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핵심주제들을 물음과 반론 제기를 통해 쉽게
이해시켜주는 책입니다.












철학 역사상 영향력이 가장 큰 사상가 중 하나인 플라톤
(기원전 약427-347)은 국가에서 철학의 시작을 소위 
‘동굴의 비유‘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동굴에서 앞의 벽만 
바라보도록 묶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동굴 벽에 
비친 사물들의 그림자만을 본다. 그들은 다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자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 중 한 명이 사슬에서 풀려나서 동굴 밖으로 나가서, 
사물들이 그림자의 진짜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와서 그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것을 설명해 주지만, 그들은 그를 비웃고 만다. 
왜냐하면 이들이날마다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철학의 시작을 말해 주고 있다. 철학함은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의 배후를 캐묻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동굴의 비유로 치자면, 보고 생각하는 것은 그림자에, 
그 배후는 사물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지각하고 
생각해서 어떤 의견을 가진다. 철학은 그 의견의 배후를 
캐묻는다.

제시된 의견 안에 포함된 개념들을 명확하게 모른다면, 
결국 그 의견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만일 누군가가 "철학은 쓸모없다"고 말한다면, 철학자는 
다음처럼 물을 것이다. "철학함이란 무엇가?" 
이 물음이 해명되지 않는 이상, 그 의견은 평가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은 어떻게 의미에 대한 물음들을 탐구하는가?

첫째로 철학은 일반적인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가령, 우리는 물질적 사물을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정의는 옳지도 틀리지도 않으며, 
단순히 시도해본 것이다. 어떤정의가 선호되어야만 하는가? 이는 세계를 설명하는 특정한 이론 내에서, 즉 진술들의 
집합 내에서 그 개념이 얼마만큼 중요한가에 달려 있다.

두 번째로 철학은 개념을 분석한다. 한 개념을 더 단순한 
개념들로 분해한다. 이상적인 경우라면 그러한 개념 
분석은 개념에 대한 정의로이끌어 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이상적인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중 하나는 개념 분석 자체가 논쟁의 여지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논증을 제시하면, 주장에 대해서 근거가 세워진다. 
하나의 논증은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된다. 전제는 논증이 
근거하는 진술들이고, 결론은 논증을 통해서 세워지는 진술이다. 전제들과 결론은 논리적인 관계이다. 전제들을 받아들이면, 결론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이는 논증이 
타당할 때에만 해당한다. 논증은 전제들이 참이고, 전제들로부터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되어 나올 때에만 타당(valid) 하다.

그러나 결론이 전제들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지 않는 
논증들도있다. 그런 논증들은 타당하지 않다. 어떻게 
타당한 논증 형식을 타당하지 않은 논증 형식으로부터 
구분해 내는가? 논리학은 이를 탐구하는 철학의 분과이다. 근거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에 논리학은 중요한 도움을 
제공해 준다.

올바른 논증은 타당(valid)하면서, 나아가 건전 (sound)
해야 한다. 삼단 논법과 같은 논증이 형식적으로 올바를 때 
‘타당하다‘. 그리고 그 전제가 참이어서, 결론도 참일 때, 
그 논증은 ‘건전하다‘.

‘명확함‘이라는 개념은 간과하기 쉬운 두 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명확함은 ‘명확하게 만들기‘라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활동의 결과, 즉 ‘명확해진 생각‘이기도 하다. 철학을 하는 사람은 ‘명료한 생각‘을추구하면서, 그의 생각을 명확하게 한다. 철학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명료함을 찾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제들의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있는 능력을 기르려 한다. 철학을 하는 사람은 더 명확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다.

명확한 생각을 하는 능력은 이미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목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능력은 일상에서부터 이론적인 과학에서까지 많은영역에서 요구된다. 따라서 철학은 일반적으로 삶 속에서 유용한 능력을 단련시켜 준다. 어떤 이들은 이런 능력을 철학의 도구화로 여기기도한다. 그들에 따르면, 철학의 가치가 다른 능력들을 위해서 쓰이는 도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전체적이고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철학함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해 주는 행위이다. 이런 욕구를 느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철학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욕구가 즉시 충족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 된다.
종교적 가르침과 달리 철학은 최종적인 답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많은답변들이 가능하며, 그중에 어떤 답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그가 무엇을믿는지에 따르며, 그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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