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법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법적 안정성 
(certainty)이다. 사실은 모든 법 제도가 법적 안정성을 
중시한다. 그런데 대륙법에서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해서, 
법적 안정성을 법 제도의 목적 자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륙법계 법률가들도 때로는 법적안정성을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대륙법계 국가에서 무엇이든 변화를 주려할 
때 가장 흔하게 부딪히는 반론에서 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법적 안정성이다. 이 법적안정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개혁입법이 좌절되는 사례가 무수히많다. 

대륙법계 국가에서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법관에 대한 
불신이 손꼽힌다.

대륙법 국가에서는 법관이 법을 제정하면 법적 안정성이 
침해된다고 생각한다. 대륙법 국가의 법적 안정성에 따르면 법률은 명확하고, 완전하며 흠이 없어야 한다. 또한 법률의 해석과 적용 역시 단순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 입법자는 기본권을 보장하는 명확한 입법을 해야 하고, 정부는 법에서 부여한 것이상의 재량권을 행사하면 안 되며, 판사는 해석을 통해 새로운 법을 만들면 안 된다.

법적 안정성은 영미법에서도 역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하지만 대륙법과 비교해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영미에서는 대륙법 국가들과는 다르게 법적 안정성을 강조할 때 그걸 원칙이나 도그마로 강조하지 않는다. 실용적인 의미로쓴다. 영미에서 말하는 법적 안정성은 사람들이 가급적이면 자신의권리나 의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결과가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예측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한다. 
법적 안정성이무조건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둘째, 대륙법은 관례를 법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데 반해, 영미법은 종전의 판례를 법으로 인정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보장한다. 즉, 영미에서는 오랜 시간 쌓인 
판례가 구체적 사건에서법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쌓인 
판례는 법률과 함께 사람들에게 법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이런 판례를 따름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확보된다. 
제정법만 있는 것보다는 법에 오랜 세월 쌓인 판례가 
추가되어야 법적 안정성이 강화된다고 본다. 
판례가 쌓이면 법을 바꾼다고 바로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대륙법에서는 앞에서 본 것처럼 판례가 법이 되는 
순간 법적 안정성이 침해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영미법 국가 특히 미국은 법적 안정성을 경우에 따라 다른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다 보면 법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법이 견고하면 사정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고 구체적 
사건에서 유연성을발휘하기 힘들다. 이처럼 영미법에서 
법적 안정성은 유연성과 길항하면서 서로에 대한 견제 
기능을 발휘한다. 반면에 대륙법에서는 안정성이 훨씬 더 
위에 있다. 유연성은 법적 안정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법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견고한 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이런 관점 차이는 형평법원에 대한 시각 차이로 연결된다. 
형평(equity)의 원칙이란 구체적 사건에서 법 적용으로 
인한 가혹함을 누그러뜨리고, 개별 사건에 고유한 사정을 
감안해서 재산 분배나유무죄 판단 등에 변화를 주는 원칙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분쟁을해결하는 데 있어서 법원이 
행사할 수 있는 재량권이 바로 형평권이다. 보통 법률은 
전형적인 분쟁 해결을 목적으로 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실관계를 포섭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비슷한 사건이라도 같은 법을 적용하면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때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에게 형평의 원칙에 따라 결정할 여지를 주면, 
형평법원은 구체적 타당성을 이념으로 하여 개별 사건에 
법 적용을 달리할 수 있다.

대륙법 전통에서 보면 판사에게 재량권을 주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론상으로 대륙법에는 형평권이 없다. 혹시라도 개별 사건의 처리와 관련해서 판사에게 
재량권을 주려면 그점이 법률에 명시되어야 하고, 그 범위 
역시 법으로 정해야 한다.
과거에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토론이 있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압도적인 다수 견해는 법적 안정성의 관점에서 판사에게 형평권을 주는 것에 신중하자는 입장이다.

이처럼 대륙법에서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유연성을 
희생하는 데반해, 영미법에서는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런차이가 나는 이유는 앞서 본 
것처럼 각 법이 판사의 재량권을 다른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수백 년 
동안 영국에 존속했던 형평법원의 역사 때문이다.

노르만족은 헤이스팅스 전투(1066)에서 이기고 영국을 
점령한 다음 재빠르게 사법제도를 포함한 국정 전반의 
중앙집권화에 착수했다. 국왕법원을 만들고 국왕판사를 
두면서 봉건법원과 봉건제도를 대체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국왕법원 판사들은 새로운 절차, 새로운 권리구제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모든 영국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완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보통법(common law)이다.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도 처음에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법이었다. 구체적 사건에 꼭 맞는 
해답을 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저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규칙 모음집처럼 변하고 유연성을 
잃어갔다. 영국의 보통법(commonlaw)도 어느 순간부터는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답밖에 주지 못하는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보통법(common law)이 제시하는 해법에 만족하지 못한 국민들이 왕에게 직접 가서 사안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행정부의 수반에게 
인정되는 사면권과 감형권처럼, 영국 왕은 국민들의 청원이 있는 경우 사법부의 결정과 다른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왕 자신이 직접 청원을 받아서 사건을 처리하다가 나중에는 국왕의 최고 고문인 대법관(chancellor)에게 
그 일을 위임했다.
‘왕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대법관은 법보다는 형평이나 
공평의 이념에 따라 사건을 해결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권한이 남용되거나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도 있었고, 
실제로 이를 문제 삼는 의견도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영국에서 정의는 대법관의 발 사이즈에 따라 달라진다"
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하지만 법에서 제시하는 것과 
다른 내용의 권리구제를 요구하는 사건이 많아지면서 
별도의 법원이 필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졌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일반법원과는 다른 법원이 제도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절차법과실체법, 서류 양식 등이 개발되었다. 이렇게 형평법원이라는 제2의 법원이 생기고, 형평법이 
완성되었다. 이말은 대법관이 형평법원에서 법 원칙이 
아니라 형평의 원칙에 따라 사건을 본다는 뜻이다.

