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의 계약상 의무의 이행
계약으로 채무가 발생하면 그 채무는 곧바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계약에서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해야겠지만, 당사자는 이것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계약에 조건 · 기한을 달 수 있다.
조건을 다는 것은 계약의 효력발생 = 채무의 발생을 어떠한 사항의 존부에 걸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에 합격하면 자동차를 선물한다‘는 것은 대학합격을 조건으로 하는 증여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한을 다는 것은계약의 효력 혹은 계약에서 정해진 채무이행 시기를 시간의 경과에 길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년이 되면 자동차를 선물한다‘는 것은 내년의 1월 1일을 기한으로 하는 증여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123
두 가지 점을 더 보충해 두자. 첫째로, 끝까지 파고들어 생각하면 조건 ㆍ기한은 계약(법률행위)에 달려 있는 것인지 채권·채무에 달려 있는지 반드시 명확하지 않은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매매대금에 관해 그 지급시기가 정해져 있는 때, 기한 도래까지는 계약은 유효히 성립하고 있지만 시기가 도래하기까지는 대금채무의 효력이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할지도 모른다. 이것에 대해 2년 계약으로 아파트를 빌리는 경우 2년이 지나면 구체적인 채권ㆍ채무관계를 발생시키는 임대차계약자체가 소멸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둘째로, 조건과 기한을 서로 비교하면 조건의 경우는 실현 여부를 알지 못하는것에 대해, 기한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반드시 실현된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구체적인 계약에 들어가 따져보면, 어느 쪽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있다.
판례는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던 자들과 사업 진행에 필요한 운전자금을 출자하고사업상의 이익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의 공동사업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에게 운전자금을 지급한 자가 그 후 사업진행이 순조롭지 않자 공동사업관계에서 탈퇴하면서 스폰서가 영입되거나 사업권을 넘길 경우나 사업을 진행할 때에는 위 출자금을 반환받기로 한다는 청산약정을 체결하였던 사안에서, 위 부관에서 정해진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라도 위 투자금을 반환할 의무가 성립하지 않는정지조건이라기보다는 불확정기한이라고 보았다(2009다16643).
따라서 부관이 붙은법률행위에서 부관에 표시된 사실이 발생하지 아니하면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도 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한 경우에는 조건으로 보아야 하고, 표시된 사실이발생한 때에는 물론이고 반대로 발생하지 아니하는 것이 확정된 때에도 그 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한 경우에는 표시된 사실의 발생 여부가 확정되는 것을 불확정기한으로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2003다24215).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는 이 점에 대해서는 ‘출세 갚기‘ (출세하면 지급한다는 약속)는 조건인지 기한인지가 쟁점화된 판례가 저명하다(大川大 4.3.24. 民鋒21集).
이에 관한 판례를 살펴본다. P는 T가 하도급받은 부분에 대한 공사를 완공하여 준공필증을 제출하는 것을 정지조건으로 하여 공사대금채무를 부담하거나 위 채무를 보증하였다. 그러나 D는 위 공사에 필요한 시설을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사장에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나머지공사를 수행할 수 없게 하였다. 이러한 D의 행위는 고의에 의한 경우만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경우에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에 해당한다(98다42356).
일본 최고재판소 판례는 조건성취의 방해에 관해 그리고 조건성취의 촉진에 관해 조건을 가진 당사자를 보호했다. 또한 조건부권리도 다른권리와 마찬가지로, 처분·상속 등의 대상이 된다(149조). 다만 불법조건이 걸려있는 경우에는 그 효력이 부정될 뿐만 아니라 계약전체가 무효가 된다(151조). 더욱이 151조는 당사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규정이다(각각 기성조건, 불능조건, 수의조건이라고 불린다).
기한에는 시기와 종기가 있다. 그 기한이 도래하기까지 계약에서 정해진 이행청구가 가능한 것이 시기, 그 기한의 도래에 의해 계약의 효력이 잃게 되는 것이 종기이다(152조). 기한은 통상 채무자를 위한 것이지만(153조) 채무자는 기한에 의해 발생하는 이익(예를 들어 1월 1일까지는 자동차를 선물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을 기한의 이익이라고 한다)을 포기할 수 있다(1월 1일보다 전에 선물을 해버려도 된다.153조 2항). 역으로, 채무자에게 일정한 사정이 생기면 기한의 이익은 잃게 된다(1월 1일보다 전에도 선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38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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