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만이 취미에 속하는 것이다. 숭고한 것도 미감적 
판정에 속하기는 하지만 취미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숭고한 것의 표상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고 
아름다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그 표상은 거칠고 야만적이며 취미에 역행하는 것이다. 

재능(천부적 자질)은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의 
자연적 경향성에 의존하는 인식능력의 탁월함이라고 
이해된다. 생산적 기지(엄밀하게 혹은 실질적으로 말하는 
재주), 총명함 그리고 사고의 독창적(천재)이 그런 것들이다.

천재를 위한 본래적 영역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창조적이고 다른 능력들보다 규칙에 덜 구속되지만 그 덕분에 더욱더 독창적일 수있기 때문이다. - 가르침은 항상 학생들에게 모방할 것을 강요하므로 가르침의 기제는 천재의 독창성을 고려하면 천재의 발아에 분명히 불리하기는 하다. 그러나 모든 기예는 그럼에도 어떤 기계적인 근본 규칙을, 즉 그 산물이 기초에 놓인 이념과 부합함을, 다시 말해서생각된 대상을 현시할 때의 진리성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수업의 엄격함으로 습득되어야 하고 분명히 모방의 결과다. 하지만상상력을 이런 강제에서조차 해방시키고 그 특유의 재능을 심지어자유에 어긋나게 규칙 없이 행동하도록 그리고 열광하도록 두는 것은 아마 진정한 실성을 낳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19) 이런 실성은 물론 모범적이지 않을 테고, 따라서 천재 축에 들지도 않을 것이다.

자살도 용기를 전제하는지 혹은 언제나 그저 낙담한 
상태만 전제하는지는 도덕적 물음이 아니라 단지 심리학적 물음이다. 만약 자살이 오로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생존하지 않으려고 실행된다면, 그래서 분노에서 
실행된다면 용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인내를 
천천히 고갈하는 그런 슬픔에 의해 고통 중에서 인내가 
고갈된 것이라면, 이것은 하나의 단념이다. 

인간이 더는 삶을 사랑하지않을 때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일종의 영웅주의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함에도 어떤 조건에서라도 
삶을 사랑하는 것을 언제나 중지할 수 있고, 그래서 자살하기 위해서는 불안에서 오는 마음의 혼란이 앞서야만 한다면 
그는 겁이 많아서 죽는 것이다. 그는 삶의 고뇌를 더는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동물에게서는 가장 격렬한 경향성(예컨대 성교의 
경향성)도 열정이라고 하지 않는다. 단순한 동물들은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성만이 자유의 개념에 토대를 
제공하고, 이 개념을 가지고 열정과 충돌한다. 그러므로 
열정은 인간에게서만 폭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인간은 열정적으로 어떤 
것들을(즉 음주, 놀이, 사냥을) 사랑하거나 (사향, 화주를)
혐오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경향성이나 기피성을 그렇다고 여러가지 열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단지 여러 가지 본능, 즉 욕구능력에 
있는 단순히 수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욕구능력의 객체들에 따라 물건으로서가 (이러한 
것들은 무수하다)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을 단지 자기 
목적들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이 서로 그들의 인격과 자유를 사용하거나 오용하는 원리에 따라 분류되어 마땅한 것이다. - 
열정들은 원래 오직 인간과 관련되며 오로지 인간을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
이러한 열정들이 명예욕, 지배욕, 소유욕이다.

다혈질적인 사람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표시로 알려진다. 
그는 걱정이 없고 낙관적이다. 그는 모든 것에 그 순간에는 중요성을 크게부여하지만 그다음 순간에는 그것에 대해서 더는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진심으로 약속은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과연 그가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리 깊게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도울 만큼 충분히 선량하지만 나쁜 채무자여서 상환 연기를 늘 요청한다. 그는 사교적이라서 농담을 잘하고, 유쾌하고, 그 어떤 것에도 중요한 의미를 기꺼이 부여하지 않고 
(사소한 일 만세!) 모든 사람을 친구로 삼는다. 보통 그는 
악인은 아니지만, 회개하는 죄인이 되기는 거의 어렵고, 
무엇인가를 매우 후회하더라도 (후회가 결코 번민이 되지는 않고) 금방 잊는다.