이처럼 영국에는 수백 년 동안 두 법원이 존재해왔다.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을 적용하는 일반법원과 
형평법을 적용하는 형평법원이 있었다. 형평법원은 보통법원이 제시한 해결책이 너무 가혹할 경우 개입해서 사안에 
적합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다가 두 법원이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사건을 보는 두시각이 
하나의 법원으로 귀일했다. 즉, 지금 우리가 아는 영국의 
법원은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을 같이 
적용하는 법원인 것이다.

만약에 영국 역사에서 형평법원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영국 법원이 대륙법계 국가의 법원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비교법 학자들은 생각한다. 
대륙법계 법원은 로마 이래로 형평법원처럼 법 적용을 
느슨하게 하거나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생각을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형평법원 덕에 법이 한발 물러서는 경우를
서구 세계가 비로소 처음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형평법원 덕에 두 가지 새로운 제도가 
창안되었는데, 그게 바로 법관의 재량권과 징벌권(civil contempt power)이다.

재량권과 관련해서, 영미법계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형평의 원칙에 따라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즉, 사실관계별로 해법을 달리할수 있고, 구체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원칙에서 물러설 수 있으며,
사회 변화에 맞추어 법을 해석하거나 재해석할 수 있다. 
영미법계 판사들은 이런 재량권이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적 안정성은 
선례구속의 원칙으로 해결하고, 구체적사건에서 선례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선례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지는 판사가 고민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입법권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판사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면서, 한편으로 재량권 행사를 통해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미법계의 판사는 입법자가 제공한 상자안에 사건을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는다. 
실정법을 적용하는 경우에도 그 실정법이 사례에 맞지 
않다면 법 자체를 사례에 맞게 비틀 수 있는 권한이 
판사에게 있다. 상자가 안 맞으면 상자를 고치지 내용물을 
고치지 않는다. 특히 그 상자가 실정법이 아니라 판례일 
경우에는 고치는 일이 훨씬 더 쉽다. 반면 대륙법에서는 
이런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입법자가 준 상자에 사안이 
맞지 않으면 사안을 상자에 맞게 고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형식적으로는 국회가 법률조항을 통해 판사를 제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법률조항이 너무 넓어서 판사가 
이 법률조항에 꽉 묶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신의성실의 원칙‘은 판사가 해석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실제로는 구체적 사건에서 
판사가 무엇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정하면 된다.
이제 재판에 나가게 될 변호사 입장에서는 법이 무엇인지를 알기위해서 판례를 들춰야 한다. 거기에 판사가 생각해서 
정한 내용이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례 말고 법률조항 
자체를 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법률조항에 쓰인 
글자라고 해봐야 ‘신의성실 밖에 없다. 실제로 입법자는 
관사에게 판결에 적용할 법률을 제공한것이 아니다. 
판사 스스로 법을 만들도록 위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같은 ‘일반 조항을 통해서 판사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을 주는 방식은 대륙법계 국가에 익히 알려져 있다. 

재량권에 이어 형평법원이 영미법계 법원에 미친 
두 번째 영향은 징벌권의 확립에 있다. 징벌권이란 법원의 
작위명령과 부작위명령을 어기는 자를 처벌하는 권한이다. 기본적으로 법원은 어떤 일을하라고 명할 수도 있고,
하지 말라고 명할 수도 있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처벌할 
권한도 있다. 영미법에서 이런 징벌권은 다양한 형태로 
실행된다. 

공항 근처에 살면서 너무 낮게 비행하는 비행기 때문에 
소음 피해를 받는 사람은 법원에 제소해서 비행기가 
어느 고도 이하로 비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판결을 얻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판결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은 비행기 
회사에 벌을 내린다. 토지 소유권을 넘기기로 해놓고 
이행하지 않는 피고에 대해서는 법원이 이행명령을 발하고 이를 어기면 징벌권을 행사한다. 사업장에서불법적으로 
피켓 시위를 하는 경우 중지 명령을 내리고 명령대로
따르지 않으면 노동조합에 벌을 내린다. 이는 전부 징벌권의 효과다. 영미법계 법원은 사인간의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단을 가진 셈이다.

법원이 개인에게 어떤 행위를 하라고 혹은 하지 말라고 명한다음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징역을 보내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대륙법 전통에 어긋난다.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법원이 그 정도로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 데 대한 반감이 크다. 벌금이나 징역은 기본적으로 형사벌이지 
민사벌이 아니다. 법원의 명을어긴다고 해서 벌금이나 
징역을 부과하려면 적어도 법률에 적혀 있어야 한다. 
민사에서는 그런 징계를 할 수 없다.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판사가 굳이 그런 징벌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대륙법에서 개인은 기본적으로 재산을 가지고 책임을 진다. 법률이 미리 정한 바에 
따라 금전 배상을 명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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