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학사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돋보입니다.
















































주희는 인심이 이기적인 인욕으로 변화하여 도심과 대립하게 되는 상황에서 도심을 선택하여 인심을
통제하는 방법에 관해 논함으로써 도덕철학의 신기원을 열게 된다. 
이후 조선성리학에서도 지각론과 연계되어 있는 
인심도심의 문제에 대해 저마다 다른 해법을 제기하고였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황은 지각 내용에 의거하여 사단과 철정을 도시과 인심으로 간주하되 각각 ‘리의 발현‘과 ‘기의 발현‘으로 양자를 구분했던 반면, 이이는 사단 칠정을 ‘기의 발현‘이라는 하나의 심리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설명하되 감정에 의의 계산하고 비교하는 사고가 더해져야 인심과 도심의 구분이 생기게 된다고 본다. 
나중에 정약용은 이황과 이이의 상반된 인심도심론을 종합지양하면서 덕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윤리학을 제시하게 된다.
한국유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법은 외부로부터 어떤 것을 가져와서 새롭게 고안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성리학 내에 이미 존재하는 철학적 문제들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성리학의 본체론과 지각론, 인심도심론의 주제들은 비록 정확히 꼭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서양철학의 존재론우주론 인식론, 윤리학에 대체로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들에 초점을맞춰 한국유학을 조명하는 것은 전지구적 세계철학이나 보편철학을 염두에 두면서 소통과 통합을 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성리학의 주제들과 이론들은 세계철학과 소통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리학의 문제와 이론에 의거하여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곧한국유학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합당한 철학적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이의 이기원론 우주론은 장재의 기원론을 비판하의면서 
등장한 우주론이다. 
이 점에서 정이의 우주론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장재의 기의 우주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북송시대에 주돈이나 소옹의 새로운 우주론적 견해들이 등장하게 된사상적 
배경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찍이 장재는 "기의 모이고 흩어짐과 태허의 관계는 얼음이 얼고 녹는 것과 물과의 관계와 같으니, 태화가 곧 기여서 두는 없음을 알 수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태허"란 텅 비어 있는 큰 공간이란 뜻으로서 일정한 조화를 지닌 것이므로 "태화"라고도 칭한다. 장재는 이러한 텅 빈 공간태허태학이 진공 상태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너지로서의 기가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았다. 물질 -에너지로서의 기는 용축하여사물을 이루다가 그 사물이 사멸하면 그것을 구성했던 기는 다시 분산하여 태허의 우주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었다가 다시 얼음이 녹으면 물로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장재의 일기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론에는 오늘날 열역학 제1 법칙과 매우 유사한 일기의 존재는 영원히 보존된다는 견해가 함축되어있다. 즉, 물질에너지로서 기의 총량은 일정하게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장재가 개별자의 기와 우주의 태허지관계를의얼음과 물의 관계로 비유한 것은 이러한 일기 보존의 법칙에 근거해 있다.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다시 녹으면 물로 돌아가듯이, 개별자가 소멸한 뒤그것을 이루는 기는 다시 그 근원인 태허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일기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것이다.
정이는 장재와 마찬가지로 기의 총량 보존이라는 우주론적 원칙에 근거하여 노자의 본체론적 우주론을 비판한다. 이는 "시간에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없는 것(무)은 없다"고 말한다. 없던 것이 무로부터새롭게 생겨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전제 위에서 그는 장재와 마찬가지로 ‘노자의 ‘허공으로부터 기를 발생시킨다‘는 말은 틀렸다"고 말함으로써 노자의 본체론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말하자면,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서 물질-에너지인 기의 총량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기를 생성시키는 신비로운 어떤 실체를 따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이는장재와 같은 맥락에서 노자의 본체론적 우주생성론을 비판했던 것이다.

