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원리에 대한 벤담의 정당화

윤리적 물음에 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만으로는충분하지 않다. 그 의견을 정당화하는 무엇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있는 무엇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 정당화의 형식은 윤리학자체의 본질에 관한 견해에 
의존한다. 

즉, ‘도덕 판단은 참 또는 거짓일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우리의 태도를 표현하는것인가‘에 대한 견해에 의존한다. 
윤리의 제1원리를 증명하는것은 어렵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데카르트처럼 다른 모든 윤리적 판단의 토대로서 
사용할 수 있는 자명한 제1원리를 찾아야 하는가? 
이것은 ‘토대주의 (foundationalism)‘ 라고 불리는 
방법이다. 아니면 우리는 존 롤스의 예를 따라서 ‘반성적 
평형(reflective equilibrium)‘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반성적 평형은 윤리적 원리가 우리의 도덕 판단과 얼마나 
잘 조화되느냐에 따라 윤리적 원리를 정당화함과 동시에 
판단과 신빙성 있는 원리의 정합성에 비추어서 판단 자체를 재고찰하는 방법이다.

벤담은 자신의 제1원리를 입증하는 간접적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도덕과 입법의 원리에 관한 서론》
에서 ‘공리의원리에 대한 직접적 증명이 가능한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을 증명하는 데 사용되는 것 그 
자체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명의 사슬은 어딘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벤담은 우리가 자신과 타인들을 판단할 때 자연적으로 공리에 호소하는경향을 가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혼란과 비일관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리의 원리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성향을 가지도록 만든다.벤담은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일련의 물음에 대해서 스스로 답해 보라고 요구한다. 이 물음들은 선택을 요구하는 물음이며, 각각의 선택은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 물음의 계열은 공리의 원리에 대한 대안들이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가도록
의도된 것이다. 

《공리주의》를 시작하면서 밀은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방법론의 종류에 관해서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직관주의 학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도덕원리를 수용해야 하는지를 자명한 
진리처럼 즉각적으로 알수 있는 ‘자연적 능력, 감각 또는 
본능‘이 있다고 믿는다. 이에 반대해서 밀 자신이 속하는 
귀납학파는 관찰과 실험에 의해 옳고 그름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학파 사이에서의 선택은 공리주의를 정당화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밀도 벤담과 마찬가지로 궁극적 목적은 증명 불가능하다고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궁극적 목적을 지지하는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리주의는행복이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왜 우리가 행복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가? 우리는 이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밀에 의하면, 목적에 관한 물음은 바람직한(desirable) 
것에 관한 물음이다. 행복이 바람직하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제시할수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밀의 대답은
 이렇다.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의 유일한 증거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출발이 아니다. 마약 중독자는 마약을 바란다.
그러나 이것이 마약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람직한‘은 보통 ‘바랄 수 있는(able to be desired)‘보다는 ‘바랄 만한 가치가 있는(worthy of being desired)‘을 
의미한다.

19세기의 위대한 공리주의자 세 사람 가운데 세 번째 
인물인헨리 시지웍은 밀이 사용한 귀납적 방법은 오류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경험은 기껏해야 우리에게 모든 
사람이 항상 쾌락을 궁극적 목적으로 추구한다고 말해 줄 
뿐이다. 경험은우리에게 쾌락을 궁극적 목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말해 줄수 없다.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무어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 )-대략적으로 말해서 사실로부터 가치를
도출하는 오류-에 반대하는 그의 매우 영향력 있는 
논증에서 ‘바라는 것‘으로부터 ‘선(좋은)‘을 도출한 밀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

밀은 『공리주의』의 뒷부분에서 정의에 관해 논의하면서, 
‘모든 사람은 하나로 계산되어야 하고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계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벤담의 말을 인용한다. 그 다음에 그는, 공리의 원리는 ‘어떤 사람의 행복이 어떤 종류에 
있어서 허용된 정도의 면에서 평등하다고 상정할 때, 
그 사람의 행복이다른 사람의 행복과 정확하게 똑같이 
계산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합리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하다‘고 덧붙인다. 

밀의 이러한 언급은 그가 자신의 책의 독자들이
공평성(impartiality)의 관념을 도덕의 본질로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가정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밀에게 있어서 [이기주의는 진정한 도덕 
이론이 아니다.] 이기주의는 공리주의와 도덕 이론의 
지위를 두고 다툴 경쟁자가 아니다. 

만약 이 해석이 옳다면, ‘A의 행복은 A에게 하나의 선이고, 
B의행복은 B에게 하나이 선이다. 등등‘과 ‘이 모든 것의 
합은 모두에게 하나의 선이다.‘ 사이에 간격이 없다고 
밀이 생각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리주의에 대한 밀의 정당화가 그렇게 널리 
논의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철학적 논증 안에 포함되어 있는 오류들을 발견하도록 가르치는 데 유용하다. 그 외견상의 오류가 진정한 오류인지는 밀의 
저작을연구하는 전문 학자들에게 맡겨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밀을 아무리 너그럽게 독해한다고 할지라도, 밀의 글쓰기는 정확하지 않고 그 의미가 불명료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위대한 19세기 공리주의자인 시지웍은 그의 
전임자인벤 담과 밀의 저작을 읽을 수 있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와 다른 비판자들이 벤담과 밀의 저작에서 발견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을 피할 수 있었다.

시지웍의 증명

시지웍은 그의 주저인《윤리학의 방법》을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목적은 공리주의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명하고 객관적으로 참인 도덕 판
단 또는 공리(axioms)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책의말미에서, 시지원이 공리주의가 매우 
합당한 이론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리주의의 경쟁 이론인 
이기주의를 제거하지는 못했다.

