 형이상학]과 국제정치 및 역사에 관련된몇 몇 논문들에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도덕 형이상학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의 선험적 방법론 장에서 건축학적으로 계획한 "순수이성 철학" 의 체계적 부분을 비로소 완성하는 저서이다.
여기서 칸트는 "순수이성의철학을 한편으로는 비판적 예비학, 즉 순수이성비판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이성의 체계로 나누고, 다시 이 후자를 "자연의 형이상학"과 "도덕의 형이상학"으로 구분한다(KrV, A841/B869) 자연 형이상학에 해당하는 [자연학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들이 1786년에 출판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순수이성비판』의 재판(1787)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완성된 도덕 형이상학이 칸트에게는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영역이었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73세 老철학자의 이 도덕 형이상학이 그의 실천철학의 만족스러운 완결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그의 자연법 이론의 구성 요소들과 관련하여 이성의 법정은 여전 히소란스럽다.
이 장에서는 도덕 형이상학에서 전개된 칸트의 자연법 이론이 어떠한 난점들을 지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그의 자연법 이론은 크게자연 상태와 시민사회 상태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 그러나이 두 단계를 구성하는 많은 철학들이 여기서 모두 상될 수는 없다.
이 장의 중심 물음은 칸트가 그럼에도 과연 일관된 자연 개념에의거해 별 무리 없이 국가 이론의 기초를 제공했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칸트가 구별한 자연 개념의 二義性에서 시작하자.
1. 二義的 자연 개념
우리에게 알려진 도덕 형이상학은 사실 칸트 자신에 의해서는 두 권의 책으로 분리되어 같은 해에 출판되었다. 자연법 이론이 전개되는 것은 그 중 첫 권으로 나온 [법론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들](1797)이다.
그러나 자연 개념의 의미는 여기서 주목받지 않으며 오히려 독자에게 이미익숙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 법론에 따르면 자연법은 "제정되지 않은 법으로서 "모든 인간의 이성에 의해 선차적으로(a priori) 인식가능한 법"을 의미한다(MR, AB139-140). 이성의 "선차적 인식은 순수이성비판에 의하면 경험에 앞서 "단적으로 모든 경험으로부터 독립하여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인식을 의미한다(KrV, B2-3). 따라서 자연법은 자연 및 이 자연의 법에 대한 모든 경험이 철저히 배제된 채 오직 이성적으로만 인식되는 자연의 법이다. 물론 법 자체는 경험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 자체는 어떠한가? 그것은 경험의 직접적대상인가? 자연 사물들은 경험될 수 있지만 경험되는 자연 사물들의 본성(Natur)은 직접 경험되지 않는다. 여기서 자연 개념은 분화한다.
칸트는 이미 『순수이성비판을 보충하는 프롤레고메나 (1783)에서 자연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연은 "질료적 의미"와 "형식적 의미를 지닌다.
전자의 의미에서의 자연은 "직관에 따른" 자연으로서 "우리의 감성의 성질을 매개로 하여 경험적 감각 일반의 대상이 되는 현상들의 총괄이다. 반면에 "형식적 의미의 자연은 모든 현상들이 그 아래에 놓여 있는 규칙들의 총괄"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연은 "단지 우리 오성의 성질을 매개로 해서만 가능하다." 이때 우리의 오성의성질이란 "규칙들을 통해 사유하는 "우리의 사유의 고유한 방식"과 "이규칙들을 매개로 경험이" "가능하게 되는" 오성의 성질을 말한다(Prol, 77-78).
순수이성비판에 의하면 오성은 감성의 선차적 형식을 통해 수용된현상들의 다양이 순수 오성 개념들을 통해 하나의 통일 아래 정립되는"규칙들의 능력이다(KrV, A127).
판단력은 오성의 이 규칙들 중 하나로다양한 어떤 것을 포섭하고 (KrV, A132), 이를 통해 다양한 것으로 현상하는 자연 사물은 하나의 규칙 속에 있는 것으로 경험된다.
따라서 규칙은자연 사물의 직관된 "어떤 다양이 그에 따라" "일양적인 방식으로 정립될 수 있는 보편적 조건의 표상" 으로서 오성이 지닌 능력이다. 그리고 그 다양이 반드시 그런 방식으로 "그렇게 정립되어야만 한다면" 그 다양이 놓여 있는 규칙은 "법칙"이 된다(KrV, A113).