정이가 말한 조화라는 것은 기화 작용을 가리키는데, 운동과 정지,음과 양의 기의 작용을 통해 사물을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즉,우주의 조화 작용에서는 항상 새로운 기가 
사물을 생성하지, 이미 한번 사물을구성했었던 기가 다시 우주 조화에 참여할 수는 없다. 
이미 사물을 구성했다가 ‘분산된 기‘는 ‘큰 화로‘와도 같은 우주에서 완전히 소진하여 우주끝으로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사물을 구성하는 유용한 기가 될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큰 화로‘로 비유되는 정이의 우주 모델은 ‘물과 얼음‘으로 비유되는 장재의 우주론과 완전히 대조된다고 하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장재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정이가물질-에너지적 기와 다른 또 하나의 실재로서 리를 상정한다는 데 있다.
정이는 다음처럼 말한다.

만약 이미 돌아가 버린 기가 다시 장차 바야흐로 펴질 기가 되고 반드시 이것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천지의 조화와는 전혀 같지 않다. 천지의 조화는 자연히 생고생하여 끝이 없으니, 어찌 이미 무너진 형체와 이미돌아가 버린 기에 다시 근거하는 것을 조화라고 하겠는가? (・・・중략) 기는자연히 생한다. 인간의 기는 진원에서 생고생한다. 하늘의 기 또한 자연히생하고 생하여 끝이 없다. (・・・중략..) [기] 자연히 생하여 갔다가 오고 접혔다 펴질 수 있는 것은 단지 리 때문이다. 성하면 곧 쇠함이 있고, 낮이면 곧 밤이 있으며, 가면 곧 봄이 있다. 천지 안은 큰 화로와 같으니 어떤 사물이 녹아타지 않겠는가?

"본체와 현상은 근원을 하나로 하고,
드러난 것과 은밀한 것은 간격이 없다"는 말은 노자나 화엄종과 마찬가지로 중국철학 전통에서의본체와 현상의 합일적 사유를 나타내는 것이긴 하지만, 지각론적 관점에서 현상계 사물에는 형이상의 본체인 리가 관통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는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형이상학과 성격을 근본적으로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장재의 기일원론과 정이의 이기이원론으로 대표되는 송대의 우주론은 당시 형이상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노불의 본체론을 비판하면서등장한 것이다. 특히, 정이는 장재의 기록을 일정부분 승인함으로써 자의 우주생성론에 대한 비판에 동참하였지만, 더 나아가서 기일원론을 비판하고 이기이원론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우주론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정이의 이기이원론적 우주론은, 주희도 주장한 것처럼,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합치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정이는 정호와함께 주돈이에게 수학할 때 그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자신들의 이원론 체계를 수립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기존의 본체론이 우주의 시작점으로서 모종의 초월적인 본체를 상정하고 이것으로부터 기를 포함한 천지만물이 생성되어 나온다고 보았던반면, 주돈이와 장재, 그리고 정이의 우주론은 공통적으로 물질에너지로서의 기가 원래부터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견해를 나타낸다. 특히 정이는기와 더불어 우주론적 원리나 법칙으로서 리의 존재를 상징함으로써 이후 철학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리의 존재에 관한 정이의 철학적 견해는 우주론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본성에 관한 논의에서 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이는 도가와 더불어 당시 형이상학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었던 불교에 대해 비판하면서 우주론에서처럼 새로운 인간관과 심성론을 구축하였다. 당시 불교는 중국화된 불교로서 화엄종과 선종이 주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심성 개념은 심리학적인 인간의 마음과 본성을 가리키기보다는 오히려 본체론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성은 현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생불멸의 본체이고, 심은 본체가 현상적으로드러난 작용을 가리킨다. 현상적 세계는 발현된 의식과 일치되는 것이고, 그 안에는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본체인 성이 내재해 있다. 그러나 본체와 작용의 관계는 마치 바다 자체와 파도와 물거품이 일어나는 현상적 바다가 다르지 않고 하나인 것처럼 일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바로 노자와도 상통하는 일원론적인 본체론이다. 노자의 본체론에 대한 정이의 비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로운 우주론적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불교의 본체론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심성 개념을 제시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정이는 철학사상 최초로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 마음이발 상태에서 대상적 원리들을 궁구하고 인식하는 방법으로 간주하고 지각론적으로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천하의 사물들은 모두 리로써 비출수가 있으니,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다‘고 하니 한 사물에는반드시 하나의 리가 있다. 마음은 그것을 궁구하여 알 수 있는 능력이70있기 때문에 ‘격물‘함으로써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다." 대상적 탐구로서 격물치지에 대해 정이는 다음처럼 말한다.

