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아들 예수의 죽음 속에서 최고의 유한성에 참여하며, 이 유한성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예수의 죽음 속에서 하나로 결합된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동일성 하나님이 인간적인 것, 유한한 것 안에서 자기 자신 가운데 있고, 이 유한한 것이 죽음 자체 속에서 하나님의 규정이 된다 (166).
루터교회의 찬송가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이 죽었다." 이것은 인간적인 것, 유한한 것, 천한 것, 약한 것, 부정적인 것이 신적인 계기(Moment) 자체"로서 "하나님 바깥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1966d,172).
하나님 자신이 죽음의 한계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죽어가는 유한한 것과 자기를 일치시키는 바로 여기에 깊은 사랑이 있다. 이런 점에서 "가장 높은 유한성은 시간적인 것 속에 있는 현실의 삶이 아니라 죽음, 죽음의 고통이다. 그것은 최고의 부정・・・ 그의 가장 높은 극단 속에 있는 유한성이다.... 하나님이 죽었다. 하나님 자신이 죽었다‘는 신적 관념의 가장 높은외화는 둘로 나누어짐(Entzweiung)의 가장 깊은 심연을 보여주는 두렵고 무서운 표상이다" (157-158). 그의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신적 본성"이 가장 깊이 계시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 죽음은 가장 깊은 사랑이기도 하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이 동일성이 바로 사랑이다. 의식의 이 유한화(Verendlichung)가 그의 극단에 이르기까지, 곧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다.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은 자기의 인격성, 소유등의 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 절대적 사랑 자체의직관이다." 성서는 이 사랑을 가리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희생되었다고 표현하며, 희생제물로서 그의 죽음은 절대적 보상(Genugtuung)의 행위로 표상된다"(166).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표상을 반대한다. 각자는 자기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뿐이며, 어떤 다른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세속의 형식적·법적 관점이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영안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죽음은 "최고의 유한화로서 자연적 유한성, 직접적 현존의 지양이고, 외화의 지양이며, 제한(Schranke)의 해체이고, 자기를 자기 안에서 파악하는 정신의 계기다" (157-158).
"죽음은 사랑 자체다. 절대적 사랑이 여기에 나타난다"(166).죽음은 하나님의 자기 외화의 가장 깊은심연이다.
이와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높은 사랑‘이다. 그것은 죽음의 고통을 당하기까지 자기를 유한한 존재로 외화하며 자기를 유한한것과 결합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깊은 직관(바라봄, Anschauung)"이다(1966d, 158).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 당해야 할 치욕과 고통과 죽음이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에게 속한 영광과 생명이 인간의 것이 된다. 하나님의 것과 인간의 것의 교환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의한계 상황인 죽음, 세계사의 "해골 골짜기"가 하나님 자신의 것이 된다.
이로써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죽음은 화해하는 것(das Versöhnende)이다. 죽음은 사랑 자체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 세계와 화해했고, 자기를 영원히 자기 자신과 화해했다"(1966d,166).
헤겔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본성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죽음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을 유한한 존재로 외화하며, 유한한 존재와 하나가 된다.
그는 유한한 존재의 모든 부정적인 것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다. 곧 유한한 존재의 유한성과 제한성과 천함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다.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 객체와 주체, 하나님과 세계의 변증법적 통일성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성육신, 곧 "인간의 형태 안에 있는 하나님"은 이를 나타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한한 것, 제한된 것 속에 머물 수 없다. 그는 유한한 것의 부정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헤겔은이 하나님의 활동을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 인지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정적인 것, 곧 "자연적 유한성과 직접적 현존의 지양, 외화의 지양, 차단기(Schranke)의 폐기"다(19664 159).
한마디로 그것은 "이 부정적인 것의 부정적인 것"이요, 이것이 곧 정신이다(163).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일어난부정의 극복, 곧 "부정의 부정은 신적 본성의 계기다"(166). 여기서 우리는 헤겔이 정-반-합을 말하지 않고, 부정적인 것의 부정을 말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기 이전에 "한 사람의 감성적 개체" (ein sinnliches Individuum)였다. 그는 유한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통해 감성적 개체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넘어간다. 죽음은 "영광, 영화롭게 됨으로 넘어감"이다(171).
"인간적인 것이 벗어지고, 신적인 영광이 다시 나타난다 죽음은 인간적인것, 부정적인 것을 벗어버럼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죽음 자체는 부정적인 것이다. 자연적 현존으로서 인간이 내맡겨져 있는 것의 가장 높은 점점이다"(1966d 172).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죽었다.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사람을 위한 이 화해가 계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에 있었던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신적 역사다."
세계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과 세계의 화해가 하나님 자신의 활동을통해 실현되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 자신인 삶(Leben)이다" (174). "하나님은 자기 자신 속에서의 이 활동이다" (166). 헤겔은 세계사를 구성하는 하나님의 이 활동의 정점을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 인지한다.
우리는 앞에서 고찰한 헤겔의 통찰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깊은 영성을 볼 수 있다. 필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헤겔의 사색보다 더 깊은 사색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철학자들은 필자의 생각을 너무 주관적인 신학적 해석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의 내용은필자의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약간의 연결 부분을 제외하고, 헤겔 자신의 문장을 결합시킨 것이다.물론 헤겔이 튀빙겐슈티프트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철학에 심취했음은 사실이다.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외에 고대 그리스 철학 칸트와 스피노자의 철학, 루소의 사회사상을 깊이 연구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학이 헤겔의 주 전공 과목이었다. 원했든지 원하지 않있든지 간에, 그는 신학과 성서를 공부했다. 그의 문헌 곳곳에서 적절하게인용된 성서 구절, 신학적 내용들에 대한 언급은 성서와 신학에 대한 그의깊은 지식을 보여준다. 그는 튀빙겐슈티프트에서 경직된 신학 이론과 형식화된 교리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늙은이 "der Alte) 혹은 "두더지"라는 별멍을 얻을 정도로 기독교의 핵심 진리에 대해 깊이 사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신현상학》 서론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헤겔의 말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그의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죽음은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다. 죽은것을 붙들고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힘을 요구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황폐시킴으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보존하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견디고 그속에서 자기를 지키는 삶이 정신의 삶이다. 정신은 절대적 갈가리 찢어짐 속에서 오직 자기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자기의 진리를 획득한다. 정신은 부정적인 것에서 눈을 돌려버리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것을 직시하며, 그가운데 머물러 있음으로써 자기의 힘을 나타낸다. 이 머물러 있음은 그것을 존재로 전환시킬 수 있는 마술적 힘(Zauberkraft)이다" (1952,29-30).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깊은 사색과 명성이 헤겔의 철학 밑바닥에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철학은 하나님의 성육신, 참 인간(vere homo)인 동시에 참 하나님 (vere Deus), 곧 "하나님-인간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 속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등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기초한 기독교 종교철학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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