간단히 말해 자연 사물의 규칙 내지 법칙은 오성이 선험적으로 지난 능력으로서의 규칙 내지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사물은 경험 가능하지만, 자연 사물의 법칙은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물의 경험 가능성으로서 오성이 지닌 선험적 능력에 놓여 있는 것이다. [프롤레고메나]는 그래서 "경험 일반의 가능성은동시에 자연의 보편적 법칙이며 경험 일반의 원칙들은 자체가 자연의 법칙들"이라고 설명한다(Prol, 78).
자연의 이러한 의미 구분은 자연 개념의 어원적 이의성을 칸트 나름의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자연이라는 말은 동사원형그리스어 퓌에인 또는 라틴어 나스키(nasci)로부터 파생된 것 퓌지스Quots 또는 나투라(natura)으로서 ‘출생‘ ‘발생‘ ‘생성‘ 등을 의미했다.
생겨난 것은 단순한 현상으로서는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 그래서 무질서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생겨난 것은 언제나 그것의 본성에 따라서만 생겨나기에 그렇게 현상할 수 있다. 소에서 망아지가 태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뛰노는 망아지라 하더라도 그것의 말 본성에 따라서만 뛰논다. 이러한 의미의 자연은 그 본성 또는 본질에 따라 생겨난 것을 뜻한다 하겠다.
전자의 의미에서 자연이 칸트에게서 질료적 의미의 자연에상응한다면 후자의 의미에서 자연은 규칙이나 법칙, 본성, 본질 등의 형식적 의미를 지닌다. [자연학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들]에서 칸트는 자연의이 형식적 의미를 사물의 현존에 속하는 모든 것의 내적인 최초 원리"라고 정의한다.
칸트는 여기서 "우리 감관의 대상일 수 있는 한에서의 모든사물들의 총괄을 뜻하는 질료적 의미의 자연에 주목하기보다 바로 전자의 자연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MN, AIII-IV).
칸트의 관심사가 질료적으로 현상하는 자연 경험에 있지 않고 이 경험 일반의 원칙들이자 자연의 법칙들에 있는 한, 형식적 의미의 자연 개념은 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자연 형이상학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도덕 형이상학에서도 기초 개념이 된다.
"이제 가장 보편적 의미의 자연은 법칙들 아래 있는 사물들의 실존이다." 이 자연 사물들에는 비정신적 순수 자연물뿐만 아니라 정신적 존재자인 인간도 속한다.
그런데 인간의 감성적 본성은 "경험적으로 제약된 법칙들 아래" 실존하는 것이다. 그러한 한 인간은 비정신적 순수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에 외적인 자연법칙에 따라 실존한다. 실천이성비판(1788)은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의 이러한 "감성적 본성"을 그의 "이성에대해 타율" 이라 표현한다(KpV, A74). 타율은 자기활동의 원인을 자기 밖에 갖는 것이다. 순수 자연물에 적용해 말한다면 자기운동의 원인을 자기 밖에 갖는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법칙이라 한다면 순수 자연물이나 감성적 인간 모두 외적 법칙에 따라 실존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언뜻 보면 자명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칸트가 구분한 자연 개념의 분리성을 엿보게 해준다.
그에게서 자연의 형식적 의미는 질료적 자연 사물에 내재적이지 않다. 생겨난 것은 언제나 그것의 본성 내지 법칙에 따라 생겨난 것일 테지만 정말로 그러한지는 정확히 말해 경험 가능하지 않다. 다시 말해 본성이나 법칙이 생겨난 것에 내재적인지는 인식될 수 없다. 칸트는 다만 본성이나 법칙이 순수 오성의 선험적 능력으로서 이성에 내재적이라고 연역해 놓았을 뿐이다.
이로부터 복잡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현상하는 자연 사물에 외적인 자연법칙이 과연 이성에 내재적인 법칙과 일치하는가의 문제이다. 간단히 말해 자연과 이성의 통일이 문제가 된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가 맞닥뜨린 이 문제가 바로 판단력비판(1793)의 주제가 된다. 이 문제는 자연법칙으로서 "자연의 근저에 놓여 있는 초감성적인 것" 과 이성의 자유 개념이 실천적으로 포함하는 것과의 통일의 근거로 요약될 수 있다(KU, AXX).
