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지각론의 형성

이이가 본격적으로 성혼과 함께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에
관한 논변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그는 사단칠정논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것의 
철학적 합의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이황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기대승에 가까운 
견해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이황에 맞서는 지각론적인 
입장을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지각론적 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혼과의 논변 이전에 그가 지녔던 
지각 개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유 익할 것이다.

첫 번째로 살펴볼 자료는《사생귀신책》인데,이것은
23세때그에게 장원급제의 영광을 안겨준 유명한 《천도책》과 비슷한 시기의 저작으로 추정된다. 책문은 대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왕과 고위관료들이 내린 질문에 답한 글이기 때문이다. 

사생귀신책은 죽은 후의귀신에 지각이 있다면 불교의 
윤회설이 타당성을 지니게 되고, 반대로 지각이 없다면 
유교의 제사는 무의미해진다는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질문한 것에 대해 대답한 글이다. 이 난제에 
대해 이이는 인간의 지각이란 정기 인간의 정신을 이루는 
맑은 기와 육체를 구성하는 비교적 한기로서의정(精)에 
의거해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의 상태 즉 정기가 
분리되어 흩어진 상태에서는 지각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각건대 사람의 지각은 정기에서 나옵니다.
눈과 귀가 총명한 것은 백(魄)의 신령함이며, 마음의 
기관이 생각하는 것은 흔의 신령함입니다. 
그 총명하고 생각하는 것은 기이며, 그 총명하고 생각할 수 있는 까닭은 리입니다. 리는 지각함이 없고 기는 지각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가 있은 후에야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이 있은 후에야 색깔을 볼 수가 있으며, 마음이 있은 
후에야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기가 한 번 흩어지고 나면 귀는 들을 수가없고 눈은 볼 수가 없으며 마음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니, 모르긴 하지만 어떤 것에 무슨 
지각이 있겠습니까?

위에서 말한 혼백이란 인간의 귀신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천지자연의 기 가운데서도 매우 정밀하고 신령한 것으로서 정기에 해당한다. 즉, 혼은 기와 같고 백은 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이는 인간의 지각 기능이정기백에 의거하되, 
특히 오감 등의 감각은 백의 신령한 작용이요 마음의 사려 
기능은 혼이 담당한다고 말한다. 이이는 감각지각과 사려의 작용을 하는 것은 기이고 그 감각하고 사려하는 까닭은 
리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지각 작용 자체는 기에 놓여 
있는 것이지 리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정기혼백의 기가 분리되는 
것을 말하고, 이미 정백과 기후가 분리된 상태에서는 
지각인지 기능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은 후의 정기에 지각 기능이 남아 있지 않다면, 천당의 복과 지옥의 고통도 알 수 없을 것이고 자연히 불교의 인과응보설과 윤회설도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 죽으면 그 정기가 천천히 흝어지기때문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제사지내면 조상의 혼백과 감동할 
수 있다는것이다. 죽으면 지각이 없기 때문에 불교의 
인과응보나 윤회설은 잘못된것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유교의 전통적 제사는 나름대로 이치가 있기 때문에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불교에 대한 비판, 그리고 혼백과 제사의 이치에 관한 이이의 설명은 주자서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깨우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대체적인 내용은 주희와 상통하며 이황과도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주목할 점은, "듣고 보고 생각하는 것은 기이며, 듣고 
보고 생각하는까닭은 리"라는 설명이다. 이 말은 지각을 
우주론적이고 존재론적인 리와기로써 설명하는 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이는 일찍이 「천도책」에서
"가만히 생각건대, 만 가지 변화의 근본은 하나의 음양일 
뿐입니다. 이기가 움직이면 양이 되고 고요하면 음이 되니,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은 기요, 움직이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리입니다" 라고 하여 우주론적
차원에서 운동 작용하는 것은 기요 그 원리나 이유가 되는 
것은 리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이는 《사생귀신책》에서 그러한 우주론적 이기 개념을 
인간에 그대로 적용하여 지각 작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각을 담당하고 수행하는 것은 기이며, 리는 그러한 
지각이 가능한 원리나 까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우주론존재론적인 이기 개념을 인간의 
영역으로까지 연장시켜서 지각작용을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할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각에 대한 이이의 설명방식은 우주론적인 리와 기를 
지각의 두 요소나 형식으로서 적용하고 있다는 특징을 
내보인다. 인간의 인지 기능에 대한 이러한 자연주의적인 
태도는 이후성혼과의 사칠변에서도 "리는 작위함이 없고 
기는 작위함이 있다"는주장과 더불어 "발현하는 것은 
기요, 발현하는 까닭은 리"라는 논리로 반복된다.

