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철학의 집대성 3대 비판 시리즈의 핵심










이 비판에는 ‘순수 실천이성비판‘이 아니라, 단적으로 
대개 ‘실천이성 비판‘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실천 이성과 
사변 이성을 병렬시킴은 저런 이름을 요구하는 듯이 
보임에도 말이다. 그 까닭은 이 논고가 충분히 해명해줄 
것이다. 이 논고는 순수 실천이성이 있다는 것만을 밝히고, 이 관점에서 그것의 전 실천적 능력을 비판한다. 
만약 이 일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 논고가 (사변 이성에서 
능히 일어나는 바와 같이) 혹시 순전히 월권적으로 이성이 그러한 순수 능력을 가지고서 자기 분수를 넘어서지나 
않을까를 알기 위해, 순수 능력 자체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성이 순수 이성으로서 실제로 실천적이라면, 
이성은 자기의 실재성과 자기 개념들의 실재성을 행위를 
통하여 증명할 것이고, 그런 가능성에 반대되는 일체의 
궤변은 헛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영혼의 특수한 능력을 그것의 원천 • 내용 한계의 
면에서 규정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사람들은 인간 인식의 본성상 바로 그 인식의부분들로부터, 즉 그것의 엄밀한 그
리고 우리가 이미 얻은 요소들의 현재상태에서 가능한 한 완벽한 서술로부터 시작할 수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이 또 있는데, 그것은 보다 더 
철학적이고 건축술적인 것이다. 곧, 전체의 이념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이로부터 그 모든부분들을 그 상호 관계 속에서, 저 전체의 개념으로부터 그 부분들을 도출해냄으로써, 
하나의 순수한 이성 능력에서 포착하는 일 말이다.

실천 원칙들은 의지의 보편적인 규정을 함유하는 
명제들로서, 그 아래에 다수의 실천 규칙들을 갖는다. 
이 원칙들은 그 조건이 주관에 의해서 단지 주관의 의지에 
대해서만 타당한 것으로 간주될 때는, 주관적이다. 
즉 준칙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조건이 객관적인 
것으로 다시말해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타당한 
것으로 인식되면, 객관적이다. 즉 실천 법칙들이다.

만약 우리가 순수 이성이 실천적으로, 다시 말해 의지 
규정을 위해 충분한 근거를 자기 내에 함유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실천 법칙들은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든 실천 원칙들은 한낱 준칙들일따름일 것이다.

이성적 존재자의 정념적으로 촉발된 의지에서는 그 자신에 의해 인식된 실천 법칙들에 대해 준칙들의 상충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어떤 모욕에 대해서도 보복 
없이 참고 지내지않는다"는 것을 준칙으로 삼으면서도, 
그는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실천법칙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준칙일 뿐이며, 반면에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를 위한 
규칙으로서는 동일한 준칙 안에서 자기 자신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질료적인 실천적 규칙들은 의지의 규정 근거를 
하위의 욕구 능책에 둔다. 그리고 의지를 충분하게 
규정하는 순전히 형식적인 법칙이전혀 없다면 어떠한 
상위의 욕구 능력도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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