‘격‘은 궁구한다는 것이고, ‘물‘은 이치와 같으니 ‘그 이치를 궁구한다‘고말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 이치를 궁구한 후에야 앞을 지극히 할 수 있으니,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히 할 수가 없다. ‘격물‘이라는 것은 도에 나아가는 시작이니, 사물을 궁구하고자 생각했다면 진실로 이미 도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풀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정이는 격물치지와 더불어 수양의 방법으로서 경을 제시한다. 격물치지가 대상을 궁리하여 그 이치를 인식하는 학문의 방법이라면, 경은 마음의 주체의식을 기르는 수양법이다. 경으로 주체의식을 함양하고 격물치지로 학문을 진전시키는 것은 수양방법상의 두 축을 이룬다. 정이는 함양은반드시 경으로 해야 하고 학문을 진보시키는 것은 치지에 달려 있다"고말했는데, 이러한 양대 방법론은 이후 세부적인 조정이 가해지긴 하지만주희에 의해 수용된다. 또한 두 방법 중에서도 "도에 들어감은경만한 것이없으니 능히 치지하되 경에 달려 있지 않은 경우는 없기 때문에, 마음의 주체성을 기르는 경의 함양법이 격물치지의 토대를 세우는 공부법으로서 좀 더 중시된다. 정이는 경으로써 마음의 주체의식을 확고히 세워야한다는 자신의 견해가 도가나 불교의 수양론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고주장하면서 다음처럼 말한다.

배우는 자가 먼저 힘써야 할 것은 진실로 마음의 의지에 있다. 보고 들으며알고 생각하는 것을 물리쳐서 없애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성인을 끊고 지혜를 버리는 것‘이다. 사려함을 물리쳐서 없애려 하고 생각이 혼란스러운 것을 근심하는 것은 반드시 [선종의] 좌선하여 깨달음의 상태로 들어가려는것이다. (중략..) 인간의 마음은 만물과 교감하지 않을 수 없으니, 또한 그것으로 하여금 사려하지 않게 만들기는 어렵다. 이것을 면하고자 한다면, 오직 마음에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주체가 되는가? 경할 뿐이다.

정이를 포함한 북송 신유학자들의
철학은 우주론과 인간론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적절했지만, 
주희는 그와 같은 구조를 탈피하여성리학의 새로운 
이론들을 정립했다. 
이는 이전의 체용 관계 중심의 형이상학본론을 심물 관계 중심의 도학으로 전환시켰지만, 주희는 그와 같은 심물 관계론 자체를 반성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출범시켰던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철학적 사유는 ‘지각‘이라고 하는 인간의 인지 기능에 대한 반성적 탐구와 그 같은 지각에 근거한 도덕철학적탐구를 의미했다. 주희의 지각 이론에 대해서는 이미 전문적으로 다룬 바있으므로 "여기에서는 한국유학의 철학적 문제와 흐름을 해명하기 위한목적에 관련시켜서 간략히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편, 주희의 지각론에 입각한 도덕철학은 ‘인식‘과 ‘도심‘이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도덕철학이 지각론에 입각해 있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인심과 도심을 지각된 내용에 근거해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에 관한 인식론적 탐구와 인심도심에 관한 도덕철학적 논의는 주희 심성론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전 북송신유학의 우주론과 인간론이라는 접근법은 주희에 있어서는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이라는프레임으로 대치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주희 지각론의 형성과정을 송대 이전의 전통 형이상학이라 할 본체론에 대한 비판이라는맥락에서 조명한 뒤 그의 지각 이론이 지니는 체계와 성격을 개괄적으로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지각된 내용에 근거하여 구성하게 되는 인심도심론의 형성 과정과 구조, 특징 등을 살펴볼 것이다. 이 같은 탐색을 통해 주희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도덕철학과 정이가 추구했던 도덕적 형이상학의 완성을 목표로 했다는 점이 해명될 것이다.

