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이란 범죄와 범죄에 대한 제재인 형벌과 보안처분을 규정한 법이다. 종래 형법은 범죄와 형벌의 관계를 규정한 국가 법규범의 총체, 즉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그 범죄에 대하여 어떤 형벌을 과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법규범을 말한다고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형법을 범죄와 형벌의 관계를 규정한 법이라고 정의하면 범죄에 대한 형벌 이외의 법률효과인 보안처분을 과하는 법을 포함할 수없게 된다. 구 사회보호법과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범죄에 대한 제재는 형벌 이외에 보안처분을 포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법이란 범죄와 범죄에 대한 제재인 형벌 또는 보안처분을 규정하는 법규범의 총체라고 해야 한다.
범죄에 대한 법률효과로서 형벌과 보안처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법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형벌이 전통적이고 주된 법률효과이고, 보안처분은 형벌을 보완하기 위한 제재라는 점을 고려한 데 있다. 범죄와 형벌은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형법이라는 명칭도 국가에 따라 형법(Strafrecht, droit penal) 또는범죄법(criminal law, droit criminel)이라는 용어가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형법‘이란 범죄와 형벌 가운데 법률효과인 형벌에 중점을 둔 명칭이다.
형법의 규범적 성격
형법은 도덕이나 종교계율과 같이 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규범이란 5존재(sein)와 구별되는 당위(Sollen)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의 이해에 관하여는 견해가 대립되나 규범은 대체로 명령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규범은 일정한 행위 또는 사태를 요구한다. 형법규범 역시 일정한 행위 또는 사태를 대체로는 금지의 방향으로 요구하며, 그 위반이 있을 때 강제력을 가지고 형사제재를관철시킨다. 형법규법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1) 가언적 규범
형법규범은 가인적 명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연 6적 명령이란 형법규범이 요건 → 효과‘ if ・・・ then 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의피이다. 즉 범죄를 요건으로 하여 그 법률효과로서 국가에게 형벌권을 발생시킨다. 형법이 가연규범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는 형법규범이 조건부 규범이라는 의미이다. 도덕규범은 조건이 없는 정언적 명령의 형태 "남을 해치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를 취하고 있는 데 비하여 형법규범은 조건을 달고 있는 규범적 요구의 형태, 즉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사람을 살해하지 말라"는 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도덕규범은 정연적으로 조건을 달지 않고 의무의식에 터잡아 "규범을 준수하라"고 명령하는 데 비하여, 형법규범은 동기의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고 동기여하를 불문하고 규범의 준수만을 문제 삼는다.
(2) 행위규범과 재판규범
법규범은 그 수명자에 따라 행위규범과 재 7판규범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형법은 일반 국민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를 금지 또는 명령함으로써 행위준칙으로서 기능한다행위규범, Verbaltensnorm). 예컨대형법은 살인죄를 규정함으로써 살인금지의 명령을 퇴거불응죄를 규정함으로써 퇴거의 요구를 발한다. 동시에 형법은 법관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 국민이 행위규범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규범적 요구에 따라 재판할 것을 명한다(재판규범, Entscheidungsnorm).
형법과 보충성의 원칙
형법이 어떤 법익을 보호할 것인가는 사회윤리적 가치관을 기초로 한 형사정책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형법은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법익의 보호가 형법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써는 불가능한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를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Subsidiaritätsprinzip)이라고 한다.
형법이 갖는 보호의 수단이 다른 법률의 그것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이유로 형법의 보충성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형벌 또는 보안처분은 다른 법률의 수단과는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법률효과이며, 형법의 지나친 확대의 금지(형법의 겸억성)는 형사정책의 본질적인 요청이다. 이에 기하여 등장한 것이 비범죄화(Entkriminalisierung)의 요청이다. 이는 형법의 역할을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공동의 이익의 보호에 국한하여야 한다는 이념이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민주사회에서 특정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보호해서는 안 되며, 특히 도덕이나 특정 종교의 가치관을 형법적으로 관철(강행)해서는 안 된다는 요청이다. 이는 형법의 탈윤리화를 의미한다.
