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지기권의 취득시효에 관한 관습법 인정 여부
A종중은 1985. 6. 14. X토지에 관하여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원고는 X토지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A종중을 상대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말소하라는 소를제기하여 승소하였다. 그 후 원고는 2009. 10.20.X토지에 관하여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X토지에는 A종중 시조의 분묘를 비롯하여 분묘 6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A종중원인 피고들은 위 분묘들과 분묘기지를 점유하고 있었다. 원고는 피고들에게 위 분묘들을 파서 옮기고,비석 등을철거하며 분묘가 설치된 토지 부분을 인도하라는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들은 분묘지기권을 시효취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심법원은 분묘 6기 중 5기에 대해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하고 나머지1기에 대해서만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원심법원도 1심법원의 판결을 유지하였다. 원고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에 관한 관습법은 더 이상 우리 법질서에부합하지 않아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의 취득시효에 관한 관습법이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 원심법원의 판단을 지지하였다.
과연 관습이 존재하는지, 그 관습에 대한 공동체의 법적 확신이 존재하는지를 객관적으로 가려낼 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설령 그러한 수단이 있더라도 법원은 그객관적 존재를 실증하기보다는 법관 개개인이 내린 규범적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경향성을 가진다. 또한 조선고등법원이 관습법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주로 하있다면 대법원은 관습법을 폐지하는 역할을 주로 하여 왔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은 단순히 관습법의 요건 충족 여부만을 검토하기보다는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는지를 새로운 잣대로 활용하여 더 욱 적극적으로 관습법의 생사를 결정하여 왔다.
그런데 어떤 관습법이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체 법질서는 이상적이고 멋진 개념이지만, 개별 성문법 조항과는 달리 고도로 관념적이어서 전체 법질서를 규정하는 주체의 가치관에 쉽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습법의 존폐 문제는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관점의 문제에 가깝다. 옳고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판단의 문제에 가깝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에 표출된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입장은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평가하기 어려운 대법관 개개인의 근본적 가치관이 각각 투영된 결과물이다.
관습법은 얼마나 실증적이어야 하고 얼마나 규범적이어야 하는가? 법원은 관습법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어느 정도의 지분(分)을 가지는가? 특히 입법부가 관습법에 관련된 입법을 한 경우 사법부와 입법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관습법의 폐지는 얼마나 과감하게, 또는 얼마나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대상판결은 일반적인 법이론 차원에서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점들을 던져 주는판결이다.
강제이행청구와 이행불능
원고(경상남도 의령군)는 장학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법인인 피고와 사이에 의령교육관광시설 구축사업 시행을 위하여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다. 위 업무협악에 따르면 원고는 위 사업을 위한 부지의 용도변경 등에 협조하고, 피고는 사업부지를 매입 · 확보하며, 피고는 위 사업이 완료된 때에 조성된 시설 및 건축물을원고에게 무상으로 기부채납하기로 되어 있었다. 위 사업부지는 W토지, X토지, Y토지, Z토지 4필지였는데, 협약 당시 토지와 X토지는 피고의 이사인 A의 소유었다. A는 협약 체결 이후 Y토지와 Z토지에 관해서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한편 경상남도지사는 위 사업 부지를 농림지역에서 계획관리지역으로 변경하는 의령군 관리계획을 결정·고시하였다. 이후 A는 자기 소유인 위 사업부지 지상에문화 및 집회시설의 건축허가를 받고, 건물을 신축한 뒤, 건물에 관하여도 자신 앞으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원고는 위 기부채납약정에 따라 피고를 상대로 사업부지와 건물에 관하여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1심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피고는 이에 항소하였다. 원심법원은 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원심법원은 피고의 원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 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첫째, A는 사업부지와 U건물을 피고에게 매각하거나 기부한 의사가 없음이 분명하고, 달리A에게 매각이나 기부를 강제할 수단도 없다. 둘째, 피고가 A로부터 사업부지와 U건물을 양수하여 이를 다시 원고에게 기부채납하는 것은 기본재산의 처분으로서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피고의 주무관청인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위와 같은 채납행위가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과 같은 법 시행령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대법원은 피고의 원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 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채무의 이행불능이란 채무가 단순히 절대적 · 물리적으로 불능인 경우가 아니라, 사회생활의 경험법칙 또는 거래상의 관념에 비추어 채권자가 채무자의 이행실현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이와 같이 어떤 채무가 사회통념상 이행불능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이행의 실현을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 사정이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계약은 어디까지나 그 내용대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채권자가 굳이 채무의 본래 내용대로의 이행을 구하는 경우에는 쉽사리 그채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민법은 타인의 권리의 매매를 인정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타인의 권리의 증여도 가능하다. 이때 채무자는 그 권리를 취득하여 채권자에게 이전하여야 하고, 이와 같은 사정은 증여계약 당시부터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여의 대상인 권리가 타인에게 귀속되어 있다는이유만으로 증여의무가 불능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요컨대 이 사건에서 A가사업부지와 건물을 피고에게 매각하거나 기부할 의사가 없다고 하여 피고의 원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사회통념상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피고로서는 A를 상대로 소유권이전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어야 하는데, 피고가 그러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주무관청의 회신 내용은 단지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하여, 피고가 A로부터 사업부지와 건물을 양수하여 원고에게 기부채납하는 것이 공익법인법 및 같은 법 시행령의 규정에 비추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타인 물건의 매매가 일시적 불능인지 종국적 불능인지도 규범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매도인이 타인 물건을 취득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물건이 현재 타인의소유라고 하여 매도인의 채무가 이행불능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이는 이중매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매도인이 타인에게 이미 소유권을 이전하여 준 경우에는 그 소유권을 회복하여 채무를 이행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규범적으로 판단할 것이 요구된다. 대법원은 부동산 이중매매 사안에서 등기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에는 이행불능이라고 보면서도 처 또는 아들이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었거나, 아들이 경락받아 소유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기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이행불능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즉 대법원은 현재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자가 채무자와 가 족관계 등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그 소유권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쉽게 이행불능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상판결도 A가 피고의 설립자의 장남이자 피고의 이사였고, 심지어 Y토지와 Z토지를 취득하고 건축신고를 할 당시에는 피고의 대표권 있는 이사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피고와 A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고려하면 피고가 A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아 채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론적으로 전보배상은 채무이행에 갈음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채무이행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전보배상이 채무이행의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관계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원고가 지방자치단체이고 교육관광시설 구축 사업을 위해 부지가 필요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도 본래의 채무이행이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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