정이의 도학과 성리학에 대한 접근법은 우주론과 인간론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보다 적합했던 반면, 주희의 경우에 있어서는 지각과 인심도심의 문제가 가장 큰 철학적 문제로서 간주될 수 있다. 비록 이전 철학과달리 심물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지각의 관점이 정이의 우주론과 인간론에 관통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지각과 인심도심이라는 인식론과 도덕론의 문제를 전면적이고도 반성적으로 사유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주희에이르러서였다. 다시 말해서, 주희는 우주와 인간에 대해 범범하게 사유다기보다는 정이의 성리학에 근거하되 지각과 도심의 문제를 자각적으로 성찰하고 천착했다는 데 그 철학적 독창성이 있다. 즉, 성이의 지각론적 관점을 계승하되 그에 비해 지각과 도심의 문제에 내향적으로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희의 성리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주론과 인간론보다는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틀로써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 

주희는 「중용장구서」에서 "정밀히 함은 저 두 가지 사이를 살펴서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요. ‘한결같이 함은 그 본심의 바름을 지켜서 떨어지지 않는것"이라고 말한 것을 「중용」에 나오는 "선을 택하여 단단히 지킨다‘는 구절과 연결시킨다. 그는 "선을 택하여 단단히 지킨다‘는 것은, 정밀하게하고 한결같이 하는 것을 말한다"14" 고 한다. 즉, ‘정밀히 힘‘은 마음을 세밀하게 살펴서 인심과 도심을 구별하여 이 가운데 도심을 택한다는 것이고, ‘한결같이 힘‘이란 선한 도심을 굳게 지킨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주희는 다음처럼 말한다.
인심과 도심은 본디 하나의 사물일 뿐이지만, 지각한 것이 같지 않다. 오직 정밀히 하고 오직 한결같이 한다‘는 것은 두 가지 공부이다. ‘정밀히 함은이 사물을 변별하는 것이요, ‘한결같이 함은 변별한 뒤에 또 그것을 단단히지켜야 한다. 만약 변별하지 못할 때 다시 무엇을 단단히 지키겠는가? 만약변별한 뒤에 다시 단단히 지키지 않으면, 길게 밀리 가지 못하니. 오직 이와같아야 중도에 합할 수 있다. ‘오직 정밀히 하고 오직 한결같이 한다‘는 것은
‘선을 택하여 단단히 지킨다‘는 것이다. 149

<태극도의 연원과 ‘무극‘의 해석에 관련하여 지금도 학자들의 견해가엇갈리고 있긴 하지만, 주희가 주돈이의 일생과 그 학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면밀히 연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이가 태극 개념을 극과 일치시킴으로써 자신의 독창적인 우주론을 제시했다고 보는 주희의 해석은 대체로 객관적이고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학문은 당대의 여러 전통에 기원하는 많은 사상 조류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근동지역에서 아라비아 숫자와 수학이 유입되지않았다면, 근대 유럽의 고전역학이 과연 형성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의 물리학과 우주론도 오로지 서양의 고전 역학과우주론에서 기원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우주론은 서양의고전역학과 우주론뿐만 아니라 종교와 예술, 철학 등 여러 분야로부터 영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동양 등 다른 문화전통으로부터도 일정한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태극도설의 우주론 역시 도교와 불고, 그리고 『주역』의 기론 등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들을주돈이 자신의 독창적인 사유를 통해 종합하고 새롭게 재해석한 우주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요컨대,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리와 기의 이원론적 구조를 분명하게 천명하지 못했다는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기존의본체론적 우주생성론과는 판연히 다른 입장의 우주론이라고 할 수 있다.
천명도설은 이와 같은 태극도설』의 우주론에 대체로 근거해 있기 때문에 그 우주론적 핵심 전제를 공유한다.