지면상 여기서 상론할 수 없는 이 근거의 해명은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 가능성을 기초짓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감성적 본성뿐만 아니라 바로 이성적 본성 또한 지니고 있다. 물론 인간은 감성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간에 자유롭게 의지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감성적인 것을 의지하는 것은 이 감성적인 것을 지배하는 외적 법칙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성적인 것은그의 의지 밖에 있는 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정 자유로운 의지는 자신의 원인을 자기 안에 지닌다. 자유의지는 자신을 원인으로 하여 행위하려는 의지이다. 의지 자신이 원인이라면 이 원인으로 인해 착수된 감성적 행위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지와 그 행위 간에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성이 성립한다. 그리고 이러한 법칙은 의지하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정초될 수 있다. 오성은 "감성적 표상들을 규칙들 아래로 가져감"으로써 하나의 의식 속에 합일시키는 데에 소용되는 개념들만 산출하지만, 이성은 오성의 이 모든 개념들을 넘어서 "이념의 이름 아래에"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오성 개념들을 사용하여 "오직 이성", 자신 안에만 근거지어져 있는 법칙들을 형성할 수 있다(GMS, AB108).
그래서 이성적의지는 모든 행위에서 자기 자신에게 법칙이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1785)는 이성이 자신을 보편적인 것으로 의지하여 정초한 이 법칙을 바로 "도덕법칙"으로 설명한다. 도덕법칙은 자신을 보편적인 것으로 의지하는 이성의 자율적인 법칙이다.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법칙만 의지의 참다운 자유를 보장한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의 근본문제들 중 하나는 어떻게 감성적 인간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도덕법칙을 의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이성비판』이 내세에서의 "약속이나 위협" 으로 잘못 설명한 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KrV, B857F). 이른바 도덕법칙의 감성적 동기화 문제라 할 수 있을 이 난제는 실천이성비판』에서 간단히 "인간 이성에는 풀릴 수 없는 문제"로 결말지어지고 만다(KpV. A128).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칸트의 자연법 개념이 다음처럼 요약될 수 있다.
칸트에게 중요한 자연은 본성이나 법칙 등의 형식적 의미에서의 자연이며, 자연에 속하는 인간 또한 감성적 본성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이성적 본성으로서의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이성적 본성은목적 그 자체로서 실존한다"(GMS, AB66).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의 이성본성이 지니는 법칙을 바로 자신의 이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목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형식적 의미의 자연은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는 자신의 이성 본성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입법한 목적론적 자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 본성의 법칙이 바로 자연법이다.
물론 자연법(Naturrecht)은 자연법칙(Naturgesetz)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법은 적어도 자연 사물의 법칙처럼 인간의 이성적 본성(Natur)에 대해 선차적으로 인식 가능한 법을 의미한다.
[법론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들]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적 본성은 또한 모든 인간의 이성에 의해 인식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성적 본성에 대한 이성적 인간의 선차적 자기인식이 바로 칸트의 자연법이다. 이 자연법이 올바로 이해된다면 이에 따라 시민사회와 국가의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법론에서의 칸트의 기본 생각이다.
2. 자연 상태 내의 자연법: 사법(私法)
인간의 이성적 본성의 선차적 자기인식으로서의 자연법은 한마디로 "이성으로부터만 순수 선차적으로 기획되는‘ ‘이성법‘(Vernunftrecht)이라 할수 있다. 물론 칸트가 이 용어를 사용한 적은 없지만‘ 자연법이 순전한선차적 원리들에 의거하는 "(MR, AB44) 법으로서 인격들 간의 소통적 정의"(justitia commutativa) 뿐만 아니라 "분배적 정의"(iustitia distributiva)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정의는 이성의 "선차적 법칙들에 따라 인식되어야 한다(MR, AB139-140). 그리고 무엇보다 칸트에게 "법(Recht)은 자유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모두의 "자의가 함께 합일될 수 있는 조건들의 총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MR, AB33)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적 본성은 자유이다. 선차적으로 인식된 인간의 이성적 본성(Natur)의 법(Recht)이 자연법이며, 이 법은 자유의 보편적 법칙을 선차적 내용으로 지닌다.