이이와 성혼 사이의 사단칠정 · 인심도심에 관한 논변은 
실상 위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인간의 지각을 동물적 인지 
기능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자연주의적 입장이 인식론과 
윤리학의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개진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주된 논쟁점은 인간의 지각 기능의 구조와 과정은
 어떻게 설명되고, 도덕적인 선악과 인심도심을 어떻게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였다. 

이황에 의하면, 인간의 지각 기능은 하나이지만 그 지각된 
내용에 있어 당위적인 것과 그렇지 않는 것과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사단과 친정, 도심과 인심의 대립을 
각각 리발과기발로써 구분해야 한다. 

성흔은 1572년 이이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 같은 상대적
 설명을 거론하면서 다음처럼 질문한다. "마음의 텅 비고 
신령함과 지각 작용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의 두
 이름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것은 혹 형기(감각기관을 포함한 육신)의 사사로움에서 생기거나혹 성명본성의 
명령의 바람에 근원하기도 하여, 리와 기의 발현이 같지 
않으며 위태롭고 은미한 작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름이 둘이지 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이이에 의하면, 호발설은 이와 달리 작동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이므로, 마음을 두 가지 근본으로 나누는 
것이 된다. 호발설을 따른다면 "리와 기가 두 사물이 되어 
어떤 것은 앞이 되고 어떤 것은 뒤가 되며, 상대하여 두 
갈래로 각자 발출해 나올 것"이므로 마음의 근본을 둘로 
나눈것이 된다. "주희도 말했듯이 "마음의 허령지각은 
하나"이기 때문에 작용하는 방식도 발동하는 것은 기이고 
발동하는 까닭은 리"에 의해 단일하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마음은 기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지각의 원리인 리에 의해 발동하여 사단칠정, 인심과 도심 같은 모든 작용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이는 호발설을 다음처럼 비판한다.

주자는 ‘마음의 텅 비어 신령하고 지각작용하는 것은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형은 어디로부터 이런 
이기호발설을 얻었습니까? 주자의 이른바
‘어떤 것은 성명에 근원하며 어떤 것은 형기에서 나온다‘는 말은 이미 발현한것을 보고 이론을 세운 것입니다. 
무릇 발현하는 것은 기요 발견하는 까닭은 리입니다. 
기가 아니면 발현할 수 없고리가 아니면 발현할 근거가 
없습니다(발지 이하 23자는 성인이 다시 나와도 
이 말을 바꾸지 못할것입니다). 선후도 없고 분리됨과 
합함도 없으니 호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인심과 도심은 어떤 것은 허기를 위하고 어떤 것은 
도의를 위하는데, 그 근원은 비록 하나이지만 그 유출된 
것이 이미 갈라진 것이니, 진실로 양변으로 분리하여 
설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퇴계는 이것(주자의말)으로 
인해 입론하여 말하길, ‘사단은 리가 발현하여 기가 그것을 따르고칠정은 기가 발현하여 리가 그것을 탄다‘고 하는데, 
이른바 ‘기가 발현하여리가 그것을 탄다‘는 것은 옳습니다. 다만 칠정만 그러할 뿐 아니라 사단 또한 기가 발현하여 
리가 타는 것입니다. 어째서인가 하면,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 후에야 이에 측은한 마음이 발현하는데, 
그것을 보고 측은해 하는 것은 기이니 이것이 이른바
 ‘기가 발동한다‘는 것입니다. 측은함의 근본은 仁이니 
이것이 이른바 ‘리가 그것을 탄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천지의 조화가 
氣化하되 理가 그것을 타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위의 설명에 따르면, 이이는 "마음의 허령지각은 하나"라는 것을 지각의 작동 방식이 하나라는 것으로 이해하며, 
그것을 곧 "기가 발하되 리가탄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즉, "사단은 리가 말하되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하되 리가 올라탄다"는 호발설은 지각 작용의 메커니즘을 두 가지로 설명한 것이 된다. 이는 잘못된 것이며, 지각은 
오로지 "기가 발동하되 리가 올라타는" 방식으로만 
작용한다는 것이 이이의 주장이다. 