천명도설은 이와 같은 태극도설의 우주론에
대체로 근거해 있기 때문에 그 우주론적 핵심 전제를 공유한다. 
그렇다면 두 도설의 우주론적 공통점은 무엇인가? 
먼저, ‘태극도설과 천명도설은 이기이원론을 우주론적 골자로 삼고 있다. 이기이원론이란 물질-에너지를 의미하는 기이외에 또 다른 우주론적 실체로서의 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는 ‘형체를 이루지 않는 것으로서, ‘형체를 이루는 물리적인 기에대해 규칙성을 부여하는 원리나 법칙을 의미한다. 현상계의 사물들은 리와 기의 결합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지만, 기로 이루어진 물질적 형제 안에내재해 있는 형이상의 리를 인간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본체계인 리의 관점에서 보면, 현상계의 모든 사물들과 사태들의 운동과 변화의 원리는 이미 하나의 리 안에 모두내재해 있다.
이러한 리와 기의 긴밀한 결합 관계에 대해 일찍이 정이는 
"움직임과 고요함에는 시작점이 없고 음과 양에는
시초가 없으니, 도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던 것이다. 
즉, 원래부터 존재해 있는 기의 움직이고 고요하며,
음적이고 양적인 변화와 작용들은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까닭이나원리로서의 리에 의해 가능하지만, 
그러한 리는 애초부터 기와 결합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시작과 끝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황에 의하면, ‘태극‘이라는 개념은 우주의 생성과 자연 조화의 영역에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나 수양의 노력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천명도설의 ‘천명‘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만물이 부여받은 직분으로서의 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내적으로 "직분과 도리를 행해야 한다"는 당위적 수양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이황은이것이 「중용」에서 솔성, 수도 존양, 성찰이라고 하는 구체적 실천과 수양법을 말하게 된 이유라고 본다. 도덕적 수양과 당위로 이어지는 직분과도리는 결국 마음 내적으로 자각해야 하는 것이므로, ‘천명‘은 ‘태극‘에비해 주체의식과 지각에 좀 더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천명도설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이황의 도덕적 사유는 사찰변을 거치면서 지각된 당위의식에서 도덕적 선악의 기준을 찾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천명‘ 개념은 ‘태극‘에 비해 인간적 입장에 친화적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하늘이 개별적 존재자에게 부여하는 명령"이라는 뜻으로서 인간과만물이 부여 받은 직분과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천명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만물에 똑같이 부여된 것이지만, 특히 자신의 직분을 자각하고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행하는 이른바 수양의 노력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인 인간에게만 실현이 요구되는 도덕적 개념이기도 하다.
만약 이와 같은 천명의 도덕적 함의를 계속 미루어 나간다면, 천명은 마치도덕적이고 당위적인 명령처럼 인간의 지각 작용에서 당위의식이나 의무감으로서 자각될 것이다. 나중에 이황은 사단칠정논변 과정에서 이와 같은 천명의 함의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그의 호발설을 정립하게 된다. 사단과 칠정의 지각 내용을 발과 기발로 나눈 것은 천명의 자각을 외물에 대한 일반적인 감각 내용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태극도설은 인간 존재를 설명할 때 형세가 생기면
정신의 지각 기능이 작동하고 오성이 감동하여 선악이 나뉜다고 
언급할 뿐, 선과 악이 어떤기준에 의해 나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 자연의원리에 근거해서 도덕 수양을 이끌어 내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심성과 지각을 중시하는 천명도설은 도덕을 설명하는 상반된 두 가지 입장이 가능하다. 즉 하나는 우주의 리와 기를 인간의 영역에 그대로 적용하여 선악을 도출하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태극도설처럼 자연주의를 나타내는데, 인간도 천지우주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므로 지각과 행위를 객관적 상황에 부합 절도에 맞음으로써 그것이도덕적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객관주의와 결과주의로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선과 악이 나님에 있어 지각된 내용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즉, 인간의 주관적인 지각 내용이 하늘의 명령] 혹은 그것의 내재적 양태인 도덕성의 명령에서 근원한 당위의식일 때,
이것이 선과 악의 근본적인 기준이 된다는 입장이다. 비록 일반적인 감정의 선악 여부를 모두 이러한 당위의식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선악의 궁극적인 기준은 당위적인 의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것처럼, 주희는 공리주의 입장을 나타냈던 공학파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의 입장은 일의 결과나 공효를 따지지 말고 행위의 동기로서 당위
의식이나 의무감을 기준으로 인심과 도심,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천명도설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단칠정논변은 태극과 다른 ‘천명‘의 함의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태극은 객관주의적인 우주론의 성격을 띠는 반면, 
천명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명령을 직분과 
도리에대한 당위의식으로서 주관적으로 
자각하도록 이끄는 특성을 띠는 것이다.
이황은 처음에 "태극도설에서 유래된 우주론적존재론적 
도덕론의 입장에서 정지훈과 함께 천명도설 수정하였고, 
이 과정에서 사단과 질정을우주론적존재론적 리와 기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권고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기대승은 상대적으로 천명이 함축하고 있는 
주관주의 입장에입각해서 이황의 사단칠정에 대한 설명을 비판하였다. 즉, 우주론적인 리와기 개념이 인간의 영역으로 확장될 때, 도덕적 선악의 문제는 우주론적리와 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심성과 지각에 관련하여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론적인 리는 ‘재료를 주재하는 원리 기는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의 의미를 지니는데, 인간도 우주의 다른 만물처럼 이러한 리와 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한 인간의 지각작용도재료인 기와 그것을 주재하는 원리인 리가 결합하여야만 성립되므로, 사단과 칠정을 각각 리와 기로 배속시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리와 기라고 하는 지각의 형식은 사단이는 칠정이든 모두 필수적인 것이다.
반면, 도덕적인 선악은 리와 기가 결합하여 발생한 심리적 결과물이 외부환경과 그에 대한 규범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칠정 가운데 심성 작용의 결과물이 외적 규범예의 절목에 부합하는 것을 특별히 사단이라고 지칭할 뿐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사단과 칠정, 선과 악이 나뉘게 되는 것은 절도에 맞음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주희의 철학적 입장과 노선을 이황과 이이 중 누가 더 정통으로 계승하였는가 라는 도통론의 관점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철학에서는 독창성이 중요하지 누가 무엇을 더 충실히 계승하였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통론은 학문적 논리나 합리성이 기준이 되는 것이아니라, 흔히 자신이 추종하는 인물이나 학파의 정치적 주도권을 획득하려는 의도를 배후에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도봉론은 철학에서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인 이황이나 이이의 철학을 해석하는 바람직한관점과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주성리학의 철학적 근본 문제, 즉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문제와 방법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그들의 철학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문제와 접근법이 가장 적절하다.