자연법이라는 표현에서 순전히 이성적 본성이라는 형식적 의미에서만사용되는 자연 개념은 또한 칸트의 자연 상태 개념에서도 드러난다. 칸트에게 자연 상태는 예전의 자연법 이론가들에게서처럼 사회 상태에 대립된 것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는 오히려 "시민사회 상태가 대립되어"있는데, 왜냐하면 자연 상태에서도 "사회는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시민사회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는 시민사회를 공적 법률들에 의해 나의 것과 너의 것이 보장되는 사회로 보고 이것이 마련되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의 법을 "사법"(Privatrecht)으로 고찰한다.
결국 칸트의 자연법(Naturrecht)은 자연 상태 내 사법으로서의 자연적인 법das natürlicheRecht)과 시민사회 상태내"공법(das offentliche Recht)으로서의 시민적인 법(das biürgerliche Recht)으로 나누어지는 셈이다(MR, AB52).
이러한 구분에 따라 [법론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들]은 사법과 공법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로서의 자연법을 단계적으로 서술한다.
칸트가 규정한 자연 상태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먼저 자연 상태는 이미 언급했듯이 공법이 아직 제정되어 있지 않은 사회 상태이다. 이것은 자연 상태가 자연의 형식적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적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도출되는 규정이다. 인간의 이성적 본성은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수 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특징짓는다. 이렇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귀책능력이 있는 주체는, 칸트에 따르면 바로 "인격"(Person)이다.
자유로운 인격은 이성적으로 행위를 의지하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 인격의 행위는 외적인 것으로서 사물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하나의 사실로서 다른 인격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렇게 인격의 행위는 "사실들(Facta)로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인격은 다른 인격과의 "실천적 연관" 속에 있게 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격의 책임이 문제시되는 것은 바로 인격 상호간의 이 실천적 연관이다.
인격 상호간의 실천적 연관은 사회적 연관을 의미한다. 사회 속에서 자유로운 인격의 의지와 그 행위는 다른 인격의 의지 및 행위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공존은 자유로운 인격이 지닌 개별적 의지의 보편화와 이에 따른 행위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이 "자유의 보편적 법칙에 따른" 공존의 "조건들의 총괄"이 칸트에 따르면 바로 "법"이다. 이러한 법의 개념은 법의 "도덕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MR, AB32-33).
이러한 의미에서의 법은 "자유의 법칙들 아래에 있는 의지의 순수 실천적 이성 개넘"이며(MR, AB62), 이 개념은 칸트의 도덕 개념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 과 도덕의 차이점은 법이 자유의 법칙에 대한 외적 행위의 "합법칙성"(Gesetzmäßigkeit)에만 주목하는 반면에 도덕은 행위의 규정근거로서의 자유의 법칙을 문제시한다는 것에 있다. 합법칙성 내지 "적법성"(Legalität)에서는 "외적으로 사용된 자유"와 이에 따른 외적 행위의 자유법칙과 일치조건만 문제시되며 이것이 칸트의 법론의 주제이다.
반면에 의지의 자유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사용"될 때에 자신의 행위에대한 의지의 자발적 규정조건을 다루는 것이 바로 같은 해 분리되어 출판된 덕론의 형이상학적 시원근거들(1797)의 주제라 할 수 있다 (MR.AB6-7).
법은 사회 속에서 외적 행위들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인격들이 서로의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강제하는 권한이다. 법은 모두의 자유의 실현조건이기에 "동시에" 이 법을 침해한 자를 강제할 권한"이기도 하다(MR.AB35).
모두의 자유의 상호 실현조건은 모두의 자유 침해의 상호 강제조건이다. "법과 강제의 권한은 그래서 한 종류(einerlei)"이다(MR, AB37). 자유의 실현조건은 자유에 반하는 조건, 즉 강제이다.
칸트는 법과 강제의이러한 결합 명제를 법에 불가피한 "모순 명제"라고 본다. 자유의 어떤 개별적 사용이 "보편적 법칙에 따른 자유에 장애가 된다면 이러한 사용에 대립하는 "강제는 그 자유의 장애의 저지로서 보편적 법칙에 따른 자유와 합치한다"는 것이다(MR. AB35).
그러나 이러한 강제 개념은 법이 오직 자유로운 인격들의 외적 상호 관계로 이해될 때에만 도출 가능하다. 외적 상호 관계 속에서 법 내지 강제로서의 자유의 보편적 실현조건은 각자의자유의 개별적 실현조건과 개념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칸트에게서 분리된 채로만 머무른다.