1)관습법금지 원칙의 의의
법률주의는 관습형법의 금지를 그 내용으로 한다. 관습법이란 형식적 의미의 법률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일반적으로 법으로 인정되어 온 법사회의 관행(practice)을 의미한다. 특히 영국과 같은 common law 국가에서의 관습형법은 구제도의 봉건성을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법이었으며, 벤담과 같은 개혁파들이 혁파의 주 대상으로 삼았던 제도였다. 따라서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은 형법분야의 구제도폐지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관습법을 토대로 범죄와 형벌을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배치된다. 왜냐하면 관습법은 입법부에서 제정된 법이 아니고, 그 내용과 범위가 명백하지 아니하며, 범죄와 형벌의 관계가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의 적용범위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은 처벌하거나형을 가중하는 관습법의 금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습법을 근거로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거나 기존의 구성요건을 가중처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성문의 형법규정을 관습법에 의하여 폐지하거나 관습법에 의하여 구성요건을 축소하거나 형을 감경하는 것은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관습법에 의한 책임조각사유,인적 처벌조각사유는 물론 관습법에 의한 위법성조각사유의 존재도 인정된다. 관습법의에 의한 징계권의 행사도 위법성조각사유가 된다. 그래서 관습법에 의한 위법성조각사유는 실제상 초법규적 위법성조각사유의 생성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보충적 관습법
관습형법금지의 원칙은 관습법이 직접 형법의 법원法源)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에 불과하며, 관습법은 간접적으로는 형법의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충적 관습법 (erganzendes Gewohnheitsrecht)이 그러하다. 예컨대 부진정부작위범의 보증인지위. (독일의 경우)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행위에 대한 책임의 근거, 위법성의 판단은 물론 각칙상 구성요건의 해석에 있어도 관습법은 해석의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관습법에 의한 해석- 형법의 법원의 적용으로서의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며, 성문의 법규정에 의하여 정해진 범위에서 그 규정에 내재하는 의미를 해석하는 길잡이가 되는그쳐야 한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의 의의
범죄와 형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원칙이다. 이와 같이 형벌법규는 그 시행 이후에 이루어진 행위에 대하여만 적용되고, 시행 이전의 행위에까지 소급하여 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소급효금지의 원칙이라고 한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법적 안정성과 법률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담보하는 법치국가이념에 그 근거가 있다. 즉 행위시에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신뢰한 행위자를 처벌하거나 그가 예측한 것보다 불이익한 처벌을 하여서는 법에 대한 국민의 일반적 신뢰와 국민의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이러한 법치국가적 근거 이외에도, 소급하여 부과된 형벌은 책임과 결부된 정당한 형벌이 아니고 예방적 효과도 가질 수 없는 무의미한 형벌이라는 점에서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형사정책적 근거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판례변경과 소급효금지의 원칙
판례의 변경으로 인한 소급처벌에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즉 행위시의 판례에 의하면 처벌받지 않던 행위를 판례의 변경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는 학설이 대립되고 있다. 소급효부정설은 사실상 구속력을 갖는 확립된 판례를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여 소급적용하는 것은 사후입법에 의한 소급처벌과 같이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해석한다. 소급효금지원칙의 핵심근거인 신뢰보호는 소급입법의경우와 마찬가지로 판례의 소급적 변경에 의해서도 침해되며, 현대 법방법론에의하면 법률과 법관의 법적용은 통일체로서, 허용되는 행위와 금지되는 행위의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을 이유로 한다. 이에 반하여 소급효긍정설은 판례 변경으로 인한 소급처벌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의 통설의 태도이다. 소급처벌이 금지되는 것은 법률이지 법률의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이유로 한다. 판례도 소급효긍정설의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의 핵심은 구성요건에 금지된 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데 있다. 즉 구성요건은 가능한 한 신축성이 적은 명확한개념을 사용하여야 하며, 국민이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 행위가 무엇인가를 알 수있을 정도로 명확하여야 한다. 불특정되거나 내용 없는 구성요건은 죄형법정주의와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컨대 ‘행실이 불량한 자‘, ‘민주주의적 사회질서의 원칙을 침해한 자‘ 또는 ‘공공의 질서에 반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는 구성요건이 있는 경우에, 이러한 구성요건은 명확성이 없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무효인 법률이 된다.