요컨대, 이황이 지각론에 있어서 주리론(이성주의)을 
나타내는 반면 이는 주기론(경험주의)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주리론은 지각의 두 요소에 있어 리로 지시되는 
당위의 원천으로서의 선험적 도덕성을 중시하는
반면 주기론은 이성을 중시하되 감성의 원천이 
되는 심리 육체적 에너지와 경험적 감각 질료를 
의미하는 기도 주목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는 것으로 말미암아이이는 리의 본연이 순선하다고 함으로써 표면상 맹자의 성선설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리의 본연은 선악을 떠난 가치적인 중립적 상태라고 봐야 한다. 만약 리가 순선하다면, 그것에 의해 선한 도심과 그렇지않은 인심이 지각 상에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이에 있어 그것은 부정되기 때문에, 선악의 기원은 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리의 본연이기를 타고 발용하여 현상화될 때 그 상태가 선한지 약한지, 인심인지 도심인지는 지각 차원에서 구별될 수 없는 것이다. 기가 유행할 때 선악을 결정하는 기준은 감정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 없이 절도에 맞는가중절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일반인은 지각 상에서 그것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성인은 사람들이 선과 악, 인심과 도심을 분별하고 수양의 실천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인심과 도심을 규정하고 그것을 구분하는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예를 제정했던 것이다. 리의 본연을 그대로 발현시킨 마음은 감정이 절도에 맞는 상태로서 도심이라고 명명하되, 육체적 형기에 가려진 마음은감정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여 절도에 맞지 않으므로 인심이라고 칭한것이다. 일반인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객관 규범에 비추어 헤아려서 그것이 도심이면 존양하고 확충하며, 그것이 인심이면 그 과불급을 절도에 맞도록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도심이 인심을 통제한다는 것은 둘의 병존과 갈등상태를 말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심적 상태를 살펴서 성인이 만든 규범으로서의 예의 절목에 맞도록 제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리와 기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아 한 물건인 것 같으나 다르다고 하는 까닭은, 리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며, 리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기 때문입니다. 무형과 무위이면서 유형과 유위의 주재가 되는 것은 리이고, 유형과유이면서 무형과 무위의 그릇이 되는 것은기입니다. 리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므로 리는 통하고 기는 국한되는 것이며, 리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므로 기가 발하여 리가 타는 것입니다. 

