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장 한문장이 명문입니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1764년에 짧지만 기념비적인 책 
<<범죄와 형벌>>을 세상에 내놓았다. 범죄와 형벌을 
다룬 이 책은 출간한 다음해에프랑스어판이 나온 데 이어 
1800년까지 23개의 이탈리아어판, 14개의 프랑스어,
11개의 영어판이 나왔으며, 네덜란드, 스페인, 덴마크, 
그리스, 러시아, 일본을 비롯해 22개국에 번역되었다.

<<범죄와 형벌>>은 억측과 예단, 종교적 편견으로 뒤덮인 
야만적인 형형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역사적 사건으로 꼽힌다. 베카리아는 이 책에서 종교적인 죄악과 세속적인 
범죄를 구분하고, 낡은 범죄관과 형벌체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형벌의 목적을 새롭게 설정했다. 이 책은 사회계약에 의한국가형벌권,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비롯한 주요 법 원리를 논리적으로다루었으며, 특히 고문과 사형 등 가혹하고 모순적이며 자의적인 관행과 법제를 비판하고 이를 막을 제도적 원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이 책을 계몽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저서라며 ‘우리의 정신을 치유하는 치료법‘으로 
격찬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법은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의 계약이며
그래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수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쓰이거나, 우발적 또는 일시적인 필요로 생겨났다. 
지금껏 인간성을 현명하게 탐구해 인간의 행동을 한눈에 
통찰한 법은 없었다. 법은 오로지 ‘최대 다수가 공유하는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

법은 독립적인 사람들이 사회에서 결속하기 위해 만든 
조건이다.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유는 가치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자유를 더욱 평화롭고 안전하게 지키고 
누리기 위해 일부를 희생하기로 했다. 그렇게 각 개인의 
자유 중 남은 부분이 합해져 한 국가의 주권을 형성했고, 
자유는 합법적인 집행자인 주권자의 손에 맡겨졌다.

그러나 맡겨 놓은 자유를 확고히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몫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몫까지 노리는
자들의 약탈로부터 자유를 지켜야 했다. 개인의 횡포가 
사회를 이전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지 못하게 하려면 
강력한 계기가 필요했다. 이 계기가 법을 위반한 자에게 
적용하는 형벌이다. 

공익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기대는 공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을 
속박하는 계약에서 자신은 벗어나기를 원한다.

인류는 엄청나게 많이 번식해왔고, 그에 따라 필요한 
물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자연이 제공하는 
수단으로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기존 사회는 분열되고 
부득이하게 이에대항하는 새로운 사회를 형성해야 했다. 
이는 당연히 개개인이 아니라 체제의 변화로 이어지면서, 
대립은 개인과 개인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각 개인이 가진 자유 가운데 일부를 포기하도록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개인은 자기가 가진 것 중 
최소한의 몫을 공공 저장소에 내놓았으며, 그것은 포기한 
자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지켜달라고 요청하기에 충분한 
정도였다. 이 최소한의 몫이 모인 집합체가 형벌을 행사할 
권리를 형성하며, 그 이상의 것은 모두 정의가 아니라 
권력의 남용이다.

오직 법만이 범죄에 대한 형벌을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형법을 제정하는 권한은 사회적인 협약으로 통합된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입법자만이 가질 수 있다. 이때 그 어떤 
법관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의라는 명목으로 그가 속한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법에서 정하지 않은 형벌을 
적용할 수 없다.

법으로 확정된 것 이상의 가중된 형벌이 다른 벌을 추가함으로써 정당해질 수 있지만, 어떤 재판도 지나친 열망이나 
공익을 구실로 이미 법에 따라 정해진 것 이상의 형벌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형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건에서 법관은 입법자가 아니므로형법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 이들에게 형법은 전통에 따라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유언자의 의지에 따라 후손과 
집행자가 이행하라고 지시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 혹은 국가의 대표자인 주권자에게서 받았다.

법의 권한 역시 겉치레적인 의무나 고대의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이런 의무나 관습은 법이라는 제도가 수립될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구속할 수 없으므로 아무런가치가 없다. 관습에 뿌리를 두고 정의롭지 못한 법을 만들면 다음 세대는 판단력과 실행력도 없는 짐승의 무리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법의 힘과 권위는 개개인의 사적 이익으로
일어나는 갈등을 통제하기 위해서이며, 국민이 묵시적 혹은명시적으로 주권자에게 한 서약의 산물이다. 


모든 범죄 사건에서 법관은 삼단논법으로 추론해야 한다.
이 중 일반법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는 중요하고, 
행동의 적합성 또는 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소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유 아니면 형벌을 택해야 
한다. 법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법관이 의무를 지거나 
이보다 더 많은 삼단논법을 만든다면 이는 불확실성을
 더 끌어들이는 셈이 된다.

‘법의 정신을 고려하라‘ 라는 말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이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론이라는 급류에 법을 
내맡긴다는 뜻이다. 이런 잘못된 원칙을 채택하면 눈앞의 
사소한 무질서에 몰두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저속한 이들에게는 이 말이 역설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압제자와 피압제자 사이의 거리가 더더욱 가까울수록 
압제자가 저지르는 폭정은 한층 더 잔혹해진다. 다수의 
폭정은 한명의 폭정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한 사람이 폭정을 할 때는호소라도 할 수 있으나 다수가 폭정을 할 때는 
떨쳐버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폭정은 더 많은 반대에 
부딪힐수록 더 잔인해진다. 즉 폭군의 잔인성은 그가 가진 
권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로막은 장애물에 
비례한다.