이처럼 ‘기발이승일도설‘은 "발동하는 것은 기요 발동하는 
까닭은 理"라는 지각의 형식이나 요소만을 주안점으로 
삼아서 도출한 결론이다. 칠정과 마찬가지로 사단도
 이 같은 지각의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 후에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데, 그 장면을 시각적으로 감각하고 
측은함을 발동시키는 것은 기이지만 이때 측은함을 
발동하는 까닭으로서의 리(仁)가 그 안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외물의 감각으로서 ‘기발‘은 육체의 감각기관이 
외물의 감각자료sense data를 수용하고 이에 반응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기발‘에 지각의 원리principle of 
sense perception가 개입해 있음을 ‘리승‘이라고 칭한 
것이다. 그는 ‘기발이승‘이라는 지각의 작동 방식이 마음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천지만물 모두에 적용되는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이라고주장한다.

지각에 관한 이이의 주기론적 입장은 천지자연의 리와
기를 체와 용, 형이상과 형이하의 관계에 의거하여 
‘발하는 까닭(소이발자)‘ - 體-형이상과
‘발하는 것(발자)‘- 用 -형이하로 규정하고, 이를 인간의 
마음에도 그대로적용한 것으로서 천지자연과 인간을 
연속적으로 설명하려는 자연주의적입장을 나타낸다. 

이러한 입장은 대체로 "자연에 있어서의 이기를 먼저
관찰 체인함으로써 그 원리를 가지고 인간을 관통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지각은 
"기가 발하고 리가 올라타는(기발이승)" 하나의 과정과 
경로만을 가질 뿐이며, 사단과 칠정은 모두 이러한 과정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때 ‘기발‘은 감각기관이 외물의 감각 
자료를 받아들이고 이것에 심리ㆍ육체적psycho-physical 기가 반응함을 가리키되, ‘리승‘은 이와 같이 
반응하여 지각함에 그럴 수 있는 까닭이자 원리가 그것에 
내장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이의 
주기론적 지각론을 경험론적empirical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기론적 지각론의 일관성은 인심과 도심의 
상대성과 선악의 근거를 설명하는 데 그 관건이 놓여있다. 
이이는 인심이든 도심이든 마음의지각이 ‘기발이‘ 이라는 
하나의 방식에 의해 성립되지만, 발동된 감정에대해 의사 
작용이 도덕적 원리를 위하는 경우가 있고 일산의 몸의 
안일과 쾌락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사단칠정과 달리 인심도심은 상대시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성혼은 계속해서 인심과 도심의 지각 근원은 
리와 기로써 구분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성혼의 주장은 지각의 근원을 기준으로 할 때, 
사단칠정뿐만 아니라 인심도심도 리와 기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이의 궁극적인답변은 사단칠정처럼 
인심도심도 실제로는 마음의 지각 안에서 기원이
다른 것으로 구분되어 자각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작용을 결과론적으로 변별한 것일 뿐, 
지각 상에서 기원에 따라 선험적으로대립된 것으로서 
자각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이에 대한 이이 의해명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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