명확성의 원칙을 달성하기 위한 이상적인 방법은 순수한 기술적 요소만으로구성요건을 기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입법기술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법률을 고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생활관계의 다양성과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형법의 구성요건에 있어서 가치개념을 포함하는 일반적 규범적 개념의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법 제243조의 ‘음란한 문서 · 도화‘와 제244조의 ‘음란한 물건이라는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대법원판결이나 군사기밀보호법상의 ‘군사상의 기밀을 부당한 방법으로 탐지 · 수집한 자‘란 구성요건이 구성요건의 구체성 내지 명확성을 결여하였다고 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헌재결 1992. 2. 25. 89 현가 104)을 이해할 수 있다.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해석의 측면에서 유추의 금지를 요구한다. 형벌법규의 내용이 명백하다 할지라도 그 해석과 적용에 자의가 허용된다면 형벌법규의 명확성은 무의미하게 되고, 자의에 의한 입법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유추(Analogie)란 법률에 규정이 없는 사안에 대하여 그것과 유사한 내용을 갖는 사안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는 추론방식을 말한다. 그것은 법률의 규정이 없는 경우를 보완하기 위한 ‘법관에 의한 법형성‘ 내지 ‘법의 창조‘를 의미하며, 형법에 있어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새로이 형벌을 과하거나 형을 가중하는 유추를 금지한다. 즉 유추에 의하여 새로운구성요건을 만들거나 기존의 구성요건에 대한 형을 가중할 수는 없다.
예컨대 전화를 거는 것을 주거침입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거나, 법률에 규정이 없는유사한 형벌 특히 부가형을 과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은 상관에게 전화를걸어서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아느냐, 다 당신 때문이야. 너는살인자야" 라는 취지의 폭언을 하여 상관을 모욕한 행위는 군형법상의 상관면전모욕죄에 해당하지 않으며, 인터넷 화상 채팅 중 상대방 여자의 은밀한 부분을 보이게 하고 그 영상을 촬영한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촬영한 것일 뿐 피해자의 신체 그 자체를 촬영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구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카메라등을 이용한 촬영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으며, 본인이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된 경우 이 유포행위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이 아니어서 같은 법 제14조 1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법률은 언어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언어는 해석의 토대가 되 3며 언어의 가능한 의미(der mögliche Wortsinn)는 법률해석의 한계가 된다. 언어의가능한 의미를 넘는 해석은 국민의 법률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을 뿐아니라 형법해석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자유로운 법창조이며 유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언어의 가능한 의미를 넘는 법해석은 입법이 해결하여야 할 사항이며, 형법해석학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하여 언어의 가능한 의미가 명백하지 아니하므로 구체적인 법률의 기본사상에 따라 허용되는 한계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거나 법률규정의 편찬상의 결함(Redaktionsfehler)이 있는 때에는 언어의 가능한 의미를 도외시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앞의 견해는 해석의 한계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후자는형법의 해석과 입법론을 혼동한 것이라고 하겠다. 법전편찬상의 과오가 있는 경우에는 전체적 · 체계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전체적·체계적 해석이 언어의 가능한 의미를 넘는 해석이라면 앞의 견해와 차이가 없으며 목적론적 해석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법전편찬상의 과오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형법은 인간의 공동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결한 침해에 제한되어야 한다. 즉 국가는 형법을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사회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여야 한다. "필요 없으면 형벌 없다"(KeineStrafe ohne Notwendigkeit), "불법 없으면 형벌 없다" (Keine Strafe ohne Unrecht)란 명제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실질적 의미에서의 범죄를 사회적 유해성(Sozialschadlichkeit)에 있다고 한다면 사회적 유해성은 범죄와 형벌을 정하는 법률의 내용의 한계가 되어야 하며, 따라서 형벌규범이 사회와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본질적인 필요성이 있을 때에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어떤 행위를 처벌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정치적 · 개인적인 가치판단이나 감정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회보호의 불가결한 필요성에 대한 적정한 교량과 보편타당한 인식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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