밀과는 달리, 시지윅은 궁극적인 윤리적 원리들은 이성의 
진리들(truths of reason)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자명하다는(self-evident)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자명하다는 것은 이 진리들이 다른 어떤 전제들로부터 추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가 
그것들이 분명하다고(obvious)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철학적 직관주의자(philosophical intuitionist)‘이다. 직관주의자들은 전형적으로 상식 도덕(commons-ense morality)은 자명한 도덕적 직관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시지윅은 그의 책의 많은 부분을 지혜, 자제, 
박애 (benevolence), 정의, 선한 신앙심, 진실성, 타산, 순수와 같은 덕들에 상응하는 도덕 규칙들을 면밀히 검토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직관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상식 도덕의 외견상의 자명성은 우리가 그것의 규칙을 특수한 경우에 적용하려고 할 때 사라진다고 결론짓는다.

예를 들어 상식 도덕은 우리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어떤 것이 문자 그대로 참이지만 듣는 사람을 오도할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경우에도 그것을 말해야 
하는가?

방금 문신을 하고 온 친구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진실을 말해야만 하는가? 당신이 
믿지않는 말을 하도록 요구받는 종교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가족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른 것인가? 어린아이에게 누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오는지에 관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허용가능한가? 또는 아이들에게 방금 진단받은 질병의 치료 가능성에 관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허용 가능한가?

상식 도덕은우리가 절대로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 도덕의 규칙들이 예외를 
포함하도록 그 규칙들을 개선하려고 하는 순간, 그 규칙들의 명료함(clarity)과 외견상의 자명성은 사라지고 만다.
 ‘ㆍ할 때를 제외하고 진실을 말하라‘는 그 예외가 
그 자체로 명료하고 자명한 것이 아닌한 자명한 도덕적 
진리일 수 없다.

이것은 시지원이 실시한 상식 도덕에 대한 폭넓은 분석에서가져온 단지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상식 도덕에 대한 
분석의 요점은, 제한 조건과 예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상식 도덕의규칙들은 자명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심층적인 
설명을 필요로한다는 것이다. 그 심층적인 설명은 그 
규칙들이 우리의 행위를 더 큰 선으로 안내하는 수단이라는 
[공리주의적] 설명이다.

물론 그 규칙들은 완전한 지침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많은 종류의 왜곡에, 예컨대 자기이익, 미신, 무지에서 비롯되는 왜곡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선을 산출하는 것을 행하라는 공리주의적 원리는 
다른 어떤 도덕 이론도 가지지 못한 설명력을 지니고 있다.

공리주의가 우리의 상식 도덕을 설명할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을 체계화할 수 있다는 시지워의 생각은 우리가 이 장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는 롤스의 반성적 평형 이론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롤스의 모델에서 참인 도덕 이론은 우리의 공통의도덕 판단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다. 

시지웍은 윤리학에서 진리가 우리의 공통의 도덕 판단에 
의해서 구성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상식 
도덕의 규칙보다 더 고차적이고 더 추상적인 수준에서 
진정으로 자명한 도덕원리를 찾는다. 그는 자명한 명제가 
충족시켜야 하는 네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명제의 용어는 분명하고 정확해야만 한다.

명제의 자명성은 신중한 반성에 의해서 확인되어야만 한다.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제들은 상호 일관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똑같이 유능한 다른 판단자들이 내가 주장하는 어떤 명제가 진리임을 부인하는 정도만큼 그 명제가 진리라고 믿는
나의 믿음도 감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판단자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나는 적어도 잠정적으로 ‘중립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보편적 또는 일반적 합의].

시지웍은 이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세 가지 원리를 발견했다.

• 정의는 우리에게 같은 경우를 똑같이 대우하라고 요구한다.
또는 시지윅의 표현대로 .…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암묵적으로 동일한 상황에 있는 모든 동일한 사람들이 그 행동을하는 
것도 옳다고 판단해야 한다.‘

• 타산은 우리가 ‘자신의 의식적 삶의 모든 부분들에 대해서공평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을 평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래를 
할인할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 그 자체는 현재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박애는 타산과 마찬가지로 부분의 선이 아니라 전체의 
선을고려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문제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선이 아니라 보편적 선이다. 그러므로 시지윅은 
말하기를 박애의 원리는 우리에게 ‘공평하게 보았을 때 
다른 사람의 선이 자신의 선보다 더 적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아닌 한, 또는다른 사람의 선이 그에 의해 확실히 
알거나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아닌 한, 
다른 개인의 선을 자신의 선과 똑같이‘ 대우하라고 요구한다.

시지웍에게 있어서 이 박애의 원리는 공리주의를 위한 
토대이다. 그는 이 박애의 원리를 바탕으로 쾌락주의적 
공리주의로나아간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지윅은 쾌락 
또는 행복만이 본래적으로 선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논증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정당화는 그것의 토대가 굳건할 때에만 
강력한정당화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토대가 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시지웍의 조건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방금 언급한 세 가지 원리와는 비일관적이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다른 공리들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지원 자신도 이기주의 역시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주장위에 기초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즉, ‘어떤 한 사람과 다른 사람 간의 
차이는 실재적이고 근본적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개인들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의미에서 하나의 개인으로서 나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진다.‘

시지웍은 이 주장이 자신의 박애의 원리와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 그래서 실천이성이 두 가지 다른 방향을 
가리키도록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지윅은 그가 ‘실천이성의 이원론(dualism of practical 
reason)‘이라고 부르는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도덕에 합리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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