이성적 능력을 지닌 자유로운 인격은 개념상 다른 인격과 관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관계할 수 있다. 자유로운 인격의 자기관계는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행위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신의 행위와 이 행위의 대상 간의 관계로 전개될 수도 있다. 어떻든 간에 자유로운 인격의 자기관계는 그의 외적 현존의 조건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자기관계 속의인격의 활동성이 없다면 인격은 자유롭게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자기관계 내 자유로운 인격의 현존 자체가 법의 일차적 개념으로 규정된다면굳이 처음부터 법 개념에 강제 개념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인격의 자기관계는 자신의 개별 의지를 보편화하는 이성적 자기관계가될 것이다. 이러한 이성적 자기관계는 칸트의 표현에 따른다면 자신의 개별 의지를 보편적인 것이 되도록 스스로 강제하는 "자기강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자기강제 덕론에서만 다루고(MT, A3), 법론에서는 외적 상호 관계 내 인격들에게 외적으로만 부과되는 또는 그들의 행위를 외적으로만 조건짓는 강제로서 법을 규정하고 있다.
칸트의 "법 개념은 그 때문에 언제나 단지 실천법칙을 통한 행위의 직접적 규정을 배제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그렇기에 또한 자연 상태 내 자연법은 아무리 사법으로 규정된다고 할지라도 사법의 온전한 의미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 자연 상태가 무엇보다 사회 상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법 또한 칸트에게는 인격들의 외적 관계 개념으로만 고찰된다.
사법(私法)은 자유로운 인격의 사적 관계의 법이다. 자유로운 인격은 다른 인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사적으로 관계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현존을 위해 외적인 사물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는 행위에서처럼 말이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외적인 사물을 내 것으로 가지고 소모해야 한다. 내가 나의 생존을 위해 외적 사물과 맺는 관계 속에 다른 인격이 개입하게 될 때 나의 이 외적 사물을 가짐은 비로소 인격들 간의 관계가 된다.
그러나 칸트는 전자의 의미에서 소유 개념을 도외시하고 소유(Besitz)를 오직 후자의 측면에서 사물의 배타적 "사용 가능성 일반의 주관적 조건"으로서만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나는 단지 사용 가능성의 관점에서 나의 소유물과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즉 만약 타인이 나의 소유물을 "나의 허가 없이 사용할 경우 그의 "사용은 나를 침해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나의 것"(das Rechtlich-Meine)은 이것의 사용이 배타적으로 나에게만 속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타인은 나의 것이지만 내가 지금 물리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물을 사용함으로써 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내가 나의 모든 소유물을 시야에 두고 살 수 없는 한 이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나의 소유물이란 그 사용 가능성이 나에게만 속하기에 타인이 이것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는 것인 동시에 내가 물리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않는 사이에 타인이 사용함으로써 내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 된다. 칸트에 따르면 "그래서 외적인 어떤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된다."
칸트가 말하는 소유의 모순은 외적 대상의 사용 가능성의 소유와 물리적 소유 간의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은 물론 소유 자체에 외적이다. 이 모순은 소유물의 물적 특성이나 소유 행위의 배타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내가 물리적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나의 소유물이 타인의 사용을 통해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소유의 모순을 피하기 위해 칸트는 소유를 "감성적" "물리적" "경험" 소유와 "순수 법적"bloBrechtlicher), "예지적"(intelligibler), "이성소유"(Vernunftbesitz)로 구별하고 이 후자의 측면에서 실제적 "점유 없는 소유" (Besitz ohne Inhabung)를 나의 소유물의 배타적 사용 가능성을 담지하는 것으로 고찰한다.
따라서 소유란 물리적 소유 행위를 전제할 필요 없이 내가 사용 가능한 모든 대상이 된다. 자유로운 이성의 예지적 이념에 따라 말한다면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외적 대상을 나의 것으로 가질 수 있다.
나의 외부의 모든 외적 대상은내가 사용할 수 있기에 객관적으로 가능한 나의 소유물이다. 이렇게 사용가능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외적 대상은 나의 "예지적 소유물이다. 사용하려는 "나의 의지의 모든 외적 대상을 나의 것으로 가지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나의 의지의 대상이 그 자체로 (an sich)" "주인 없는 것이된다"는 것은 "법에 반하는 것이다(rechtswidrig)"(MR, AB55-57). 소유의 자연법이 사용 가능한 모든 외적 대상에 대한 권리(Recht)를 의미하는 한그렇다.