그는 업무 중에는 피곤해하지만 그저 놀기만 할 때는 쉬지 
않고 몰두한다. 놀이는 그에게 변화를 가져다주지만 
지속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그는 하나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단적으로말할 수 있다면, 이것은 그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말한 것일 뿐만아니라 칭송한 것이다. 이것은 그에 대한 존경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드문 일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명칭을 쏠 경우는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그에대해서 확실하게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곧잘 "그는 이러한 성격을 또는 저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그때 그런 표현으로 기질을 표시한다. 그러나 하나의 성격을 단적으로 갖는다는 것은 
주체가 자기 자신의 이성에 의해 변함없이 지시 규정했던 
확실한 실천 원리들에 자기 자신을 묶는 의지의속성을 말한다. 이러한 원칙들은 가끔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결함이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모기떼처럼 이쪽이나 저쪽으로돌아다니지 않고 확고한 원칙들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의욕 일반으정식은 그 속에서 소중한 것, 칭찬하고 감탄할 
만한 것을 가지고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실제로는 
드물다.

민족이라는 말은 한 지역 안에 통합된 다수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경우를 뜻한다. 국민이란 공통적 계통에 따라 어떤 
하나의 시민적전체로 통합된 것으로 인정되는 다수의 일부를 뜻한다. 이 규정들에서 예외가 되는 일부(이러한 민족 중 야만적인 다수)는 천민이라 불린다. 천민들이 반법률적으로 뭉치는 일은 폭동(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의 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천민을 국가시민의 자질에서 배제한다.

한 민족의 기질을 표현하는 준칙들은 그것이 대대로 내려온 것이거나 오랜 관습에 의해 말하자면 본성이 되고, 본성에 
접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든 민족의 자연적 성향 중 변형태들을 철학자를 위해 이성적 원리에 따라서 
분류하기보다는 지리학자를 위해경험적으로 분류하려는 
대담한 시도들일 뿐이다.

인간의 자연본성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지만 이성은 행복할 만한 자격에, 즉 윤리성의 조건에 
인간을 제한하므로 이런 행복에 관해서도 인류는 자기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상태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인류에 대해 자연 상태인 숲으로 되돌아갈 것을 추천하는 루소의 우울한(기분이 언짢은) 묘사를 그의 진정한 의견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 묘사로 루소는인류가 자기 사명에 단절 없이 접근하는 궤도에 진입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런 
묘사를 허무맹랑하게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언젠가는 더 좋은 상태에 있을지는 과거와 현재의 
경험으로 볼 때 어느 사상가나 당혹스럽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공화제만을 참된 시민적 체제로 부를 만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은 세 가지 국가형식 중 
하나(민주제)를목 표로 하지 않고, 공화제를 유일하고 
일반적인 국가로 이해한다. 옛브로카르드법전의 "시민이 아니라 국가의 복지가 최고 법이다"라는명제는 보통 사람의 
감각복지(즉 시민들의 행복)가 국가체제의 최상의원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자기의 
사적 경향성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구상하는 번영은 보편성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어떤 객관적 원리로는 전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저 명제는 다름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지성복지의 유지가다시 말해서 일단 현존하는 국가 헌법체제의 유지가 시민사회체제일반의 최고 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저것에 의해서 존속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의 경험에서 알려지고 모든 민족 사이에서 
알려진 것처럼 인류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즉 인류 전체로서 집합적으로 파악해볼 때 인류는 
선후좌우에 실제로 존재하는 인격들의 하나의 집합이며, 
이 인격들은 평화적인 공존을 결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서로 대립하며 지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 자신에서 나온 법칙들의 지배를 받으며 서로 영향을 주는 강제로 끊임없이 분열의 위협을 받지만 
전체적으로는 진보하는 연합체가 본성적으로 하나의 세계시민 사회(세계국가주의)가 되도록 정해져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 세계시민 사회 자체는 완수될 수 없는 이념이기에 (인간의 활발한 작용과 반작용 중에 유지되는 평화를 기대하는) 구성적 원리는 아니고 단지 하나의 규제적 원리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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