법은 인명과 재산의 안전을 가장 잘 지켜주는 수단이다. 
이는 사회의 단결이 목적이기에 정당하며, 개개인이 모든 
범죄에 수반되는 불편함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으므로 
유용하다. 이로써 국민은 독립과 자유의 정신을 누리고 
변덕스럽고 여론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거나 이를 미화하는 이들에게 정당하게 대항할 수 있다.

법을 해석하는 것이 해악이라면, 법의 모호성 역시 해악이다.법의 해석은 법의 모호성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법이 사람들이 모르는 언어로 이루어졌다면, 
이에 따른 해악은 훨씬 더 커진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자기가 한 행동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법을 해석하는 
몇몇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법은 공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닌, 사적이고 특수한 문서로 바뀔 수 있다. 문명이 개화된 유럽에서 모호한 법조문을 가장 훌륭한 
관습으로 지속해오는 것을 보면, 인류가 진보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법전을 읽고 이해한다면 그만큼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형벌에 무지하거나 법조문이 
불확실할수록 감언이설과 잘못된 여론 역시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성문화된 법이 없다면 어떤 사회도 확고한 
정부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권력은 사회의 일부에 
속해 있는것이 아니라 전체에 귀속되므로, 법 역시 
사회 전체의 의지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소수의 
개인적인 힘에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지켜온 
전통은 그 기원에서 멀어질수록 영향력 또한 약해지고, 
이는 우리의 경험과 이성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계약을 상기시키는 기록물이 없다면 어떻게 
법이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힘을 버텨낼수 있을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인류에게는 공통된 이익이므로, 범죄의 발생 빈도가 낮아야 사회에 양산되는 해악이 줄어든다. 범죄가 공공의 안전과 행복을 파괴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유인책도 강력해진 만큼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입법기관이 사용하는 수단 역시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 이는 범죄와 형벌이 일정한 비례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범죄는 사회에 끼친 해악으로만 그
경중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그 죄가 더 심각하거나 가벼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이들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범죄의 심각성은
범죄를 당한대상의 실제 생각과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생각과 성향이 각각 다르고 심지어 같은 사
람이라도 때에 따라 관점이나 감정 그리고 환경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체계에서는 모든 개인에 대한 
특정한 규약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형법이 필요하다. 때로는 최선의 의도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 가장 큰 해를 끼치기도 하고, 최악의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가 사회에 가장 큰봉사를 
가져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어떤 일이든
할 권리가 있으며, 행동 자체의 정당한 결과에 따른 그 어떤불편함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 원칙은 법으로 수호해야 
하며, 법관이 계속 강조해 누구나 이 원칙을 믿게 해야 하는 정치적인 신조다. 법치국가라면 이 신성한 믿음은 당연히 
존재한다. 이것은 분별력 있는 모든 존재에게 공통으로 
보장되는 보편적인 자유 행위이며,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고, 제한받는 것은 우리의 본능적인 힘뿐이다. 

명예는 하나의 복합적인 개념이다. 단순한 개념일 수 있지만, 매우 복잡한 다른 개념들이 모인 하나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인간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로는 그요소의 일부를 포함하고 때로는 그 일부를 배제한다. 이는 많은 복합적인 숫자 속에서 공약수를 찾는 것과 유사하다. 명예라는 단어에 붙은 서로 다른 개념들의 공약수를 찾으려면 사회가 처음 형성된 시기를 살펴봐야 한다.

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이 유죄일 때와 무죄일 
때를 알아야 한다‘ 라는 일반적인 공리에 예외적인 상황을 
잘알지 못한다. 정부에 검열관이나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법 집행자가 필요하다면 그 나라의 법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은밀한 폭정에 희생된 사람이 
범죄의 불확실성과 잔혹 행위로 고통받은 사람보다 많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형벌의 목적은 지각 있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이미 저지른 범죄를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이아니다. 그런데 고문과 부질없는 잔학한 행위, 
즉 맹목적인 광신도나 무능한 폭군이 함부로 휘두르는 
이런 수단이 어떻게 정치체제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형벌은 격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며, 개인은 각자의 격정을 스스로 냉정하게 제어해야 한다. 고문당하는 사람의 비참한 비명이 시계를 되돌려 이미 저질러진 행위를 이전의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형벌의 목적은 오직 다른 사람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행사해야 하며, 범죄자의 육체에는 최소한의 고통만 
주어야 한다.

악의적인 행위처럼 범죄의 잔혹성이 심할수록, 그리고 
마법처럼 개연성이 낮은 행위일수록 증언의 신뢰성은 
떨어진다. 그런데 형법 관련 저술가들은 범죄가 잔혹할수록 증언의 신뢰성이 높아진다는 반대 원칙을 채택해왔다. 
이들이 철칙으로 여겨온 가장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명제는
 ‘인간은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 복종하는 수많은 불합리한 원칙 중 하나를알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가장 사소한 추측만으로도 증명할 수 있으며 
재판관들은 이 법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재판은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를 결속하는 
유일한 접합체인 여론이 권력자의 권한과 재판관의 
격정을 억제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우리는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무엇이든 
잘 아는 주권자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이며, 
모든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공개적인 고발이 군주정보다 공화정에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공화정 안에서 공공의 선은 시민의 
으뜸가는 감정인 데에 반해, 군주정에서는 공공의 선이라는 감정이정부의 성격상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정에서는 범법자를 대중의 이름으로 고발하는 검찰기관을 두는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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