그런데 모든 외적 대상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나와 마찬가지로그것의 사용을 의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객관적으로 가능한 타인의 소유물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내가 사용하려는 대상이 객관적으로 가능한 나의 것인지 아니면 너의 것인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전자인 경우에는 별문제 없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나의 그 대상 사용은 나의 불법이 될 것이다.
자연 상태 내 자연법은 그래서 사법의 가능한 대상과 이 대상의 법적 사용이 인격들 간의 소통관계에서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배분되어야하는가를 다룬다. 다시 말해 실천이성에 의해 인격들 상호간 보편적으로 허용되는 사법이 자연 상태 내 자연법의 주제이다.
소유(所有)란 가지고 있음 또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외적 대상의 감성적 · 직접적 소유가 무한정 가능할 수 없다고 해서 이 계기가 인격의 법적소유에 상관적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인격은 감성적 소유의 계기를 통해서만 객관적으로 현존한다. 인격의 객관적 존립을 조건짓는 한 감성적 소유는 그 자체가 인격의 법적 계기로서 고찰되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생존의 수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 바로 인격의 육체가 인격의 객관적 현존의 계기이다. 그러한 한에서 육체는 법적 능력을 지닌 인격과 하나이며, 그 자체가 결코 침해될 수 없는 인격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인격과 한 몸으로서의 이 감성적 소유의 도외시로 인해 칸트의 소유 개념은 주관적 인격 외부에 있는 사용 가능한 모든 대상으로확장된다.
이러한 소유 대상에는 그래서 "내 외부의 물건"뿐만 아니라 "이행"을 약속한 "타인의 의지와 나의 법적 인격에 의존적 관계 속에 있는 나의 아내, 자식, 하인까지도 포함된다 (MR, AB59-61), 나의 주관적 인격 밖에 있는 이 대상들은 제한적이든 무제한적이든 간에 모두 내가 사물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둘째와 셋째 종류의 소유 대상에서 오직 예지계의 구성원만 목적 자체로 취급하는 칸트 실천철학의 심각한 난점이 드러난다.
인격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생존권이 나중에 공법 부분에서 취약하게 근거지어지는 요인도 여기에 있다. 인격의 실재적 존립의 필수 요소라고 해도 감성적 소유 대상은 칸트에 따르면모두의 예지적 소유 대상으로서 아직 공법을 통해 소유권이 확정된 것이아니기에 인격에 기본적으로 속하는 것이 아니다. 즉 생존권은 소유권이 확정된 국법 차원에서만 보장된다. 빈민이나 고아의 보호제도는 주로 국가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생존능력이 없는 "구성원들을 유지할" 필요에 의해서 근거지어진다 (MR, A186-188/B216-218).
물론 칸트는 이것의 증명을 "추후에" 분석적인 방식으로 수행할것을 약속하고 있기는 하다(MR, AB72). 그러나 이 분석적 증명은 어느편집자의 주석대로 공법을 요청하는 것 외에 달리 수행되고 있지 않다
결국 칸트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는 모순인 감성적 소유의 가능성 근거가 예지적 소유에 있는 셈이며, 이 예지적 소유의 가능성은 보편타당한 법적 소유에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사법의 최종 근거는 공법에 있게 된다. 사법의 자연 상태에서는 순전히 법적으로 타당한 예지적 소유가 사유될 수 있을 뿐이며, 법적으로 보편타당한 예지적 소유는 공법의 시민사회 상태에서만 궁극적으로 마련될 수 있다.
칸트는 그래서 전자의 예지적 소유를 "임시적인 법적 소유"라고 부르면서 후자인 "확정적 소유"와 구분한다. 예지적으로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사용 가능한 모든 외적 대상이다.
이러한 대상은 지구상의 전체 토지와 그 위의 모든 사물들 및 타인의 의지까지 아우른다. 근원적으로는 모두의 공통 소유물인 토지가 어떻게 특정 인격의 확정적 소유물로 분배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확정적 소유물에 대한 계약을 통해 또는 용역계약을 통해 어떻게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의 의지마저 정당하게 소유할 수있는가 하는 것은 자연법의 소통적 정의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분배적 정의에 달린 문제이다.
이러한 정의를 실현하는 분배법칙은 모든 인격들의 근원적이고 선차적으로 합일된 의지로부터만 출현할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이렇게 합일된 의지의 상태가 바로 "시민적 상태"이다(MR. AB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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