이이에 의하면,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천지만물은 리와 기의 두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리는 형이상의 본체적 측면을 나타낸다면, 기는 형이하의 현상적 측면을 가리킨다. 천지만물은 실제로는 리와 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합쳐져 일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인간은 천지만물을설명하기 위해서 리와 기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기는 물질-에너지로서유형의 운동성이 있는 물리적인 실체인 반면, 리는 작용성이 없고 무형인것으로서 물리적 실체를 주재하는 원리나 이유소연에 해당된다. 리는 무형과 무위라는 속성에 의해 만물에 관통하는 초시공적 보편성을 지니는 반면,
기는 유형과 유위의 속성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는 특수성과 개별성을 띤다. 이 점에서 "리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근원적으로 다른 감정이라고 구분한 뒤 이를 각각 도심과 인심에 해당시켰다. 그는 지각 내용이 서로 다른 것으로서 자각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단도심과 칠정인심을 근원소총래에서부터 다르다고주장했다. 즉, 사단도실은 내적 도덕이성에서 반출된 양심입지이나 법칙을따라야 한다는 당위의식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감각 질료로부터 촉발된 육체적 감각과 감정으로서의 칠정인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황은 지각의 도덕적 내용은 도덕이성의 원리로부터 나오고 그 밖의 일반적 감각과 감정의 내용은 육체적 형기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함축하는 명제, 즉 "사단은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발하여 리가 탄다"는 호발설을 제창했던 것이다.
반면 이이는 모든 지각은 "기가 발현하고 리가 타는 하나의 경로"를 통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므로, 사단과 칠정의 지각 내용의 차이는 자각될 수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성혼이 주희의 중용장구서」의 인심도심의윤리학과 이황의 호발설의 상통성을 지적하자, 이이는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는 것과 달리 인심과 도심은 ‘계산하고 비교하여 따지는 의의 기능이 더해져야 성립되는 것으로서 대립적 관계로 설명 가능하다고 답했다.
리는 단지 기가 발동하여 지각작용을 일으키는 형식적 원리일 뿐 도덕적당위의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발현된 감정이 외적 규범]에 부합하는지의 중절과 과불급의 여부에 의해 인심과 도심, 선과 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결과주의적 윤리학의 입장으로서, 선험적인 도덕성을 신뢰하고 내적 동기나 의무감을 중시하는 주희나이황의 입장과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동기주의와 결과주의라고 하는이러한 두 윤리학적 입장은 근본적으로 상반된 지각론적 입장에서 야기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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